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앞에서2012년 봄 지리산댐/케이블카반대 상경1인시위
김휘근
문제는 성인이 되어, 물질적 풍요 없이 유지되어 왔던 화목한 가족사가 실은 가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적지 않은 희생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약간의 시대적 변화도 한 몫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운동권'이라 불리던 세력들이 NGO로 세련된 형태를 갖추던 시기에서는 개인의 정신세계에 대한 '신념'의 지배력이 막강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신념'의 이름아래 기꺼이 개인을 희생하는 시대가 아닌 상황에서, 자신의 화목한 가족사를 재현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신념'을 고집하며 물질적 빈곤을 감수하고 희생하는 삶은 자연스럽게 선택지에서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NGO 활동가가 되었다. 분명 나의 정신세계가 동세대인들 보다 구식이어서 신념의 이름으로 시민운동과 결혼할 작정이었거나, 화목한 가족사를 재현할 수 있는 배우자, 즉 희생의 제물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일 게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에 와서는 둘다 틀린 것으로 보인다. 나는 결혼을 계획하고 있고, 상대는 아주 '보편적인' 동세대인이다.
결혼 준비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하여, 신념의 크기가 줄어든다. 상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자니, 흘러가는 세월 속에 인연의 끈이 엷어져 가는 것이 두렵다. 모든 것은 신념이 나에게 충분한 물질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NGO 활동가로서의 자신을 지탱하는 유일한 자존심, 꿈이 희미해져간다. 그렇다고 이바닥 - 워낙에 다른 직업활동과 차별성이 강하다 보니 - 을 떠나는 일도 쉽지 않다.
한국의 NGO는 근본적으로, 구성원들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어느 정도냐면, 재정이 어려워 약속된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 사무처의 책임자는 경우 급박한 상황에서 차입금을 마련할 수도 없으면 자신의 사비를 차입금으로 환원하기도 한다. 인적 인프라가 좁다보니 이 단체의 활동가가 다른 단체의 임원으로서 책임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각종 회의를 감당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야 한다. 상급자의 그런 업무는 젊은 신입 활동가들에게 있어 본인의 미래상이다. 지켜보고 있는 것 만으로 기가 질릴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