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회사 그만 둘래?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우리 가족...딸들이 뿔났네요

등록 2013.04.02 13:45수정 2013.04.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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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첫 월요일. 팀빌딩이다. 그동안 사무실에서 고3 수험생처럼 웅크리고 앉아 일만 하던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체육관으로 나섰다.


내년이면 마흔인 아줌마, 마흔을 훌쩍 넘긴 아저씨, 그리고 채 마흔이 되지 않은 아저씨들이 농구, 탁구, 볼링공을 손에 들고 해맑게 웃었다(정말 해맑았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초반의 오버페이스 때문에, 2차 회식자리에 앉은 아줌마 아저씨들은 소주 한 잔을 나누기도 전 삼겹살이 피워내는 연기에 취해 노곤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삼십대 중반 아저씨가 그 앞의 아줌마에게 묻는다. 

"아 과장님, 근데 여직원들이 느끼는 회사생활의 만족도는 어떻습니까? 저희는 뭐 여자분들보다 더 심하게 밤늦게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일해서 힘들지만..."
"그렇지, 힘들지. 근데, 우린 야근하면서도 눈치봐야 한다. 군대식 문화인지 뭔지 혼자 남아 야근하는 여직원의 모습, 아님 좀 지나치게 남아 있는 여직원의 모습이 부담스럽나... 할 일이 있어도 맘 편히 못한다. 맞지?"

아무말 없이 가위로 두터운 삼겹살을 자르던 2년차 사원, 아줌마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어 동의표시를 한다. 아줌마, 아저씨 그저그런 만족도를 잠시 얘기하다 결론을 내린다.

"그나저나 오늘이 목요일이면 좋겠어요. 그냥, 목요일~"(소박한 셀러리맨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그래도 오늘 하루 열심히 뛰고 즐거웠다는 생각을 하며 회식을 마쳤다. 하지만! 오늘 하루일정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집에 도착해서 문에 들어서자마자 돌봐주는 아주머니가 가기도 전에 엄마에게 객관식 문제라며 큰아이가 종이를 들이민다. 


1번, 엄마가 회사를 그만둔다.
2번, 아빠가 회사를 그만둔다. (난 1번이 좋다. 엄마도 조은거에 동그라미♡♡)

 두 딸아이의 모습
두 딸아이의 모습김춘미
참나... 맨 끝에 하트뿅뿅만 없었어도 그냥 웃으며 넘겼을 것이다. 근데, 정성스레 그린 하트 두 개가 맘을 찡하게 만든다. 간만의 운동과 회식에 집에 가면 씻기도 싫고 그냥 누웠음 좋겠다는 생각, 욕심이었다. 큰놈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큰놈 올해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다. 뜬금없이 이런말을 한다.

"엄마, 나 아빠 있는 서울에 가서 학교 다니면 안돼? 나도 친구들처럼 아빠가 학교 데려다 주면 좋겠어. 응? 엄마, 그리고 왜 우린 아빠랑 같이 안 살아 나 아빠랑 살고 싶어 나두 서울 갈래. 엄마도 따라오고 싶음 따라와도 돼."

이번엔 둘째 놈도 나선다.

"엄마, 맨날 우리를 돌보미선생님한테 맡기고 맨날 늦게 다니고, 전에 대전오월드 갔을 때도 엄마는 안 가구, 지난번 장동에 갈 때도 그렇고... 엄만 왜 맨날 그래?"

회사에 민원이 요동치던 토요일, 난 회사로 그리고 두 따님과 아빠가 오월드로 갔던 것과 대학원 중간고사 때문에 주말 두어번 아빠에게 맡겼던 그 얘기를 매번 협박용으로 써먹는다.

"엄마가 누구 엄마처럼 집에서 있다가 일찍 우릴 데리러 오든가, 아님 엄마도 누구 엄마처럼 일 다하고 밤에 회사 안 갔으면 좋겠어. 아님 엄마가 과장이 아니라 비서나 뭐 그런거 하면 좋겠구..."

엄마도 할 말은 많은데... 틀린얘기 하는 것도 아니고... 조목조목 따지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시간에도 아이들 쑥쑥 크고 있구나 싶어 그냥 다 듣고만 있었다.  

월요일 팀빌딩과 회식, 그리고 집에서까지 이어진 토론으로 잠들기 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8살, 6살이 되도록 아빠와 한 번도 함께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의 민원제기 사유 정당했다.

엄마가 조용히 속으로 대답한다

"언젠가 너희가 말한대로 엄마회사 케이프터(둘째가 말하는 엄마회사이름)는 물 만드는 회사야. 그리고 그 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그 일을 엄마는 계속할거고, 그럴려면 조금씩 양보하고 조금만 더 엄마를 이해해줘야해. 대신, 엄마가 하나만은 약속할게. 1번도 2번도 동그라미치지 못하지만, 3번! 엄마, 올해 꼭 승진해서 아빠랑 같이 살게 해준다!!  3번! 이걸루 안되겠니?"

** 아직은 말을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두 따님들에게 마음 속으로 엄마가 약속합니다. 엄마 회사 계속다니면 평생 아빠랑 같이 살기 힘들 수도 있지만, 너희가 더 크기 전에 이번만은 꼭 아빠랑 살 수 있도록 엄마가 노력할게...엄마도 하트뿅뿅♡♡
덧붙이는 글 늘 이렇게 큰 눈으로 엄마를 지켜보는 큰놈과 작은놈입니다.
#맞벌이 #승진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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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중한 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며 멋지게 늙어가기를 꿈꾸는 직장인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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