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노순택 제공
이제 구럼비 바위는 뚫리고 깨져서 빨리 치워 버려야 할 돌무더기가 되겠군요. 인간의 폭력 앞에서 자연이 대응하는 방식은 비폭력이요, 침묵입니다. 아무리 무자비하게 개발해도 자연은 결코 말을 하지 않으며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폭발물과 포클레인이 파헤치는 대로 전기톱이 자르는 대로 시멘트로 싸 바르는 대로 자연은 오랜 세월 지켜 온 제 순결한 몸을 순순히 인간에게 내어 줍니다. 인간은 이 침묵을 개발에 대한 자연의 묵시적 동의로 오해하고 자연을 이용할 권리를 자신에게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이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무서운 속도로 녹고 있는 남극의 빙하나 치유할 수 없을 만큼 오염된 땅과 강과 하늘이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파괴당하면서도 구럼비 해안의 바위와 동식물 들은 조용합니다. 바위가 얼마나 아름답고 보전가치가 큰 것인지, 사람들이 찾아와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해군기지가 과연 우리나라 안보에 꼭 필요한 것인지 묻지 않습니다.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 장소가 강정 마을이어야만 했는지, 최적의 장소를 고르는 절차는 민주적이었는지, 비명과 한탄과 울음소리가 나도록 힘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았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군사기지가 강정 마을에 국한하지 않고 앞으로 청정 제주도의 얼마나 더 큰 지역을 훼손하게 될지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의 지혜를 모았다면, 더 적합한 장소에 자연을 덜 훼손하고 주민들에게 덜 상처를 주고도 해군기지를 만들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항변하지도 않습니다. 고분고분하게 파괴되어 줄 뿐입니다.
훼손된 채 본래대로 회복되지 않음으로써, 폐허와 병든 흉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구럼비 바위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거울처럼 비춰 보여 줄 것입니다. 망가진 구럼비 바위는 바로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아무리 기괴하게 망가져도 괴물이 되는 것은 구럼비 바위가 아니고 우리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구럼비 해안을 살리는 일은 자연을 살리는 것이기에 앞서 바로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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