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나마 강정을 응원합니다
노순택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음을"- 광주에서 강정마을로 보내는 편지
섬은 본디 외로운 곳일 테지요. 뭍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겠지만 그도 잠시, 그들은 하나같이 지나가는 여행객에 불과할 테니까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몇 번 다녀간 곳, 그러자니 제주를, 강정을 제대로 알 리가 없지요. 오래전 광주도 그랬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시내 도처에서 일어날 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우리는 광주 밖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외로움을 전하고 싶어 했지요. 그래서 사지(死地)를 벗어나 밤길을 걸어가면서도 혹여 죽어가는 이들을 두고 우리만 도망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지요.(윤정모 소설<밤길>)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광주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심드렁하게 그래요. "찰칵, 여기서 그랬단 말이지? 찰칵, 찰칵, 정말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임철우 소설 <관광객들>)
그러나 한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날 광주의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아파하고, 그래서 함께 싸우고 그랬는지요. 그것은 무참하게 사람의 생명을 해친 데 대한 분노와 그때 우리가 광주를 외면했다는 죄의식이 모여서 이룩된 깊고, 커다란 울림이었지요. 그 힘으로 우리는 다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얻었어요. 여전히 그날, 광주의 뭇 생명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자들이 더러는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듯 보이지만, 그리고 여전히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끝내 진실은 승리할 것을 우리는 그렇게 믿어왔지요.
"겨울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그러나 때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신경림 시 <나목裸木>) 기억하는 것은 위안을 넘어 일종의 크나큰 힘이 되지 않을는지요. 지금은 비록 이 밤길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해도,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쉼 없는 노력이 오늘 눈보라치는 강정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힘이 되지 않을는지요. 그렇게 광주가 이겨냈듯이, 오늘 제주가, 강정이 잘 견뎌 마침내 이겨낼 것을 우리는 믿어야겠지요.
물론 위로만 가지고, 분노만 가지고, 희망만 가지고, 강정을 지키거나 세상을 바꾸기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너무나도 힘이 든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요. 그러나 다시 슬픔도 힘이 된다는 것을, 분노가 우리를 뭉치게 한다는 것을 저들은 알 리가 없지요. 그러면 종내 우리가, 강정의 눈물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지요. 구럼비와 강정을, 제주의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모두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오늘 눈보라치는 강정에서의 지치지 않는 투쟁은, 당장에는'패배'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투쟁의 과정에서 낡고 무도한 질서의 힘은 부식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할 것이에요. 우리는 다시 또 일어서고 기운을 얻게 될 것임을, 결국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그것이 모여 커다란 울림이 되어 마침내 강정을 지켜낼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지요.
비록 멀리서 강정을 응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항상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해주시길,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이 옳다는 것, 그러니 결코 지치지 않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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