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한풀이?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았다"

여수 <오마이뉴스>시민기자...글 쓰게 된 이유 물었더니

등록 2013.03.08 13:30수정 2013.03.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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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창립 13주년을 맞아 2월 22일 기자상을 탄 황주찬 기자가 6일 저녁 여수에서 5년째 모임을 중인 기자들에게 축하주를 쐈다(좌측부터 조찬현. 임현철. 황주찬 기자) ⓒ 심명남


"오늘 모임 장소는 여천 수자원공사 뒤 녹차밭 6시 30분 예약은 <오마이뉴스>입니다."


지난 6일 지인에게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황주찬 기자였다. 이유인즉슨 상을 탔다고 한 턱 쏜다는 것. 축하. 축하와 함께 삼겹살에 소주 한잔했다. 주인공인 황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3 2월 22일 기자상을 수상했다. 상금으로 50만 원도 탔다. 그의 닉네임은 여수 환경이다. 2010년 7월 8일부터 지금까지 145꼭지를 썼다. 호흡이 이니라 행위로 살고 싶다는 여수 '5마이' 막내 황 기자. 그가 글을 쓴 계기는 이렇다.

사회부정론자로 알았던 나..."글쓰니 큰 호응 받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하고 외치고 싶은데 나 혼자만 얘기 하더라고. 나는 내가 사회부정론자인 줄 알았어 처음에는... 그런데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하고 외쳤더니 다름 사람들이 맞아 맞아 하고 많이 호응해 주더라. 그래서 보람을 느낀다."

여수·광양에서 활동중인 7명의 <오마이뉴스>시민기자가 모임을 한 지 어느덧 5년째로 접어들었다. 매년 연말이면 정기모임을 통해 한 해를 정리하는 우리. 어려운 가운데도 애경사를 챙겨주며 형님·동생으로 돈독한 우애를 쌓고 있다. 이 기자들이 사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글을 통해 우린 소통하고 있다. 오늘 회식자리에 5명의 시민기자가 모였다. 이날 빠진 사람은 전용호, 김학용 기자.

우리 모임 중 글을 가장 먼저 쓴 기자는 시민운동을 했던 임현철 기자다. 그의 닉네임은 알콩달콩 섬 이야기. 다음 파워블로거다. 2002년. 5월 20일부터 지금까지 987꼭지를 썼다. 올해는 1000꼭지가 목표다. 여수시민협 실행위원장을 거쳐 현재 (사)진남제전보존회 기획실장을 맡아 지역 문화예술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임 기자는 알콩달통 살아가는 얘기를 멋스럽게 그려내는 애처가다. 일명 '1마이'인 그에게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물었다.


"처음엔 조호진 기자를 통해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어. 참여연대나 시민운동가도 글을 많이 쓰거든. 매체가 코드가 맞잖아. 여수시민협을 하면서 정말 좋은 운동인데 그것을 알릴 길이 없는 거야. 시민운동의 홍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어. 그 방법을 찾은 게 오마이를 택한 거야."

맛집 기자로 유명한 조찬현 기자. 그의 닉네임은 맛돌이다. 그는 2005년 9월 5일부터 지금까지 1187꼭지를 썼다. 음식과 맛에 관한 한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베테랑 맛집기자다. 전남 동부권의 맛집을 죄다 알고 있다.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맛'은 다음 탑 블로그다. 최근에는 '진짜맛집' 카페를 오픈 전국의 유명 맛집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일명 '2마이'인 그에게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물었다.

"처음 라디오 사연이나 자동차 경품 주고 이런데 글 응모를 많이 했지. 응모를 계속하다 우연한 기회에 카메라가 가지고 싶은데 경품이 떴어. 응모하려다 보니 <오마이뉴스>와 연결된 거야. 아무 생각없이 회원 가입했는데 글을 쓰게 되었어. 최초 인연을 맺은 게 2004년이었어. 새뉴스게릴라 상도 받고 처음 1년 동안 센세이션을 일으켰어. 그래가지고 사회적 기사를 쓰게 됐는데, 어느 순간 내 이름 석자대면 다 아는 거야."

교장부정 승진 거론..."싸가지 없는 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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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기자상을 탄 황주찬 기자가 6일 저녁 기분 좋다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쐈다. 여수에선 7명의 시민기자들이 5년째 모임중인데 글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우측부터 오문수.황주찬.임현철.조찬현 기자의 모습) ⓒ 심명남


오문수 기자의 사연은 가슴 아프다. 그의 닉네임은 유사나다. 그는 2006년 8월 15일 이후 558꼭지를 썼다. 얼마 전 학교에서 명예 퇴직한 영어선생인 오 기자는 지금 외국에서 교편을 잡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는 한때 교장의 부정을 놓고 인사권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파면하겠다 협박했던 학교장과 이사장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일명 '3마이'인 오문수 기자의 말이다.

"교장승진 부정 사건을 거론하자 공장장협의회에서 오문수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했다. 나보다 나이 어린 놈이 이사장이라는 이유로. 지가 다 개판 쳐놓고... 교장과 이사장이 나를 우습게 봤다. 교감승진 때 그 자리에서 울고 나왔다. 스트레스 받아 병도 얻었다. 내가 교장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이 권력으로 나를 짓밟을 수는 있지만 내 영혼은 짓밟을 수 없다. 그때는 솔직히 다 죽이고 싶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가 8월 15일이다. 그날을 택한 것은 내가 당신의 종속변수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나도 글을 쓸 수 있구나...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았다. 그래서 4년 후 복수를 했다. 전부 꼬리를 내렸어. 그들이 내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결국 올해 용서를 했다. 내가 어려울 때 임현철 기자가 글을 쓰라며 나를 많이 도와 줬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닉네임은 뚝심이다. 지금까지 쓴 기사는 345꼭지. 내가 글을 쓰게 된 배경은 단순하다. 나에 대한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계속 부당하게 승진에서 누락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던 난 노동운동의 투사가 되었다. 선거에 나서 전임자가 되었다. 전임자를 마친 후 2009년 오마이스쿨 6기를 졸업 후 2월 25일 첫 기사를 썼다. 지금은 나를 괴롭히는 자는 없다. 그래서 글은 힘인것 같다.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니 그 역할과 보람도 크다. 오늘 '4마이'인 나의 질문에 황기자가 한마디 내뱉는다.

"야 너 기자같이 인터뷰 하지마..."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글 #오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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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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