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앞둔 대통령 당선자에게... 다산이 미리 한 말은?

[서평] '여유당전서' 미수록 <다산 간찰집>

등록 2013.01.07 14:08수정 2013.01.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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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다산 간찰집>은 다산의 친필 편지를 영인본으로 싣고, 초서로 된 원문을 인쇄체로 탈초하고 번역해서 실었다. 주석을 달고 해설도 덧붙였다.  
다산이 1807년 3월에 쓴 편지 영인본. 윤영상 소장 -<다산 간찰집> 62쪽-

<다산 간찰집>은 다산의 친필 편지를 영인본으로 싣고, 초서로 된 원문을 인쇄체로 탈초하고 번역해서 실었다. 주석을 달고 해설도 덧붙였다. 다산이 1807년 3월에 쓴 편지 영인본. 윤영상 소장 -<다산 간찰집> 62쪽- ⓒ 윤영상


다산(정약용 1762~1836)이 살았던 시대에도 미디어 기술이 요즘과 같이 발달해 있었다면 다산에 대한 기록은 좀 더 풍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동영상은커녕 사진이나 녹음기술도 전혀 없었다.

우리는 다만 다산이 남긴 글과 주변 기록들을 통해서만 다산을 접할 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다산이 살아온 삶, 다산이 추구했던 가치를 보다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그가 남긴 일기나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는 다산(茶山)의 저술을 한데 모은 문집으로 그 분량이 154권 76책이나 된다. 여유당전서에는 다산이 생전에 지은 '목민심서(牧民心書)','경세유표(經世遺表)','흠흠신서(欽欽新書)' 등에서 '시율(詩律)'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저술과 실증적 이론이 포함되어 있다.

'여유당전서'에 수록되지 않는 다산의 민낯 같은 편지들

a  <다산 간찰집> 표지

<다산 간찰집> 표지 ⓒ 도서출판 서암

다산학술문화재단 지음, 도서출판 사암 출판의 <다산 간찰집>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되지 않은 다산의 편지를 모아 출간한 책이다. 다산의 친필 편지를 영인본으로 싣고, 초서로 된 원문을 인쇄체로 탈초하고 번역해서 실었다. 주석을 달고 해설도 덧붙였다. 

요즘도 개인 간에 주고받는 편지는 사적인 글들이다. 은밀할 수도 있다. <다산 간찰집>에 실린 다산의 편지도 지극히 사적인 글들이다.

요즘말로하면 민낯 같은 글이고 내용이다. 다산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실린 마음이 민낯처럼 드러나 있다. 그러기에 다산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느끼는 데는 더 없이 좋은 글이고 손색없는 내용들이다.     


동년배는 이제 새벽별처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가 가물어가니 그립던 차에 편지를 받으니 너무나 위안이 됩니다. 다만, 우환이 아직 가라앉지 않아 형제들에게 고민을 안겨주었다니 비록 잘 지내고 있다고는 해도 제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저는 상사(喪事)와 근심병이 글로 다 쓸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몸은 초겨울 추위에 병이 들어 이렇게 자리보전하고 있고, 흉년 든 농사 꼴은 너무 처참하여 바라보기도 어렵습니다. 괴이한 것은 어찌 여러 친구를 따라 죽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산 간찰집> 241쪽-


1833년 11월 8일, 다산이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다산이 1836년에 돌아가셨으니 돌아가시기 3년 전에 쓴 편지다. 참 인간적이다. 여느 인생들이 겪고 있는 고뇌, 생로병사의 고뇌가 가득하다. 먼저 죽은 친구들을 따라 죽지 않는 것이 괴이하다고 쓴 부분에서는 늙고 병든 몸으로 지탱하고 있는 삶의 고통이 물씬하다.

<다산 간찰집>에 실린 한 통 한 통의 편지에는 다산의 삶이 담겨 있고, 시대적 고뇌가 담겨있다.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실용지학(實用之學)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하던 시대적 선비로서 주변을 아우르던 다산의 삶을 읽을 수 있는 편지도 한둘이 아니다.   

