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규모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휴폐업 현황 (대한병원협회)소형 병원일수록 휴폐업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중소병원협의회는 이런 현상을 '국내 의료전달체계가 실질적으로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1,2차 의료기관이 맡아야 하는 단순 질환을 3차 의료기관에서 하는 실정'이라 지적했다.
김병현
동네병원이 문을 닫는 이유는 두 가지다. 대형 병원들로의 편중현상과 동네의원들 사이의 과당 경쟁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발표한 '요양기관별 외래 진료비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외래 진료비 총액에서 상급종합병원의 비중은 2001년에서 2010년 사이 9.9%에서 17.3%로 늘어난 반면, 동네의원의 비중은 74.6%에서 56.9%로 줄었다. 또한 2011년 폐업한 의원이 1662곳이었지만, 새로운 동네의원 2030곳이 문을 열었다. 동네의원이 챙길 수 있는 전체 파이는 줄어들고 있지만, 정작 의원들의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동네의원들이 겪는 시련에 비례해서 대형병원들의 몸집은 불어나고 있다. 특히 빅5라 불리는 아성을 지켜내기 위한 병원들의 행태는 마치 의료생태계에 군림하는 황소개구리를 보는 것만 같다. 저마다 암센터, 심장병센터 등을 지으며 외형을 확장하고, 고가의 장비를 경쟁하듯 도입했다.
당연히 병상의 수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201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병상자원 관리방안'을 보면, 2009년 우리나라의 병상은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전국 병상 수는 33만 개로 적정 규모인 29만 2600병상보다 많다. 지금부터 지어지는 모든 병상은 '잉여'로 봐도 무방한 셈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보고서는 2020년 국내 병상의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55만 5천 개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그래도 여유분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을 소비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그런데 의료시장은 조금 특수한 부분이 있다.
만약 자신이나 가족에게 의사가 입원과 수술을 권한다면 쉽게 뿌리칠 수 있는가. 대부분의 전문분야에서 마찬가지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분야에서 환자의 의사 의존성은 거의 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가 환자의 의료 서비스 공급량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쉽게 풀자면, 보건의료계에 떠도는 '병원을 지으면 입원실이 차게 마련이다'는 소리가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병원들의 과잉 경쟁으로 인한 비용을 채우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의료계 군비 경쟁 (Medical Arms Race) |
1960~70년대 미국의 병원들은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호텔과 같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시설을 갖추고, 첨단 장비들을 서둘러 도입했다. 이런 경향은 병원 사이의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두드러졌다.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면모인 크고 쾌적하며 고가의 장비를 갖춘 병원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병원들은 그 동안 쏟아 부은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진료비를 올린다. 이는 다시 의료비 지출을 늘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다른 산업에서 경쟁이 심하면 가격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경쟁이론과는 차이가 있다. 40여 년 전 미국 땅에서 벌어진 '레이스'는 대한민국에서 현재진행형이다. ( <병원장사> 본문에서 요약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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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은 지금 '타락하느냐, 버림받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이 양갈래 길에 다른 길 하나를 내어주기 위해서는 결국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 책의 말미에 있는 서울대 김창엽 교수의 글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공공의 권력과 지배를 국가나 정부가 직접 의료기관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으로 좁히지 말자.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국립대병원을 비롯해 이른바 공공병원의 행태가 민간병원과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공공성은 단순히 누가 소유하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사안이다.공공의 권력과 지배가 강화되려면 서로 수렴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공공기관을 '재(再)공공화'하는 것(공공기관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새삼 다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민간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본문 261쪽)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창출하려는 불순한 동기가 작동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전 세계 역사에서 의료체계의 변화와 발전은 의료인들의 자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변화를 이끄는 것은 각성하고 행동한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공공의료, 그리고 진주의료원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하는 이유를 극명히 보여준다.
병원장사 -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김기태 지음,
씨네21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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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영업사원, 환자는 '호갱님'...병원장사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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