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렁 푸~ 아니 벌써 서울이야?"

[체험기]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끝, 새벽 기차로 귀경하기

등록 2013.02.11 20:28수정 2013.02.11 20:2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전 5시 25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 모두가 잠자는 틈을 타 귀경길에 올랐다. 설연휴 마지막 날인 11일 오전 새벽 기차를 타고 충북 제천에서 서울 청량리로 온 것.


오전 5시. 새벽기차로 귀경하기 위해 제천역에 왔다. ⓒ 박선희


새벽 귀경길, 열차 안의 모습은 TV 속 귀경풍경과 사뭇 달랐다. 열차 한 칸에 좌석은 모두 72석, 앉아있는 사람은 14명뿐 이었다. 다른 칸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총 4칸이 연결되어 250명가량 앉아 갈 수 있는 열차에 제천에서 탄 승객은 약 50명가량. 짐 봇다리들을 옆 좌석에 두어도 충분할 만큼 열차는 한적했다.

제천에서 오전 5시 25분 출발하는 상행 새벽 기차는 영동선을 타고 원주, 양평, 덕소 등을 거쳐 서울 청량리에 도착한다. KTX나 새마을호보다 느린 무궁화호 열차다. 느려도 기찻길은 막히지 않으니 2시간이면 제천-서울 귀경길이 끝이 난다.

때문에 오전 5시부터 50여 명의 귀경객들이 제천역을 찾았을 터다. 명절 귀성·귀경 4년 차 초보인 나도 '막힐 일' 없다는 이유 하나로 새벽 댓바람부터 고향집을 나섰다. 기차에 비해 사방이 꽉 막혀 도로 위에 서 있는 버스 안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화장실이 없으니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괜히 걱정이고, 도착 시간을 헤아릴 수 없으니 짜증이 난다.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하고, 화장실도 편히 갈 수 있으니 좋다.

드문드문 자리를 잡은 승객들은 열차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잠에 빠져있었다. 코트로 얼굴까지 덮은 이도 있고, 창문에 고개를 기댄 채 잠을 청하는 이도 있었다. 수면제를 뿌려놓은 듯 새벽 기차 안 사람들은 모두 곤하게 자고 있었다.

오전 5시 25분 제천발 청량리행 무궁화 열차 4번칸 모습 ⓒ 박선희


중간 정차역에서 승객이 타도 마찬가지. 6시쯤 원주역에서 4번 칸에 탄 사람은 20~30여 명. 모두 분주히 자리에 찾아 앉더니 눈부터 감았다. "중간에 내리느냐"고 물으려는 찰나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고개를 돌리고 잠에 들었다.


이 새벽 기차에는 '열차카페' 대신 '미니열차카페'가 있었다. '열차카페'는 열차 한 칸을 카페로 꾸며 도시락을 먹거나, 컴퓨터·노래방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용객이 많거나 장시간 운행하는 열차에는 대개 이 '열차카페'가 있다. 대신 이용객이 적거나 단시간 운행하는 열차에는 과자와 음료수를 뽑을 수 있는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자판기가 있는 작은 휴식공간을 '미니열차카페'라 부른다.

좌석표가 없어 입석표를 끊는 승객들에게 이 카페 공간은 편히 앉아 갈 수 있는 '찬스'다. 카페 안에 좌석이 구비되어 있거나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귀성·귀경길 열차에서 이 공간은 누구에겐 편한 쉼터였을 터다.

새벽 귀경기차에선 이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이 없었다. 청량리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 안에도 입석 승객이 없어 보였다. 마지막 정차역인 덕소역에서 4번 칸에 빈자리는 6개 정도. 중간중간 빈자리가 있을 정도로 좌석은 충분했다.

넘치는 것은 사람보다 코골이 소리였다. 원주역을 지난 후 잠깐 졸다 깨니 7시, 열차는 덕소역에 정차해 있었다. 열차 밖 풍경도 밤에서 아침으로 변해 있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 대신 푸른 햇빛이 열차 밖을 밝히고 있었다. 해는 떴지만, 열차 안은 여전히 한밤중. 잠에 빠진 승객들의 코골이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코골이 소리도 다양했다. "드르렁 푸우", "커커컥 푸우", "쌕쌕". 사방이 시끄러워도 승객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오전 7시 덕소역에 잠깐 정차한 열차안 모습. 출발 때와 달리 승객이 늘어난 모습이지만 모두 자고 있다. ⓒ 박선희


오전 7시 25분. 열차는 연착되지 않고 정시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부스스 일어나 몸을 풀고 짐을 챙겼다. 플랫폼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 청량리역 대기실에 나오자 실감이 났다. '고향에 다녀왔구나, 이제 서울이구나'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10일 설날 오후 1시 15분 기준 승용차를 타고 부산-서울 귀경길에 걸리는 시간은 9시간. 11일 오후 1시 기준으로는 6시간 40분이다. 같은 시작 기차를 탔다면 서울까지 오는데 무궁화호 열차는 5시간 반, KTX는 약 3시간이면 충분하다.

기차가 훨씬 빨리 오는 만큼 기차표 경쟁도 만만치는 않다. 지난 1월 15,16일 귀성길 기차표 인터넷 예매 동시접속자는 각 37만 명, 42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블루오션은 있다. 새벽 기차다. 명절 연휴 기간이라도 고속도로가 막히는 시간대를 피하면 귀성·귀경길이 한층 편해지듯, 기차도 황금 시간대를 피하면 구하기 쉬워진다. 필자는 11일 설연휴 마지막 날 새벽기차를 5일 저녁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새벽 기차 표는 상대적으로 구하기 쉽다. 황금시간대 좌석표가 모두 매진됐더라도 입석표는 남아있을 수 있다. 코레일 홈페이지(www.korail.com)를 통해 매표 상황을 확인할 수 있고, 출발할 기차역에 문의하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꽉 막히는 고속도로 위가 답답하다면, 다음 명절엔 기차를, 새벽 기차로 타보시길.

청량리역 플랫폼에서 대합실로 나가는 길. 귀경객들이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 박선희


#새벽기차 #귀경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4. 4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5. 5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