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vs 노점 '컵밥전쟁'... '노량진 명물'의 운명은?

서울 동작구청, 23일 새벽 서울 노량진 '컵밥' 노점 기습철거

등록 2013.01.24 20:15수정 2013.01.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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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된 노량진 컵밥 지난 23일 새벽 동작구청 측은 컵밥 노점 4곳을 철거했다.
철거된 노량진 컵밥지난 23일 새벽 동작구청 측은 컵밥 노점 4곳을 철거했다.이규정

지난 23일 서울 노량진역 앞 '컵밥' 노점상 임성희(49)씨는 새벽 출근길에 자기 노점을 철거 중인 구청 직원들을 만났다. 동작구청 건설관리과 직원들 10명은 임씨의 가스레인지, 식자재, 일회용 그릇 등을 모조리 트럭에 실었다.

임씨는 자신의 노점을 철거하는 구청 직원들을 제지하려고 했다. 컵밥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가재도구를 빼앗긴 임씨는 노점 안으로 들어갔다. 4개의 쫄대와 천막 지붕으로 이루어진 노점 안에서 임씨가 버티자 구청 직원들은 가재도구만 트럭에 싣고 돌아갔다.

23일 오전 5시 30분께 총 4개의 컵밥 노점이 철거됐다. 그날 밤 기자가 만난 임씨는 지붕만 간신히 남아 있는 노점 안에서 전기난로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는 그날 새벽 구청 직원들의 철거를 막느라 윗도리가 반 뼘만큼 찢어지기도 했다.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은 길거리 음식인 '컵밥'(일회용 용기에 볶음밥과 소시지, 달걀프라이 등의 고명을 얹어주는 노량진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컵밥 노점, 왜 철거했나?

철거되기 전의 '컵밥노점' 철거된 '컵밥노점'은 철거 전에 공시생 등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철거되기 전의 '컵밥노점'철거된 '컵밥노점'은 철거 전에 공시생 등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규정

2009년부터 6차선 노량진로를 따라 컵밥 노점이 20여 개 늘어섰고, 학원가로 통하는 폭 5m의 좁은 골목 안쪽에 2개의 컵밥 노점이 컵밥을 팔고 있었다. 작년 여름만 해도 골목 안 컵밥 노점은 2개였지만 하나둘 늘어 지금은 총 4개의 컵밥 노점과 1개의 호떡집이 생겼다. 케밥을 팔던 노점과 악세서리를 팔던 노점에서도 컵밥을 팔기 시작했다. 워낙 컵밥이 잘 팔리는 탓이다.

새로운 컵밥 노점이 생기면서 안동찜닭, 불고기, 돈가스, 베트남 쌀국수 등 새로운 메뉴도 들어왔다. 공시생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컵밥 노점 앞에서 만난 이성민(27)씨는 "노량진에 1년 있었는데 컵밥 메뉴가 다양해져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반면 컵밥 노점의 수가 늘어가면서 주위 식당의 불만은 가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골목의 식당 주인들의 불만이 컸다. 컵밥 노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매상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컵밥 노점 앞에서 서서 밥을 먹는 손님들 때문에 길이 혼잡해지기도 했다. 때문에 통행자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기도 한다.


동작구청의 건설관리과의 관계자는 "요즘은 일주일에 10여 건 이상의 민원이 들어왔다. 이번 철거는 민원이 집중적으로 들어온 구역에 한정된 것이다. 대로변의 컵밥노점에도 31일까지 자진철거를 요청한 상태다"라고 했다.

해결책은 있을까?


철거된 '컵밥노점', 장사 중인 '컵밥노점' 동작구청은 지난 23일 새벽 골목 안의 컵밥노점 4곳만 철거했다.
철거된 '컵밥노점', 장사 중인 '컵밥노점'동작구청은 지난 23일 새벽 골목 안의 컵밥노점 4곳만 철거했다.이규정

철거된 컵밥 노점 상인들은 구청에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도로법 38조 1항에 따라 도로를 점유하고 있는 노점상은 현행법상 모두 불법이며 과태료 부과대상이다. 임성희씨는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나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시정요구를 했어야 할 것 아니냐. 노량진로의 컵밥 노점상과 우리(골목 안) 컵밥 노점상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했다.

철거된 노점 주인들은 23일부터 철거된 노점에서 머무르고 있다. 바닥에 쏟아진 음식물의 잔해와 부서진 노점 자재 등으로 이곳은 매우 혼잡하다. 날선 바람도 차갑다. 길을 지나가는 공시생들이 부서진 컵밥 노점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김찬우(25)씨는 망가진 컵밥 노점을 보고 분개했다. 그는 "공권력 행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왜 이쪽만 건드린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철거된 '컵밥노점' 안의 컵밥노점상 컵밥노점상 김인수(45)씨와 김순영(55)씨가 철거된 컵밥노점 안에서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철거된 '컵밥노점' 안의 컵밥노점상컵밥노점상 김인수(45)씨와 김순영(55)씨가 철거된 컵밥노점 안에서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이규정

노점상 주인들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수차례 회의를 하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노량진 컵밥 노점상은 전국민주노점상연합(민노련) 회원과 비회원으로 양분되어 있는 상태다. 철거된 4개의 컵밥 노점은 모두 비회원 노점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은 민노련 가입을 고려 중이다. 25일에는 8명의 노점상들이 구청에 항의방문을 하기로 결정했다.

민노련 소속 컵밥 노점은 주변 식당을 의식해 조율을 해왔다. 2000원 하던 컵밥의 가격을 지난해 7월부터는 500원 올려 2500원에 팔기 시작했고 운영시간도 줄였다. 민노련 노량진지역장 양용(37)씨는 "저희 민노련 소속 컵밥 노점들은 가격도 올려보고 운영시간도 줄여서 주변식당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비회원 노점들은 가격과 운영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해왔다. 양씨는 "컵밥 노점도 협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컵밥 노점이 일으킨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철거된 4곳의 컵밥 노점들이 인근 식당과 통행자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철거된 컵밥 노점상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이 문제는 자칫하면 컵밥 노점 사이의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노량진 컵밥은 어떻게 될까?
#노량진 #컵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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