혹시 취임 앞둔 대통령 당선자에게 미리 한 말?

하나, 처음 부임하면 규모(規模)를 하나하나 생각해서 바로잡고, 하나하나 지시하여 당연히 해야 할 법식을 하나 만들도록 합니다.
하나, 처음 부임해서 백성들의 칭송을 들으려면 틀림없이 백성들의 주목을 끌 만한 실마리가 있어야 됩니다. 실마리를 찾으면 지시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행하도록 할 것.
하나, 처음 부임하면 몇 달 안에 아전들의 비방과 칭찬을 반드시 힘껏 탐문하고 기록하여 한 권이 되면 찾아가서 직접 전달해줄 것.
하나, 아전, 노비, 장교, 향임 등이 농간을 부리는 일은 듣는 대로 기록하여 보여주어 신명(神明)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것.
하나, 송정(松政)은 중요하고 시비하의 큰 관건이 되니 당장 처치할 방도와 일후(日後)에 규찰(糾察)하고 금지(禁止)할 방도를 반드시 깊이 생각하여 훈수할 것.
하나, 비록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허물하지 말고 오래도록 보살펴서 지친(至親)처럼 의지해서 임기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게 어떨지요? -<다산 간찰집> 243쪽-

이 편지 역시 돌아가시기 3년 전, 글로 다 쓸 수 없을 만큼 상사(喪事)와 근심병으로 심신이 고단하던 1833년에 쓴 편지 내용이다. 봉화 현감에 부임하는 사람에게 초임 수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라는 부탁의 편지다.  

취임을 앞둔 대통령당선자나 기관장, 정치지도자들에게 들려줘도 참 좋을 내용이다. 다산은 이런 사람이었다. <목민심서>는 그저 머리로 쓴 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인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는 것은 다산의 삶이 이렇게 말하고 당부 할 수 있을 만큼 꼿꼿했으리란 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다산이 친필로 그려낸 삶이자 인생 파노라마

<다산간찰집>에 실린 편지들이 어떤 일관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때그때, 안부를 묻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전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내용들이다. 다산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흔적이라서 더더욱 가치가 있다. 다산은 편지지가 모자라 쓰고 싶은 말을 다 쓰지 못할 만큼 궁하거나 청빈한 삶을 살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도 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마른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안개는 뜰에 깔리는데 덩그러니 혼자 앉아 옛 추억을 더듬고 있으니 어떻게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겠습니까?(중략) 종이가 다해 갖추지 못합니다(紙盡不備). 10월 7일, 병제(病弟) 배(拜) -<다산 간찰집> 271쪽-

근래 <목민심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던데, 바로 이모(李某)가 퍼뜨린 게 아니겠습니까? 아주 걱정스러우니 일자반구(一字半句)라도 다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해해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소문이 놀랍고 소름이 끼칩니다. -<다산 간찰집> 281쪽-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산'하면 <목민심서>를 떠올릴 것이다. 다산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목민심서>를 두고도 여러 가지 억측이나 시기가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은 1836년, 177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 그러함에도 이미 밝혀진 다산, 이런저런 책으로 드러난 다산을 만날 기회는 누구에게나 많다. 그렇게 만나는 다산은 공식적이고 걸러지고 다듬어진 모습이다. 하지만 <다산 간찰집>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정약용은 연민의 정이 느껴질 만큼 늙고 병들어 있는 노인이자 거목 같은 선비의 사생활이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자애함도 느껴지고, 인간미 듬뿍한 정도 느낄 수 있다.  

<다산 간찰집>을 통해서 만나는 다산은 친필로 그린 민낯, 다산이 사적으로 드러낸  민마음, 다산이 맨몸으로 그려낸 삶이자 가치로 드러낸 인생 파노라마다.
덧붙이는 글 <다산 간찰집>┃지은이 다산학술문화재단┃펴낸곳 도서출판 사암┃2012.12.15┃값 3만원

다산 간찰집 - <여유당전서> 미수록

다산학술문화재단 기획,
사암, 2012


#다산 간찰집 #다산 학술문화재단 #사암 #정약용 #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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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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