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가 운행하는 열차가 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은희
유씨가 운행했던 열차는 1시간여를 달린 끝에 종착역에 닿았다. 그는 바쁘게 가방을 꾸려 문을 나섰다. 그러나 그의 운행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가 오전에 출발했던 역 방향으로 다시 운행을 시작해야 했다. 반대방향 끝의 운전실로 이동했다. 다시 출발하는 시간까지 약 5분여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는 물로 목을 축인 뒤, 출발 준비를 했다.
운행을 시작하자 플랫폼에서 기다렸던 승객들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유씨는 열차에 탑승하는 승객들을 바라보다가 예전에 있었던 사고 얘기를 꺼냈다. 그는 몇 년 전 열차 운행 중 사상 사고를 겪었다. 역에 열차가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선로에 뛰어들었던 것. 다행히 사람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 사고를 겪은 후 두세달 동안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사고 당시 '쿵'하는 소리가 쉽게 잊히지 않았어요. 그 당시는 그냥 넘어갔는데 한참 지나서 어디선가 '쿵' 소리가 나면 불현듯 그 때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내가 그 때 이런 소리를 들었었구나' 싶고요. 그 뒤로는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갈 때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간혹 열차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둥 뒤에 있다가 갑자기 나온다든지,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든지. 그런 사람들 보면 철로로 갑자기 뛰어내릴 것 같아서 긴장했죠. 그렇게 두세달은 힘들었던 것 같아요."유씨의 사고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졌다. 그러나 기관사들 중에는 사고 후유증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사고 후에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연속적으로 사고를 겪는 기관사들이 그렇다. 그런 경우는 일을 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한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자꾸만 불안하게 되고, 운전을 할 때에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그 후 회사의 대처방식이다. 열차에서 사고가 나면 회식을 취소한다든지, 조원 교육을 한다든지 '징계성'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고를 낸 기관사는 조원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된다. 이런 상황은 기관사가 겪은 사고가 마치 개인의 잘못이자 조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냥 인식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는 '9조 5교대(주간근무-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 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로 기관사들끼리 조를 이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각 조원들은 10-15명으로 관리자인 PL(Part Leader)이 한 명씩 배정된다. PL은 조의 기관사들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기관사들의 성과금과 승진 평가에도 관여한다. 그러다보니 기관사들은 PL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유씨는 이러한 구조를 "회사의 통제시스템이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당장 1인 승무제를 폐지해줄 것도 아니라면, 통제 시스템이라도 완화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현재 도시철도노조는 조를 없애고 각 기관사에게 개별적인 운행 일정을 주는 시스템인 '개별교번제'의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유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와 오전에 출발했던 역으로 돌아왔다. 약 2시간의 여정이었다. 플랫폼으로 나오자마자 반사적으로 큰 숨을 한번 내뱉었다. 막혔던 숨이 확 트이는 순간이었다. 귓가에는 한참동안이나 선로 위를 굴러가는 열차의 쇳소리와 함께 그가 마지막에 답답해하며 뱉었던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안 좋은 일들이 있고 나면 '이제는 뭔가 바뀌겠지' 하는데 어떤 변화도 없어요. 기관사들이 요구하는 개선점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기관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없었어요. 그것도 황씨의 죽음이 있고 나서야 드러났죠." 서울도시철도공사 "근본적 개선대책 강구하고 있다"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기관사 처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운영하여 운전분야 현안사항 등에 대해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며 "서울시와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발족하여 근본적 개선대책을 종합적으로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