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에 늘어서있는 항아리들을 보니 안주인의 살림 사는 솜씨가 보이는 듯 합니다.
이승숙
그런 집의 장맛은 일부러 맛을 보지 않아도 단맛이 날 게 틀림없을 터였다. 자녀들은 충분한 관심과 사랑 속에 잘 자랐을 것이며 노인들도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장독대만 보고도 나는 그 집의 살림살이 규모며 가족 간의 사랑까지도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독대는 어머니들의 지성소(至聖所)다그렇게 늘 남의 장독대를 훔쳐보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윤 사장에게 부탁했다. 시골집을 거래할 때 혹시라도 항아리가 나오면 알려달라고 했더니 마침 맞춤한 게 나왔다며 기별이 왔다. 어떤 사람이 급히 이사를 가면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항아리들을 한꺼번에 내어 놓았다고 했다.
어릴 적 내가 컸던 우리 집에는 부엌 앞에 우물이 있었고, 그 옆에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단지며 항아리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어머니는 틈이 날 때마다 항아리들을 물걸레로 훔치셨다. 그때 어머니는 건강했고,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건실한 살림꾼이었다. 우리 집의 살림은 제법 탁탁해서 끼니거리를 걱정하지 않았고 집안은 두루 잘 풀려나가던 날들이었다.
어머니는 늘 바삐 움직이셨다. 새벽부터 한밤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땅을 넓혀나갔고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하지만 어머니는 가족을 위할 줄만 알았지 자신을 돌볼 줄은 몰랐다. 그래서 몸속에 병이 자라고 있는 줄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머니가 떠나시자 장독대는 빛을 잃었다. 우리 집의 가세도 더불어 기울어 갔다. 오랫동안 우리 식구들의 눈에 익어 마음을 끌던 묵은 살림살이들이 어느 결에 다 없어졌다. 그리고 그 많던 항아리들도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렸다.
마흔 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친정집을 돌아보니 장독대도 항아리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동네 우물물을 길어 와 부어 두던 한 섬들이 물독도, 온갖 잡곡과 양념들을 넣어 두던 크고 작은 항아리들도 간 곳이 없었다. 그 장독들과 함께 어머니도 우리 집도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