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5년 뒤 박근혜 당선인도 '셀프 훈장' 받는다

'무궁화대훈장' 논란, 5년 만에 재등장..."셀프 훈장, 없어져야 할 구습"

등록 2013.02.13 19:13수정 2013.02.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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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에게 양국 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한 뒤 포옹하고 있다. (2009.11.12) ⓒ 연합뉴스


"대통령이 자기 자신과 부인, 두 사람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주기로 했단다. 일을 잘했으면 국민들이 퇴임을 서운해 하면서 주지 말라고 해도 최고의 훈장을 줄 것이다. 그런데 임기 중에 자신의 공적에 대해 자기가 훈장을 주고 있다. 자화자찬도 유분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8년 1월 29일, 심재철 당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말이다.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 내외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자 '자화자찬'이라며 잔뜩 날을 세운 것.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국민이 대통령 재임 5년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스스로 평가한 것이냐"고 반문했고, 강성만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부부가) 함께 훈장을 받기로 한 건 아무래도 집안 잔치를 벌이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5년 후, 똑같은 논쟁이 불거졌다. 다만, 공격과 수비가 달라졌다. 새누리당(구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대통합민주신당)의 입장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기로 하자 이번엔 민주당이 나서 '셀프 훈장'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김정현 민주통합당 부대변인은 12일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받는 무궁화대훈장 제작비용이 1억 원 가까이 소요된다"며 "측근들 '셀프 사면'해줘 지탄받은 지가 엊그제인데 다시 '셀프 훈장'이라니, 뻔뻔함을 겨루는 올림픽이 있으면 금메달감"이라고 비난했다. 5년 전 침묵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잘했으면 셀프 훈장에 국민 누구도 시비 걸 생각은 없을테지만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 실정으로 통곡하고 있다"며 "꼭 마지막까지 '셀프 훈장'을 받으면서 서민의 피눈물을 빼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김 부대변인이 내세운 논리가 5년 전 심재철 원내수석부대표와 꼭 닮아있다.

5년 전 핏대를 세웠던 새누리당은 이번엔 아무런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어느 쪽에서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공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지안 진보정의당 부대변인은 13일 "'집안잔치를 벌이는 것 같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훈장 (수여)를 비판했던 새누리당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옹졸하다"고 일침을 놨다.


5년 만에 재연된 '무궁화대훈장' 논란...5년 후에 또?

무궁화대훈장을 둘러싸고 논쟁이 반복되는 건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면 누구나 무궁화대훈장을 받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상훈법에 따르면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 최고 훈장으로서 대통령에게 수여하고 대통령의 배우자와 우방 원수 및 배우자에게도 수여할 수 있다'고 돼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 모두가 이 훈장을 받았다. 물론, 배우자가 받는 건 선택사항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는 직전 대통령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새로운 당선인에게 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이 때문에 취임과 동시에 훈장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 때부터 이 같은 관례가 깨졌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때 받기보다 5년간 노고를 치하 받는 의미에서 퇴임할 때 받는 게 타당하다"며 취임식 훈장 수여를 거부했다. 이에 퇴임 직전인 2008년 1월에야 훈장을 받게 됐다. 이 대통령도 비슷한 이유로 훈장 수여를 미뤘고, 퇴임 직전 훈장을 받게 됐다.

'당선됐다'는 이유만으로 무궁화대훈장을 받는 것이나, 퇴임 직전 스스로에게 훈장을 주는 것 모두 순순히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훈장 하나에 5000여 만 원의 제작비가 들어가기에 더욱 그렇다. 무궁화대훈장에는 금 190돈이 사용되고 은 110돈, 자수정·루비까지 들어간다. 4800여 만 원의 제작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 부부 내외가 모두 받을 경우 1억여 원이 소요되는 것이다. 최고 훈장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대통령과 배우자, 우방 원수 및 배우자'에만 한정돼 있는 것도 문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셀프 훈장'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지안 진보정의당 부대변인은 "대통령의 셀프훈장은 중단돼야 할 구습"이라며 "사라져야 할 구태에 국민의 혈세까지 축 낼 필요가 있나, '영예운장안'에 대한 정치권의 재논의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이면 무조건 받게 돼 있는 법을 바꿔,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고 훈장 수여' 대상을 넓히는 것도 고려 지점이다. 신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게 주는 방식으로 훈장 수여 절차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역시 법 개정 사안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있지 않는 한, 혹은 스스로 훈장 수여를 거부하지 않는 이상 박근혜 당선인도 '셀프 훈장'을 받아야 한다. 박 당선인이 취임식 때 무궁화대훈장을 받으려면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국무회의가 열리는 오는 19일 이를 결정해야 하지만 훈장 수여 건은 안건에 올라와 있지 않다. 결국 박 당선인도 이 대통령처럼 퇴임 직전 '셀프 훈장'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5년 후 또 다시 '셀프 훈장' 논란이 이느냐는 박 당선인에게 달린 셈이다.
#무궁화대훈장 #이명박 #박근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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