장작 패는 여자 원장님... 이유 있었네

어린이집 원장 김순애씨의 교육 이야기

등록 2012.12.28 09:06수정 2012.12.2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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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에 그녀는 꿈을 접었다. 하지만 25년 만에 장롱에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랬을까.


25년 만에 묻어둔 꿈을 다시 꺼내다.

25년 전 순애씨는 유아교육과를 나와 어린이집 현장에 갔다. 6개월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현실과 이상은 다르더라'였다. 학교에서 배울 땐 "유아기 때엔 최대한 놀게 하라"였다. 현장에선 "무슨 소리냐. 아이에게 한 자라도 더 가르쳐야지"였다고.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엄마들 무서워 접었다"라나 뭐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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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패기 장작 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사진에서도 보면 한방에 도끼가 나무를 쪼개고 있다. 김순애 원장의 하루 일과 중 하나일 뿐이다. ⓒ 송상호


그랬던 그녀가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이유가 있다. 바로 그녀의 남편의 정년퇴임이다. '경제적 부담감과 노후 대책 불안'이란 현실에 맞닥뜨렸던 것.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가 묵혀둔 꿈을 다시 꺼냈을 리가 없으리라.

"그렇다면 뭘 할 거냐. 이왕이면 배웠던 걸 하자"고, 50줄에 들어서서도 겁 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유아교육학과 동기들의 도움도 컸다고. 현직 어린이집 원장들인 그녀들이 다방면으로 함께 해주었다. 어린이집 시스템도 그녀들로부터 전수받았다. 세상에 혼자 서는 법은 없나보다.

50의 나이에 경험 쌓기 위해 가정어린이집 교사로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어린이집을 열었다. 그녀는 말한다. "궁하면 통하더라. 하고자 하니까 우주가 돕더라"고. 그녀에겐 어둠 속에서 희망을 길어내는 능력이 있었던 게다.


어린이집에 맡겨도 엄마가 할 몫이 분명 있다

"요즘 아이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순애씨가 말한다. 이런 말을 하면 "무슨 소리냐. 자녀도 하나 아니면 둘인데. 요즘 부모들이 자기 자식 중심으로 얼마나 사는데"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실제 그럴까. 사실 아이가 의사표현이 분명하다면 어린이집에 가는 걸 원할까. 아이에게 "지금 당장 엄마랑 놀면서 맛있는 거 먹을래, 아니면 엄마가 돈 벌어서 나중에 좋은 거 입고 먹을래"라고 아이에게 묻는다면 십중팔구 전자를 택한다는 것이다. 이것부터가 아이의 의사가 무시되는 것이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건 어른들의 일방적 상황이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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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 장작을 패는 김순애 원장이 웃고 있다. 자신에겐 이게 기쁨이라며. 이렇게 함으로서 아이들에겐 따스함을, 교사들에겐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음을 선물한단다. ⓒ 송상호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아이가 못 알아듣더라도 아이 눈높이에서 충분히 현실을 설명해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라고. "낮에 사랑을 못 줬으니까 대신 저녁엔 사랑 줄게"라고 약속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란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느낀다는 것.

어린이집에 일찍 오게 되면 분명 사회성은 발달한다고.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진 아이들은 적응을 잘하지만, 늦게 맡겨진 아이는 적응하기를 힘들어 한단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린이집에서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그게 바로 엄마의 '정서 어루만짐'이라는 것. 아이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건 엄마가 할 몫이다.

예컨대 엄마가 약속을 어기면 아이들에겐 큰 상처가 된다는 것. 몇 시까지 데리러 오겠다고 해놓고 안 오면 아이들을 그 상황을 이해 못한단다. 단지 엄마가 그 시간에 데리러 오지 않았다는 것만 받아들인다고.

한번은 한 아이를 밤새 어린이집에서 맡은 적이 있었다고. 그랬더니 그 아이가 밤에 '속 깊은 울음'을 울더란다. 얼마나 그 울음이 애잔한지 교사도 울고 순애씨도 울었다고. 그 말을 하는 순애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런 아픔을 어린이집을 하니까 알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일러준다.

장작 패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위의 진실을 말하는 순애씨의 교육관이 '첫째도 아이들 존중, 둘째도 아이들 존중'은 당연하리라. 엄마들에게 항상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데는 자신 있습니다"라고 말한단다.

교사의 제일 본분은 '아이를 존중하고 관심 가져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여기 온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집중하려면 잡무에 시달리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교사가 스트레스 받지 않아야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기운이 돌아갈 것이란다. 대신 교사가 본분을 게을리 하면 호되게 야단친다고.

그렇다. 그녀가 장작 패는 것은 그녀의 철학을 실천하는 데서 온 거다. 아이들과 교사의 식사를 위한 요리도, 장보는 것도, 차량운행도, 간식 챙기는 것도, 쓰레기 버리는 것도, 아이들 병원 가고 진단서 끊는 것도, 장작 보일러를 때는 것도, 하다못해 장작 패는 것도 그녀가 직접 한다.

주변에선 "꽤나 장작을 잘 팬다"고 하더란다. 휴일 밤엔 그녀가 오후 10시쯤 원에 온다. 장작 패서 보일러를 땐다. 휴일 다음 날 훈훈하라고. 마치 "원장이 이런 거 하라고 있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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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순애 원장의 철학 때문에 교사들은 마음껏 아이들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단다. 그래야 모든 좋은 것이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걸 김원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 김순애 제공


그녀는 잘 안다. 유아기 때의 감성과 성격이 평생 간다는 걸. 인생의 시기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걸. 50줄에 들어서서 접어두었던 꿈을 펼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는 걸. "주변 환경이 엉망인 세상에서 내 아이만 잘 키우겠다는 생각은 모순이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묵직한 책임감(기성세대로서의)이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26일 안성 공도에 있는 김순애 원장의 어린이집에서 이루어졌다.
#어린이집 #어린이집 원장 #공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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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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