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세상

입양특례법의 개정이 해답일까?

등록 2013.02.12 13:55수정 2013.02.12 13:55
0
원고료로 응원
'마른 하늘에 날벼락'. 고요한 일상,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발생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 예기치 않은 불상사는 예외적이고 우연적인 어떤 사건이라기보다는, 사실 내가 사는 세상의 본질 혹은 구성적 차원에 문제가 있어왔음을 어느 날 갑자기 드러내어 주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도심의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내 코 앞으로 벽돌이 떨어진다고 하자. 혹은 묻지마 칼부림이 벌어진다고 하자. 이런 일을 오늘 우연히 한 번 그렇게 일어난 일로 치는 한, 그래서 그냥 벽돌을 치우고, 묻지마 칼부림범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만으로 사안이 종결된 것으로 여기는 한, 사실상 우리는 문제를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의 구성적 차원에 대한 의혹에 기초해서 그와 같은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야하는 과제를 회피하는 일이 된다.

아동살해와 유기! 근자에 와서 언론에 거듭 출몰하는 날벼락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고이 두고 황망히 떠나는 엄마들이 있고, 눈물 젖은 메모와 함께 대형마트의 유아보호실에 낳은 자식을 놓고 떠나는 엄마들도 있다. 심지어 공중 화장실에, 야산에, 아파트의 정원에 출산 직후 살해된 유아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삶의 길을 걸어야 하는 엄마와 버림받음으로부터 생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아기가 우리 사회에 있고 그것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혹하다. 거기에다가 누군가가 이 일을 야기했다는 거친 손가락질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해 8월 5일에 시행된 입양특례법이 잘못 개정된 까닭에 이런 아동살해와 유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큰 숨을 한번 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해결책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길을 걷는 내 코앞으로 주먹만한 시멘트조각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하나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보도 위로 차단막을 설치해서 시멘트조각이 사람들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은 건물 외벽을 샅샅이 살펴서 균열이 간 시멘트 외벽을 본격적으로 수리해야 할 것이다. 수리가 끝나면 차단막을 제거하는 것이 또한 당연한 순서이다. 그런데 작금의 당혹스러운 아동유기의 원인이 깐깐해진 입양특례법에 있는데, 그 이유는 미혼모들이 자기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출생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 이 대한민국 땅에서 어느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출산 사실을 국가의 공부의 기록에 올리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안이 24세 이하의 청소년미혼모들에게는 자신이 출산한 아동에 대해 출생신고의 의무를 면탈해주고, 입양 의뢰된 아동의 후견인인 입양기관의 장이 아동을 기아로 간주하고 일가창립에 해당하는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어서 입양 절차를 개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한 미혼모들이 출생신고의 의무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아이를 베이비박스나 대형마트의 유아보호실에 유기하러 가는 대신에 입양시설로 데리고 갈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개정안은 딱 여기까지다. 시멘트 조각 떨어지는 보도 위로 차단막을 치자는 이야기다. 눈앞에 보이는 증상을 제거하자는 이야기다. 건물을 샅샅이 살펴 금이 가고 물이 드는 외벽을 걷어내고 깨끗하게 수리한 후에 마지막으로 차단막을 철거하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입양을 자명하고 완결적인 해법으로 여기는 데서 오는 일종의 의식 교란의 산물이다.

입양은 자명한 아동양육시스템은 아니다. 입양은 국가적 재난으로 친생가족아동양육시스템이 고장이 난 경우에 대한 하나의 비상대응방식으로서의 아동양육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6·25라는 비상시기에 씨 뿌려진 해외입양이라는 기형적인 아동양육방식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하나의 항구적인 아동양육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에 대한 성찰이 결핍된 흉내 내기로 국내입양이 민간과 정부를 통해서 격려되어, 선하고 아름다운 아동양육의 한 방식, 혹은 보편적 아동양육방식에 가까운 관념으로 우리사회에 둥지를 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기에 내어 몰리는 아동을 입양을 통해서 구원하자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나 반쪽의 진실이자 반쪽의 해결방식이다. 입양을 통해서 아이와 엄마는 결별하고 만다. 아이에게도 원초적 상처가 남는 일이고, 엄마에게도 일생을 가름하는 사회적 죽음을 남기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입양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를 물어야 한다. 자기 낳은 아이를 살해하거나 유기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절망 가운데서 부르짖는 엄마들에게 입양 아닌 다른 선택지를 마련해주려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1985년에 가입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은 가입국의 여성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 혹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임신, 출산, 수유 기간 동안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엄마와 아기를 분리해서 대응하라는 권고는 없다. 임신과 출산과 수유의 위기를 겪고 있는 엄마와 아기를 함께 돌보아야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최소한 그들과 함께 사는 생의 동료들이라면, 아기의 유기를 이미 결심한 엄마에게 입양이 해답이라고 제시하기 전에, 유기 결심 이전 단계에서 이들이 제공받을 수 있는 사회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

제3지대 임신출산여성긴급지원센터를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이 긴급하게 설립하고 이들이 이토록 통절한 아픔 가운데서 살해나 유기의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우리 사회를 구성해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햇빛 좋은 맑은 날, 날벼락처럼, 여기 불쑥 저기 불쑥 날아드는 아동살해와 유기에 관한 참담한 소식으로 더 이상 아연 당혹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일이다.

친생가족양육체계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 더 이상 입양이라는 비상아동양육체계를 보편적 아동양육방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래서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낳은 엄마가 자기 아이를 키우는 일로 더 이상 곤경이 없는 사회로 우리사회를 재구성해가야 한다.

입양은 보편적 아동양육방식이 아니다. 불가피한 경우에 선택하는 특수한 방식이며, 궁극적으로 입양은 한 사회의 아동양육방식 구성에 있어서 최소화가 그 지향점이 되어야 할 아동양육방식이다. 입양이 예외일 수는 있어도 상례가 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엄마와 아기의 결별에 기초해서 제공되는 사랑이긴 하지만, 이 사랑 때문에 결별의 재난이 일상화 되어서는 안 된다. 엄마와 아기를 분리해서 대응하는 입양시스템을 통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고, 엄마와 아기를 함께 아울러 보듬어 내는 사회안전망을 긴급하게 마련하는 일을 통해서 해결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김도현 기자는 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집> 원장이자 목사입니다.
#입양특례법 개정 논의 #신생아 유기 #해외입양 #뿌리의집 #친생가족양육시스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2. 2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3. 3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4. 4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5. 5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