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야기 좀... 한진은 너무 잔인하다"

[인터뷰] 한진중공업에서 안에서 만난 고 최강서씨 부인과 누나

등록 2013.01.31 19:47수정 2013.01.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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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최강서씨의 부인 이선화(37·오른쪽)씨와 누나 최은우(37)씨는 영도구 한진중공업 안 광장에서 최씨의 관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회사를 향해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언론과 경찰에 대한 강한 유감도 함께 표시했다.
고 최강서씨의 부인 이선화(37·오른쪽)씨와 누나 최은우(37)씨는 영도구 한진중공업 안 광장에서 최씨의 관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회사를 향해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언론과 경찰에 대한 강한 유감도 함께 표시했다. 정민규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의 운구가 시작된 30일, 운구를 막는 경찰과 운구행렬이 뒤엉켰다. 마치 전쟁터 같았던 현장에서 유가족은 뜻하지 않게 이산가족이 됐다. 최씨의 아버지는 경찰에 맞아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최씨의 부인과 누나는 운구행렬을 따라 조선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휩쓸리듯 남편과 동생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지 40여일 만에 현장에 들어온 최씨의 부인 이선화(37)씨와 누나 최은우(37)씨는 밤새 고인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유족은 이것이 가족보다 회사를 아꼈던 고인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경찰이 운구행렬을 막아선 것은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사측이 안치를 위한 냉동탑차와 드라이아이스의 반입을 막고 있는 것에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절대로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유족은 만약 경찰이 시신 확보를 위해 병력을 투입할 경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기자를 향해 부인 이선화씨가 뛰어왔다. "기자님, 조중동 같이 왜곡보도를 하는 언론에 대해 강한 유감을 갖고 있다는 표현도 꼭 써주세요"라고 당부했다.

한진중공업이 조선소 내부로 취재진의 접근을 차단한 상황에서 유족들은 봉쇄 전부터 들어와 있던 언론과만 인터뷰할 수 있었다. 현재 조선소 내부에는 <오마이뉴스>와 <민중의소리> 취재진만 남아 있다.

다음은 유가족들과 나눈 이야기다.

"가족보다 회사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회사로 왔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임시로 자리잡은 고 최강서씨의 관. 유가족과 최강서열사대책위는 경찰과 사측의 침탈 등에 대비해 주변에서 관을 지키고 있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임시로 자리잡은 고 최강서씨의 관. 유가족과 최강서열사대책위는 경찰과 사측의 침탈 등에 대비해 주변에서 관을 지키고 있다. 정민규
- 42일 만에 고인의 시신을 영도조선소로 옮겼다. 어떻게 된 것인가?
부인= "40일 넘도록 사측은 교섭 한번 안 하고 조문 한번 안 온 채 말로만 애도를 표했다. 유가족과 협상할 마음이 있다면서 한 번도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렇게 조문을 오던 국회의원들도 올 때만 조속한 해결에 힘쓰겠다 했지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새정부를 기다렸는데 그쪽에서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남편의 죽음은 언급이 안 되고 있고 언론은 사측의 입장을 받아서 편파적인 보도를 한다. 대책위와 노조 분들이 서울까지 가서 상경 투쟁을 벌이는데 유가족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유가족이 다른 분들의 짐을 덜어주어야겠다 생각했다. 남편은 4살, 5살 아이와 부인을 두고 갈 만큼 회사가 우선이었던 사람이다. 유가족 뜻뿐 아니라 남편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김주익 열사의 이야기를 죽기 일주일 전쯤에 한 것으로 봐서는 마음을 그때부터 먹은 듯했다."


누나= "가족에게 남긴 유서보다 회사를 상대로 남긴 유서가 더 길었던 동생이다.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회사였고, 출근하길 원했던 회사였다. 목숨을 끊은 것도 회사였다. 회사로 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 어제(30일) 운구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과의 충돌을 어떻게 바라보나?
누나= "경찰이 너무 심했다. 약간의 충돌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루액을 뿌리고 폭행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처음 최루액이란 것도 모르고 경찰이 호스로 물을 뿌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부인= "2013년도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영화에서나 보고 70~80년대에나 있던 일인 줄 알았다. 유가족이 원했기 때문에 대책위와 합의하고 남편을 회사로 옮기자고 한 것이었고, 합법적인 절차로 행진을 한 것인데 경찰이 과잉진압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측! 대화하자면서요? 새벽이고 밤이고 언제든 기다리겠습니다"

