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국민장 장례 행렬(1949. 7. 5. 한국은행 앞 서울 남대문로). 2004. 2. 27.'Kimkoo Research Team'의 재미동포 주태상 씨가 NARA 2층 문서상자에서 발굴한 사진이다.
NARA
김구에게는 운명의 날인 1949년 6월 26일 동이 텄다. 화창한 초여름 6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김구는 예삿날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아들 신이 이른 아침 옹진으로 출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간밤 늦게 잠자리에 든 것을 알고 더 주무시게 하고자 일부러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김구는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묵묵히 아들의 출근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삿날과는 달리 김신은 정문 경호 순경에게 찾아가 그날부터 출입자 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이르고는 마당에서 2층 아버지 거실을 바라봤다. 그때 김구는 거실 창을 열고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온.""네, 아버님."김신도 아버지에게 손을 흔든 뒤 그의 지프차에 올랐다. 김구는 아들이 떠나자 곧 책상에 앉아 아침 기도를 올렸다. 여느 때처럼 나라의 태평을 먼저 기도한 뒤, 이날은 특별히 아들의 무운장구를 빌었다. 기도가 끝나자 예삿날처럼 거실 책상에 앉아 막 배달된 아침신문을 읽은 뒤 뜰로 나와 꽃밭에 물을 줬다.
그날이 일요일이라 김구는 아침진지를 드신 뒤 예사 주일날처럼 남대문교회에 가고자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선우진 비서는 조금 전에 며느리가 승용차를 타고 외출했다고 전했다. 그제야 김구는 간밤에 아들이 당분간 교회 가는 일 등 바깥나들이를 삼가란 말이 떠올랐다.
김구는 이제 자식의 말도 들어야겠다고 교회 가는 일을 단념하고, 2층 거실 책상에 앉아 먹을 간 뒤 줄곧 붓글씨를 썼다. 문득 창암학원 운영이 궁금하여 선우진 비서를 불렀다. 아래층의 선우진이 2층 집무실로 재빨리 올라왔다.
"부르셨습니까?""자네 이국태군에게 일러 창암학원 김 선생 별일이 없다면 좀 모셔 오라고 이르게.""네, 선생님."그즈음 김구는 심기가 다소 불편했다. 당신이 세운 마포구 염리동의 창암학원과 성동구 금호동의 백범학교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 김구는 어머니 곽낙원 여사 유해봉안 때 들어온 조의금과 아들 김신의 결혼축의금으로 두 학교를 세웠다. 이들 학교는 주로 가난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개원 개교 이후 제때에 재정지원을 하지 못해 가슴이 몹시 아렸다.
김구는 창암학원 김 선생을 기다리면서 계속 붓글씨를 썼다. 그런데 이날따라 글씨가 잘 써지지 않았다. 아마도 전날 불편했던 심기가 그때까지 마음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창암학원 김 선생김구가 2층 집무실 책상에서 글씨를 쓰고 있는데 이국태 비서가 창암학원 김 선생을 모시고 왔다. 그때가 오전 11시쯤이었다. 김구는 붓을 벼루 위에 놓은 뒤 김 선생을 반겨 맞았다. 창암학원 김 선생은 김구 앞에서 큰절을 드렸다.
"백범 선생님! 부디 만수무강하옵소서.""어서 오세요. 김 선생님!"김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답례를 했다.
"백범 선생님, 지난번에는 풍금을 사서 친히 삯군에게 지어 저희 학원까지 왕림해 주시고, 또 학생들에게 귀한 말씀까지 들려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백골난망입니다.""아니올시다. 내가 앞뒤 깊은 헤아림도 없이 창암학원을 불쑥 세워 놓고 운영비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 여러 선생님께 볼 낯이 없습니다.""이즈음에는 경교장 살림도 어렵다고 듣고 있습니다.""설마 내가 굶기야 하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창암학원이 문 닫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내 곧 융통되는 대로 다소나마 보내드리지요.""네, 고맙습니다. 저희 선생님들은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참으로 고맙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봅시다. 옛말에 '유지필성(有志必成)'이라 하여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교육입니다. 돌아가시면 어려운 가운데도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시는 여러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 주십시오.""네, 선생님. 말씀 꼭 전하겠습니다. 선생님! 창암학원이 결코 문 닫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선생님의 높고 자애로운 뜻을 어찌 하늘이 돕지 않겠습니까?"김구는 그 말에 더욱 가슴이 멨다. 그즈음(방북 이후) 경교장을 후원하는 이도 훌쩍 줄어들었다. 김구는 새삼 염량세태를 실감했다.
불청객그 시간 아래층 대기실(비서실)에는 일요일임에도 선우진·이국태·이풍식 등 세 비서가 일을 보고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무렵 경교장 정문에 육군 장교 정복차림의 한 군인이 성큼 다가섰다. 그는 육군 포병소위 안두희로 허리에는 미제 45구경 권총띠를 차고 있었다.
"내레 안두희야요. 두석(주석) 선생님을 뵈오레(뵙고자) 왔습네다.""들어오십시오."그날 아침 경호순경은 김신에게 거동 수상자와 낯선 사람은 출입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안두희는 그 전에도 김학규 한독당 조직부장과 같이 여러 번 출입해 얼굴도 이름도 익은 데다가 육군 정복차림인지라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통과시켰다. 안두희는 경교장 1층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비서들에게 넉살 좋게 인사를 늘어놨다.
"안녕들 하십네까?""누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