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2>에서 이선희의 <인연>을 열창 중인 가수 소향
MBC
지난 12월 22일 밤의 일입니다. 그날 내가 회원으로 있는 어느 문학모임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자정 넘어 집에 들어왔습니다. 술도 한 잔 하고 노래방도 가서 노래 몇 곡 불러서 그랬는지 잠이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켰는데, 사람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프로의 제목을 알았는데, 바로 그 유명한 <나는 가수다2>였습니다.
유명하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것에 대해 거의 몰랐고 본 적도 물론 없었습니다. 그날은 이은미·소향·더원·국카스텐 등 4명이 나와서 노래 경연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4명 중 문재인의 찬조연설을 해서 알게 된 이은미 빼고는 다 모르는 가수들이었습니다. 나는 진행자의 설명을 듣고 그 4명 가운데 그 시합에서 1명이 탈락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처음 본 것이었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에 쏙 빠져들었습니다. 다른 가수들도 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지만, 그날 거기에 나온 4명은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열심히 불렀습니다. 그날 소향은 이선희의 <인연>을 택해서 불렀습니다. 워낙 제가 대중가요에 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소향이 누구인지 몰랐고, 이선희의 <인연>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노래가 시작됐을 때, 노랫말은 거의 모르지만 언젠가 들었던 곡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향은 <인연>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녀 뒤로 자리한 악기가 다른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보통 대중가요를 부를 때에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해금과 가야금 같은 우리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퍽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의 혼을 쏙 빼버린 것은 악기, 그 가운데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신비스러운 몸놀림이었습니다. 소향이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거기에다가 사랑의 미묘한 감정까지 충분히 넣어가면서 열창을 하는 모습. 가야금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것처럼 연주하는 모습은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마치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물론 내가 악기 연주하는 것을 많이 보지 못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악기 다루는 사람들이 그렇게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날 그들의 모습은 나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가수와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매료됐는지 저는 화면에 나타나는 가사를 조용하게 따라 불렀습니다. 가수도 열창하고 악기도 잘 연주해서 그랬던가요. 노래가사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인에게 가장 아름다운 날이 된다는 생각이, 그리고 서로를 고달픈 삶의 선물로 여긴다는 마음이 그렇게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선희의 <인연>은 나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노래에 강하게 '꽂힌' 나는 그 이후 자주 컴퓨터에서 그날의 모습을 찾아서 동영상을 봤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낮은 소리로 노랫말을 따라 불렀습니다. 어떤 날은 거의 한 시간 동안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는데, 소향의 것만 아니라 처음 노래를 부른 이선희의 것도 여러 개 찾아서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노래가사는 제 것이 되고 있었습니다.
수십 번 종이를 접었다 폈다... 노랫말 외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