- 충돌 과정에서 고인의 아버님도 다쳤다고 들었다. 상황을 설명해달라?
부인= "어제 제가 방송차에 올라서서 경찰에 '길을 비켜달라,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애원해도 경찰은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에워싸며 압박해 들어왔고, 시신마저 경찰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서문을 열었고, 우리도 조선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 상황에서 선두에 계시던 아버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경찰은 아버지를 유족으로 알고 있음에도 단추가 모두 떨어질 만큼 멱살을 잡고, 머리채까지 잡아끌었다. 안으로 끌려간 아버님을 경찰이 방패로 내리찍고 엄청 때렸다. 아버님은 지금 입원한 상태다. 머리를 너무 맞아서 눈도 아프다고 말씀하신다. "

(이런 주장에 대해 부산 영도경찰서 경비작전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최씨의 아버지가 폭행 당했다고 하던 시점 전에는 최씨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보지 못했다"며 "이후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누나= "우린 원래 이곳에 들어올 생각도 없었다. 조중동은 우리가 계획적으로 난입하기라도 한 듯 보도했던데 우린 동생을 운구해서 회사 앞으로 빈소를 옮기려고 했던 것뿐이다. 유가족들이 지낼 집까지 회사 앞에 다 봐놓고 보일러에 기름까지 다 채워놓았는데 경찰이 막으면서 이렇게 사태를 만든 것이다."

- 대책위가 요구한 냉동탑차와 드라이아이스의 반입을 사측이 막았는데?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부인 이선화(37)씨는 회사를 향해 교섭 창구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그는 "우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으니 교섭 좀 하자"며 유가족과는 대화에 나서겠다던 회사의 구체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부인 이선화(37)씨는 회사를 향해 교섭 창구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그는 "우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으니 교섭 좀 하자"며 유가족과는 대화에 나서겠다던 회사의 구체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정민규
부인= "이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있는 건지 없는건지 모르겠다. 자기들은 유가족과 장례 문제에 대한 대화를 원하고 죽음을 애도한다고 표현하던데 실제로는 회사 쪽 사람 그 누구도 유가족에게 조문 한번 오지 않고 유가족에게 만나자는 연락도 없었다. 유가족은 사측을 기다리는데 사측이 안 왔다. 지금이라도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새벽이고 밤이고 언제든지 기다리겠다"

누나= "사측은 유가족이 대화 제의를 안 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다"

- 일부 보수 언론의 보도에 평소 강한 유감을 표시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부인= "경찰은 쥐를 몰 듯 우리를 몰았고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찾는 심정에서 찾아 헤매다 서문을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보수 언론은 사측의 말만 듣고 우리가 용접기를 이용해 문을 뜯어냈다는데 당시 용접기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급박한 마음에 사람들이 문을 발로 차고 해서 열고 들어온 것이다.

보수 언론은 여전히 남편의 죽음을 회사랑은 관계없는 생활고나 밝혀지지 않는 이유라고 몰아가고 있다. 그 사람들이 유서를 못 본 것인지, 글자를 못 읽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가족들보다 회사를 향해 더 긴 유서를 남긴 남편이다. 그 뜻을 더 이상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요청드리고 싶다."

"40일간 냉동창고에 동생을 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길바닥에..."

- 사측은 대책위가 시신을 볼모로 시위를 벌인다고 비판하고 있다.
부인= "우리라고 하고 싶어서 이러겠나? 이렇게 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과연 자기들이 알기나 하겠나? 회사의 말만 보면 우리가 남편을 일부러 죽여 놓고 회사를 상대로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제는 정말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다. 우리는 절박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회사와 이야기하고 싶다. 제발 이야기 좀 하자. 한진중공업은 너무 잔인하다."

누나= "빨리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 매일 매일이 속상하다. 40일간 냉동창고에 동생을 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길바닥에 두고 있다."

- 대책위는 고인을 영도조선소에 모시고 투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족은?
부인= "밖에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경찰력이 저렇게 깔려서 안에 있는 사람들 연행하겠다는데, 다 연행하고 관을 가져가면 자기들이 우리한테 장례를 치르라고 할 것 아닌가. 그건 정말이지 남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 밖에서는 경찰이 시신을 침탈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누나= "만약 그렇게 하면 강서가 죽은 자리에서 나도 죽을 수밖에 없다."

부인= "우리는 목숨을 걸고 한다. 유가족은 그런 마음이다. 어머니도 경찰이 남편 운구 막자 자기를 데려가려며 울부짖었다."

- 마지막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나?
부인= "우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으니 교섭 좀 하자. 회사가 교섭에 나온다면 우리는 남편이 유언에 남긴 것과 1년 전에 조남호 회장이 청문회에서 얘기한 약속을 지키라고 할 것이다."
#최강서 #이선화 #최은우 #한진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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