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장시 40년에 이런 설은 첨 봐유!"

[전북 군산 재래시장] 설날은 코앞인데, 경기는 꽁꽁 얼어붙어

등록 2013.02.08 16:31수정 2013.02.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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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방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북지역 체감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는 전월 대비 0.7%, 전년 동월 대비 1.4%나 오르는 등 깊어진 가계부 주름을 반영한다. 특히 설 대목에 소비가 급증하는 채소, 과일, 어류 등은 전월보다 평균 6.5% 이상 뛰어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구경하는 사람도 만나기 어려운 군산 역전시장 ⓒ 조종안


민족의 명절 설날이 코앞인 7일(목) 전북 군산의 재래시장(역전시장, 구시장, 신영시장) 경기는 영하 10도의 날씨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고, 상인들의 탄식 소리만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귓불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까지 불어 일찌감치 좌판을 거두는 노점상이 눈에 띄기도.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해야 함에도 가격을 묻는 사람조차 없었다. 간혹 보이던 거리의 약장수도, "떨이요 떨이!"를 외치는 좌판도 보이지 않았다. 이맘때면 어머니를 따라온 꼬마들로 북적여야 할 옷가게와 신발가게는 찬바람이 돌았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위축된 소비심리 영향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상인들의 중론.

"채소는 비싸서, 쇠고기는 무서워서 못 먹겠어요!"

군산 신영시장 채소전 풍경, 셔터를 내린 가게들이 긴 불황을 설명하는 듯했다. ⓒ 조종안


설날 제수용 음식을 장만하려고 친구와 함께 나왔다는 40대 주부는 "잠시 시장을 돌아보았는데, 과일과 채소는 비싸서, 쇠고기는 작년보다 조금 내렸지만 무서워서 못 사 먹겠다"고 푸념했다. 그는 "2005년 광우병 파동 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쇠고기는 되도록 멀리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태풍·집중호우 등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든 탓에 채소가게 주인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배추(10kg) 1만8000원, 무(1개) 1000원, 고사리(수입) 한 보시기 7000원, 도라지(수입) 5000원, 곶감 1봉지(20개) 1만2000원, 수입 밤(1kg) 7000원, 취나물 5000원, 시금치(1관) 1만8000원, 대파(2kg) 1만2000원, 고구마 상품(10kg) 3만8000원을 호가했다.


대추만 작년보다 20% 정도 내렸고, 대부분 품목은 작년보다 20% 이상 올라있었다. 채소가게 주인은 밤은 50%, 시금치는 40%, 배추는 50% 정도 올랐고, 호박(1개)은 40%, 오이(1개)는 50% 올랐다며 울상을 지었다. 제수용 사과와 배도 가격은 작년과 같지만, 씨알이 훨씬 작아졌단다.

채소가게 주인은 손님이 "냉이가 벌써 나왔네!"라며 반가워했다가 가격을 알고 비싸다고 하자 "아침에 경매 가격이 1관에 1만8000원 나갔어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날이 추워서 그런지 예년에 한 보시기 5000원씩 팔던 국내산 고사리 나물은 구경도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손님들이 알고서 묻는지 비싼 남새나 국내산 나물만 찾는다는 것.


생선장수 박 할머니, "이렇게 꽁꽁 얼어붙은 대목은 처음"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대목장은 처음 본다는 박구월 할머니가 저녁을 먹고 있다. ⓒ 조종안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명태포를 뜨고 있다. 수북하게 쌓인 명태포 주인은 누가 될지? ⓒ 조종안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코를 훔치고 달아나기에 돌아보니 생선가게 박구월(74) 할머니가 얼굴만 내놓고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좌판으로 시작한 생선장수를 42년째 하고 있다는 박 할머니는 3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일 가게에 나오는 이유는 막내며느리가 생선을 다룰 때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선장수로 아들 3형제를 모두 공부시켰다는 박 할머니는 "생선장시 40년 만에 이렇게 꽁꽁 얼어붙은 대목은 첨 봐유!"라며 탄식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건어(乾魚)를 부탁하는 단골도 있었고, 가게로 찾아와 주문하는 손님도 있었는데, 다들 어디로 도망(?)갔는지 얼굴 대하기도 어렵다는 것.

제수용 조기(상)는 14마리 5만 원, 박대(중) 10마리 3만 원, 병어(중) 1마리 2만 원, 국산 홍어(小) 1마리 5만 원이었다. 갑오징어(중) 4마리 2만 원, 생태(상) 3마리 2만 원, 아귀(중) 1마리 3만 원, 갈치(중) 1마리 1만5000원, 아귀(중) 1마리 3만 원, 꽃게(1kg) 1만3000원이었다. 제수용 박대, 병어는 20%, 조기는 30% 정도 올랐고, 갑오징어는 예년과 비슷했으나 씨알이 작았다.

제수용 반찬가게, 손님은 느는 추세이지만 수입은 줄어

채반위의 제수용 조기찜, 병어찜, 박대찜, 장대찜 ⓒ 조종안


설날 차례상에 오를 각종 부침개들. 보기에도 푸짐했다. ⓒ 조종안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각종 부침개와 생선찜 등 제수용 음식을 진열해놓은 반찬가게가 발길을 잡았다. 음식이 푸짐하고 품위 있게 보이기도 했지만, 만든 사람과 주인의 정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각종 생선찜에 실고추, 실파, 통깨 등 예쁜 고명을 올려놓았기 때문.

5년 전 시장에서 처음으로 제수용 음식가게를 시작했다는 임성진(35)씨는 "제사와 차례상에 사용할 음식이니 최소한의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기본 예의 아니겠느냐"고 되물으며 "제수용 음식이 아직은 손님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일일이 설명을 해드려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침개 종류는 홍어, 명태, 표고버섯, 동그랑땡(돼지고기), 맛살, 대파 등. 생선찜은 조기, 박대, 장대, 병어(병치) 등이었다. 가격은 부침개 1kg에 2만 원씩. 조기는 7마리 1만 원, 장대 1마리 5000원, 박대 1마리 5000원, 병어 1마리 1만 원을 호가했다. 임씨는 "손님의 필요에 따라 부침개는 500g(1만 원)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고 귀띔.

임씨는 "손님은 조금씩 느는 추세이지만, 실수입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진다"며 울상을 지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취급하는 제수용 음식은 몇 년째 제 가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임씨는 "재룟값이 올랐다고 양이나 크기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난감해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노란 밀감 상자들이 안타까운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2008년 1월 부산 구포시장을 취재하면서 "이명박 당선인이 5년 후에도 밀감을 10개 1000원씩 사 먹을 수 있도록 물가 관리를 한다면 진정한 경제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는데, 100%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순간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이 콧잔등을 스쳤다.

거리에 나온 밀감. 5년 전에 비해 100% 가까이 올랐다. ⓒ 조종안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설날 #재래시장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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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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