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물러난다고 미국 무너졌나? 정의는 '책임'"

[토론회]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등록 2013.02.06 17:45수정 2013.02.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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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한국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며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우리 집단에 피해가 되느냐로 판단하는 사회"라고 꼬집었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한국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며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우리 집단에 피해가 되느냐로 판단하는 사회"라고 꼬집었다.강민수

"미국 법무부 청사 외벽에는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풀어서 이해하면 정의가 흔들리면 곧 사회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경제, 교육, 문화를 버리더라도 정의만큼은 끝까지 지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보수주의자의 정의론에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누구보다 정의를 앞세우는 국회의원에게 2013년, 대한민국의 정의를 진단한 그는 바로 표창원(48) 전 경찰대 교수다. '정의는 강자의 것', '힘이 곧 정의'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는 "말할 때마다 가슴 떨리는 것"이라고 정의를 설명했다.

그는 민주통합당 초·재선 의원 모임 '주춧돌'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연 토론회에서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자신의 정의론을 펼쳤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 12월, 국정원 직원의 불법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비판하다 경찰대 교수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토론회에는 주춧돌 모임의 전순옥·김상희·박수현·신장용·이용섭·신경민·강기정·민병두·은수미·김태년·홍익표·최민희·김현미·박완주·김성주·유은혜 의원 등이 참석했다.

2012년 대선은 정의 대 정의의 대결... "절차적 문제 있었다"

그는 2012년 대선 결과와 관련해 "정의가 패했다"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반대 편에서는 정의가 승리했다, 이제 정의가 힘을 펼 때라고 말하죠. 내 생각에는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 아니라 정의와 정의의 싸움이었다. 안보와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정의와 민주주의·인권·복지를 중시하는 정의의 싸움이었다."


그는 결과에 승복하는 게 문명 사회의 도리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대선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바로 국정원 직원의 불법 정치개입 의혹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후 경찰 수사결과 김아무개씨는 정치·사회와 관련된 90여 개의 글을 직접 게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노리던 공화당이 워터게이트빌딩의 민주당 선거 캠프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이후, 닉슨 대통령은 재선했지만 워터게이트의 진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남소연

"현직 대통령이 사임한다고 미국이 무너졌나? 그렇지 않았다. 오직 반칙에 대한 책임을 졌을 뿐이다. 정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넘어 그에 맞는 책임도 수반하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과 동시에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가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정의의 수준도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 특별 사면에서 정의의 수준이 잘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MB맨이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이 지난달 31일 석방됐다. 이에 임기 말 최측근의 특혜 사면이라고 비난이 일었다.

그는 이에 대해 "악질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사면받았다"며 "정의의 기준에서 볼 때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한국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며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우리 집단에 피해가 되느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사회가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같은 비판을 국회의원에게도 적용했다. 국회의원들이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이제까지 법을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며 "나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나, 눈치 보느라 맞서 싸워야 할 상대에게 가열치 못했다"며 쓴소리를 남겼다.

"대선에선 실패했지만 대신 표창원 얻었다"

 '제18대 대선 투표율 80%를 넘기면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약속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투표율이 75.8%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시민들과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제18대 대선 투표율 80%를 넘기면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약속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투표율이 75.8%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시민들과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권우성

그는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한 '무지의 베일'이라는 원칙을 기준으로 정의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린다. 가치 판단의 대상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고 엄정한 판단을 못 내리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어떤 문제에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의의 가치가 필요하다"

일부에서 대선 후 활발한 활동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주변에서 정의의 사도인 것마냥 코스프레 한다고 지적한다"며 "어떤 사리사욕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치와 멀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5년간 공직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그의 정의론을 경청한 후 김상희 의원은 "우리 당이 대선에서 실패했지만 대신 표 전 교수를 얻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나온다"며 "민주당이 국민을 '힐링'하지 못했는데, 표 전 교수가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를 대신해줘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 전한다"고 말했다.

김현미 의원도 "가장 무도한 정권, 이명박 정권이 특별 사면을 통해 힘이 곧 정의인 것을 국민들에게 알려줬다"며 "정권교체를 못해서 그 사람들이 고이 걸어나가게 만든 죄를 지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 의원은 "힘이 없지만 정의의 이름으로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표창원 전 교수 #민주통합당 #주춧돌 #국정원 직원 정치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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