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상담 받는 시민들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지원 및 서민의 과다채무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이 공식 출범한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행복기금 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유성호
3월 말,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 출범했다. 대선이 끝난 뒤, 이 공약과 관련해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 우려가 제기되며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권 관계자 입을 통해 나온 채무자 도덕적 해이는 과장된 내용이었다.
지난해부터 상승한 대출금 연체율이 마치 채무자들의 '버티기' 때문인 것처럼 호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체율 상승은 가계 부채가 악성화 되고 있다는 신호일 뿐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본격 거론되기 이전부터 상승 추세가 강화되고 있었다.
또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단기연체자의 채무를 신용회복위원회와 채권금융회사 간 협의를 거쳐 조정해주는 제도) 신청 증가도 채무 버티기의 증거로 활용됐다. 하지만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은 원금과 이자 모두를 갚아야 하는 프로그램으로 소폭의 이자와 상환 기간만 조정되는 프로그램이다. 채무자들이 연체를 시작하고 채권 추심을 당하기 전에 자신의 상환 능력에 부담을 느낄 때 신청한다. 즉 채무 상환 회피용이 아니라 자신의 재무 상황에 맞춰 빚 전체를 갚겠다는 의지가 전제된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국민행복기금은 프리워크아웃 신청자가 이용할 수 없다. 프리워크아웃 신청 급증이 국민행복기금으로 인한 채무자 도덕적 해이라는 분석은 무지하거나 작위적인 것이다. 이렇게 금융권과 일부 언론은 연체자들의 도덕성을 공격하면서 국민행복기금의 본질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국민행복기금,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당신만 손해보고 있다"고 감정을 자극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여론 호도 방법이 있을까? 일부 언론과 금융권은 "성실한 채무자만 손해본다"는 말로 6개월 연체자에게 엄청난 빚 탕감 혜택이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게다가 채무자들끼리 손가락질하도록 했다.
그 사이 정부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는' 핵심 공약을 대폭 축소할 핑계를 만들었다. 세금 투입 없이 채무자 322만 명에게 채무를 탕감해주겠다던 새 정부의 민생정책 1호는 그렇게 '면피용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은행에 수익배분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국민행복기금은 금융권의 연체 채권을 싸게 사들인 후 신청자에 한해 채무 감면과 조정을 해주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연체 채권은 이미 은행들이 부실채권 상각 방식으로 자산 유동화 회사에 싸게 팔아왔다. 가령 100만 원짜리 채권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8만 원 가량에 자산 유동화 회사에 팔았다. 자산 유동화 회사는 채권 추심을 통해 원금만 돌려받아도 92만 원 이익을 얻는다.
국민행복기금 또한 부실채권의 시장 가격, 즉 원금의 8~10% 가격으로 연체 채권을 매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부채를 최대 50~70% 감면해주고 남은 빚을 10년 동안 나눠 돌려받는다. 결국 국민행복기금도 잘만 운용하면 돈이 남는 장사다. 은행도 부실채권을 자산 유동화 시장에 팔든 행복기금에 팔든, 기존 관행대로 처리하니 손해볼 일 없다.
다만 이번 국민행복기금은 채권을 매입할 때, 매입 대금의 일부만 현금으로 결제하고 나머지를 후순위 채권으로 결제해 최종 지급되는 금액은 회수 실적에 연동한다고 한다. 회수 실적에 연동시킨다는 건, 이익이 발생하면 그만큼 금융권에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A씨의 100만 원짜리 연체 채권을 국민행복기금이 사들였다고 가정해 보자. A씨는 국민행복기금에 채무 조정을 신청해 50%의 부채 탕감을 받고 남은 50만 원을 상환하기로 했다. A씨는 성실히 50만 원을 갚았다. 국민행복기금은 그 연체 채권을 8만 원에 매입했다. 운영비용을 빼고 약 35만 원 수익이 발생했다면, 이걸 채권을 매각한 금융사와 나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