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비서당'으로 전락한 집권 여당

보수진영에서도 인선 맹비난... '정치력 실종' 당 지도부는 '돌격대'?

등록 2013.02.22 12:00수정 2013.02.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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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된 진영 정책위의장이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정관용
"박근혜 후보는 왜 대통령이 되면 안 됩니까?"
(중간 생략)
유시민 "저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소위 옛날 조선시대로 치면 환관정치, 그러니까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좀 사리에 어두운 권력자를 이용해서…."

18대 대선을 닷새 앞둔 지난해 12월 14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유시민 전 진보정의당 의원이 '환관정치'라는 단어를 꺼냈다. 진행자인 정관용씨는 방송에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판단했는지, 서둘러 "알겠습니다"라며 유 전 의원의 말문을 막았다.

이젠 정계를 은퇴한 유 전 의원의 대선 당시 발언을 다시 꺼내든 것이 적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유 전 의원의 말대로 조선시대 '환관정치'가 박근혜 새 정부에서 되살아날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대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정부에 '충신'은 없고, '환관'만 보인다는 비판은 일찌감치 회자되고 있다.

'밀봉·깜깜이 인선, 용수철 협상'... '박근혜 입'만 쳐다보는 집권여당

대통령직 인수위원 인선과 국무총리·장관 인선을 보면서 그런 우려는 더욱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스스로 밀봉한 봉투를 뜯어 발표만 할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대변인, 총리·장관 내정자 발표 때까지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깜깜이 인선', 그래서 모두 박 당선인의 입만 쳐다봐야 하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던 박 당선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여야협의 과정 중에 장관 후보자를 덜컥 발표해버렸다. 스스로 여야 협상 자체에 난관을 조성했고, 새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은 어려워졌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새 정부 출범에 차질이 빚어진 현 상황에 대해 '야당의 발목 잡기'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양파껍질' 의혹들로 대표되는 인선 검증 시스템의 문제나 정부조직개편안 협상 난항의 모든 책임이 바로 박 당선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의 최근 여론 지지율은 이전 대통령들의 절반 수준인 40% 후반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누구 하나 공개적으로 나서서 발언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력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야당과의 협의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원안대로 통과시켜 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 절충안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원식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을 두고 "새누리당을 보면 '용수철정당'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 협상이) 좀 진행되다가 박근혜 당선인이 한 마디 하면, 그때마다 처음 입장으로 다시 튕겨와 협상이 계속 제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는 여당 의원들의 낯부끄러운 '쉴드 치기'(후보자 방어) 행태가 버젓이 횡횡한다. 오히려 원내 사령탑인 이한구 원내대표는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날치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 당선인의 '돌격대'를 자임한 꼴이다. 지난 5년간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해왔던 박 당선인은 "여당이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거수기 여당'이라는 자조 섞인 신음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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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기획조정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당선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내각 인선 보고 깜짝 놀라... 당과 국회를 우습게 보는 건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난 20일 당내 중진급 의원들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정몽준 의원은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일을 잘하려고 하다 보니 절차상 미숙한 점이 있었다는 점을 야당에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며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정의화 의원은 원내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를 탓했다. 그는 "(야당의 요구 중에서) 수렴 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는 원내지도부가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며 "하루빨리 여야가 서로 한발씩 양보해서 타협을 이뤄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상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렴해 '박근혜 표' 정부조직개편안의 수정을 우회적으로 시사 한 것이다.

그는 특히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를 언급하면서 박 당선인의 인사 검증시스템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고액의 보수를 받으며 법무법인이나 무기중개상을 위해 일했던 전직 관료들이 다시 공직을 맡겠다고 나선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공직자가 퇴임 후에) 전관예우를 받아서 천문학적 액수의 월급을 받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그런 분이 새삼스럽게 출세까지 하겠다고 하시니 이것이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굉장한 위화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도 국민들로부터 굉장히 실망을 받게 되는 결과가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든다. 제가 그런 기사를 이틀 연이어 보면서 이분들이 우리 국민들을 우습게 알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국회가 청문회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을 알면서 당과 국회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조용히 스스로 잘 판단해서 다시 고액봉급자로 돌아가시는 것은 어떠실지 제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진영에서도 이들을 거들고 나섰다.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인 선진화개혁추진회의도 이날 논평을 내고 "전관예우로 많은 부의 축적은 고위공직자에게 치명적 결격사유"라라며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후보지명 수락을 고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순형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를 겨냥 "월 평균 1억 원은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의 결과"라며 "자진사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관예우 논란이 있는 내각 후보자는 황교안 후보자 외에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윤병세 외교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 서남수 교육장관 후보자 등이다. 퇴임 후 이전 직무와 관련이 있는 법무법인·기업·대학 등에 취업하거나 고문으로 등재한 이들은 월 800만~1억 원에 이르는 고액 보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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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4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고소영'도 비웃는 '성시경' 인사... 친박이나 당이나 '비서' 처지

집권여당에서 '쓴소리'가 나오지 않자, 심지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편중) 인사'로 비판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까지 나서서 '박 당선인의 인사가 더 문제'라고 비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1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지금 정부·시장·시민사회 이 세 축이 잘 균형을 이루면서 조화를 이루면서 혁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쪽 시민사회나 시장의 목소리가 국정운영에 너무 반영이 안 되고 정부가 너무 주도하는 모습으로 가면 균형이 깨질 수가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박 당선인 인선에 대해 "인사에 그런(시장·시민사회) 것들이 골고루 반영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의 반영이 (박 당선인의 인선에서는)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당선인의 인선이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 편중) 인사'라는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특정 집단이 권력 주변에 모여 있으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전 수석은 "특정 학력이나 특정 고시 기수, 이런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서 권력주변에 스며든다. 그것을 의도적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끼리끼리 문화가 금방 확산되고 퍼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수년간 박 당선인의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친박(근혜)계' 의원들의 침묵이 더 노골적이라는 데 있다. '논공행상을 하지 않겠다'는 박 당선인은 인수위와 당선인 비서실 구성 과정에서 친박계 인사를 배제했다. 그러나 이들은 입을 굳게 닫은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박 당선인이 정권 인수 과정에서는 '친박 배제' 원칙을 내세웠지만, 새롭게 출범할 정부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근혜 정권 창출 1등 공신인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박 당선인이 자신들에게조차 아무런 상의 없이 '나홀로 인선'을 강행하다가 김용준 낙마 사태를 초래하고, 정부조직법 개정 여야 합의 과정에서 '존재하지 않는 부처'의 장관 후보자를 지명해 난관을 자초해도, 이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박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 '모난 돌'이 되는 상황을 피한 것이다.

예상대로 박 당선인은 청와대를 친정체제로 구축했다. 친박인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과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 진 영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를 발탁한 것.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의 정치적 우군인 친박을 배려한 모양새다. 그러나 친박 인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발탁된 3인이 '원조 친박'이기는 하지만 친박계를 아우르고 챙겨온 대표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 3인은 철저하게 박 당선인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비서형'에 가깝다는 게 친박계 인사들의 평가다.

결국 박 당선인에게 친박계 인사들은 '비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미 '식물 정당'으로 전락한 당이나 친박계 인사들의 신세가 비슷하게 됐다"고 쓴 미소를 지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성시경 인사 #새누리당 #정부조직개편 #후보자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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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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