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의 전쟁>의 첫 장면. 담담한 회고와 독특한 그림체가 흥미롭다.
휴머니스트
소년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전쟁을 맞이한 앨런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많은 것을 배워간다. 정글과 같은 곳에서 피 터지고 살이 찢기는 고통을 직시하며 인생의 쓴 맛(?)을 미리 경험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대하며 인간에 대한 재정립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궁지에 몰렸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 이런 경험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만화에서는 이런 경험을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한다 해도 거칠지 않고 유려하게 보여준다. 그보다 소년은 아이러니하게 전쟁에서 진실된 인간성을 느낀다. 전우들과의 진한 전우애와 우정, 여인들과의 진한 사랑, 지나쳐가는 풍경 속에서 느끼는 여유로움…. 이건 차라리 대서사시이다. 책을 덮으면 단순한 에세이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전쟁'을 압도해버리는 한 '인간'의 회고개인적으로 그래픽 노블을 많이 접하진 않았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알고 있다. 만화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트 슈피겔만의 <쥐>(아름드리미디어)가 바로 그 작품이다. <쥐>도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리고 있는 바, <앨런의 전쟁>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쥐>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나게끔 한다(<쥐>가 <쉰들러 리스트>보다 훨씬 빨리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시길).
이 만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참상을, 슈피겔만이 아버지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음으로써 사실적으로 표현해내었다. 이 만화를 위에서 언급한 전쟁 영화의 종류에 굳이 대입해 보자면, 전쟁의 끔찍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에 반대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무시무시한 사실적 묘사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전쟁에 대한 반감이 인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전쟁이 아니라면 이 만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앨런의 전쟁>은 전쟁이 보이지 않고 인간이 보인다. 그리고 거기엔 소년이 보고자 하는 따뜻함이 보인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산을 어떻게든 정복하려고 하지 않고 살포시 비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남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앨런이 계속 보직을 옮겨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듯이, 앨런이 속한 군은 유럽을 횡단하다시피 한다. 미국에서도 여러 도시를 지나, 배를 타고 프랑스로, 체코로, 독일로, 다시 미국으로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전쟁에 임한 군인에게 여정은 결코 여정이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에겐 여정으로 생각되었다. 역사 속 개인과 개인의 역사가 얽히는 대서사시라는 말을 다시금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접하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쟁'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는 느낌이다. 전쟁 영화나 전쟁 다큐멘터리를 접하며, 전쟁에 압도당하는 내 자신을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곤 했던 지난 날이 후회스럽다는 건 아니다. 대신 '전쟁'을 압도해버리는 한 '인간'의 회고에 압도당하는 내 자신의 작음이 만족스럽지 않을 뿐이다. 문득 '내 인생에 있어서 나는 주인공인가?' 하는 진부한 물음을 던져 본다. 앨런은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갔는데 말이다.
앨런의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바뀐 소년병 코프의 인생 여정
에마뉘엘 기베르 지음, 차예슬.장재경.이하규 옮김,
휴머니스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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