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도보국토순례 8일차
강민정
대선이 끝난 지 벌써 20일 가까이 되었지만 대선패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아직 많다. 앞으로의 5년, 길게는 더 긴 시간 동안의 한국 사회의 향방을 결정짓는 대선에서의 패배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이성적으로 분석하여 다시는 그런 패배를 반복하지 않을 방도를 마련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그 패배의 충격이 큰 만큼 우리는 이성적인 분석과 평가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총체적인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표창원 교수의 '힐링 허그'나 법륜 스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대선 힐링 올레!'가 이어지고, 일시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공화국을 실현해 민주주의를 확대한 프랑스를 그린 <레미제라블>을 보러 그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 줄을 잇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상처받은 우리들을 위한 또 하나의 힐링이 있다. 지난 12월 31일 쌍용차 농성장이 있는 대한문에서 부산까지 도보로 대장정을 떠난 이들이 그들이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조승현 교수와 촛불시민 홍순창, 장동규씨가 눈 쌓인 혹한의 추위를 뚫고 벌써 8일 째 걷고 있다.
발톱이 살점에서 떨어지고 온통 물집으로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그들은 중간 중간 치료를 받으면서도 결코 중단하지 않고 계속 노숙하며 걷고 있다. 그들의 육체적 아픔보다도 더 큰 아픔 속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그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안양-수원-성환의 쌍용 '와락'-천안-대전-옥천-영동-김천-구미-대구-울산-부산으로 이어지는 대장정 길을 걸으면서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맑아진다'며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또 다른 치유를 위해 오늘도 그들은 걷는다.
그들의 손과 배낭에는 절망의 끝에서 생의 끈을 놓아버린 노동자 열사들, 무참히 파괴되고 있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치재판에 희생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이야기를 알리는 문구들이 들려있다. 이들 현재진행형의 아픔을 잊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대선 승리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이들 현재진행형 아픔들을 해결해보고자 함이었다. 비록 대선에서 패배하여 우리는 좀 더 쉬운 길을 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대선 승리가 이 모든 고통의 해결을 모두 약속해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여전히 우리가 치유해야 할 더 큰 고통들이 있음을 잊지 않고 우리 자신을 다시 추스르자는 뜻이 아닐까? 그들은 자기 자신을 비우면서 우리를 채워주고 있는 건 아닐까?
길을 가다 이들 힐링 순례자들을 만나거든 따뜻한 격려와 물 한 잔 나누어 주면 어떨까? 그게 또 다른 힐링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올 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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