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는 불이법문

[서평] 루량즈 교수가 강의한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등록 2013.04.16 11:19수정 2013.04.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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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자연과목 시간,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던 햇살을 프리즘을 통해서 보니 일곱 및깔 무지개가 생겨 너무도 신기했다.
초등학교 자연과목 시간,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던 햇살을 프리즘을 통해서 보니 일곱 및깔 무지개가 생겨 너무도 신기했다. 임윤수

초등학생 때 자연과목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생님께서 내주신 삼각프리즘으로 햇빛을 봤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던 햇빛, 눈만 부시게 하던 햇빛에서 일곱 빛깔 무지갯빛이 보였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다음 친구에게 넘겨주는 걸 잊고 계속 들여다보다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는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고, 듣고 있어도 들리지 않는 것들이 꽤나 많다.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라디오파가 들리지 않고, 내 몸 쓸개에 들어있는 담석이 보이지 않는다. 강아지들끼리는 잘도 통하는 것 같은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자주 들려오던 때가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 같은데 오묘한 뜻이 있는 말이라고 했다. 그때도 그랬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들려왔지만 그 오묘하다는 뜻을 전혀 알지를 못했으니 이 역시 듣고는 있어도 듣지 못하는 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햇빛은 프리즘을 통해서 보면 보이고, 라디오파는 라디오를 통해서 들으면 들린다. 쓸개나 콩팥 속에 들어있는 결석 또한 초음파탐상기만 있으면 유무여부는 물론 그 크기까지 잴 수가 있다.

그렇다면 듣고 있어도 듣지 못하던 그 오묘한 뜻,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에 들어 있는 뜻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오묘한 뜻을 보여주거나 들려줄 수 있는 프리즘이나 라디오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심오한 뜻이 듬뿍한 동양인문학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프리즘이자 라디오는 다름 아닌 미학(美學)이다. 

프리즘 같고 라디오 같은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표지 사진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표지 사진(주)알마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는 저자인 루량즈 교수가 베이징대학교에서 강의한 중국미학 수업 내용을 15강에 걸쳐 담고 있다.  


미학이란 자연, 인생이나 예술 작품이 가진 아름다움의 본질이나 형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사람의 감성적 경험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양철학이 주지적이고 사변적임에 비해 중국철학은 생명적이고 체험적이라고 한다.

앞에 다섯 강의는 도교, 선종, 유교 초사 및 기화철학에 관한 것으로 중국미학의 기본 내용을 '생명초월'에 한정시켜 논의하고 있다. 그 다음 다섯 강의는 지식의 바깥, 공간의 바깥, 사건의 바깥, 색상 세계의 바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생명 초월적 미학의 형태론에 대한 내용이다. 마지막 다섯 강의는 생명초월 미학의 범주에 관한 내용으로 경계, 화해, 묘오, 형신 및 양기를 범주로 하고 있다.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가 말했다. "노승이 30년 전 참선을 하지 않을 때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는데, 후에 선지식을 친견하며 참선에 들어섰더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소. 그런데 이제 쉴 곳을 얻으니 이전처럼 산은 그저 산이요 물은 그저 물이라오." 남종선의 정수를 드러내는 말이다.

이 세 경계 중 제1경계와 제3경계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것은 분별지와 반야지의 차이다. 제1경계에서 사물과 나는 분리된다. 나는 세계의 반대쪽에서 세계를 본다. 사물과 나 사이엔 이성이라는 장애가 가로놓여 있다. 제3경계 중 나는 세계 속으로 되돌아온다. 내가 곧 산이요 물이다.

제1경계 중에서 사물과 나는 충돌했으며, 산과 물은 나의 관찰 대상자이었다. 제3 경계는 이런 충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향수한다. 산과 물은 개념적 산과 물이 아니고, 이성적 관찰 대상이 아니며, 감정을 쏟아내는 곳도 아니다. 바로 산과 물 그 자체다.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경계로서, 바로 불이법문이다. -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77쪽

제2강 불이법문, '능소를 뒤섞다- 주객관계의 초월-' 중 일부이다. 듣고 있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었던 바로 그 말, 심오한 뜻이 함축돼 있다고 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어둠 속, 지축을 뒤흔들며 내려치는 번갯불사이로 번쩍하고 보이던 어떤 금속물체의 광체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에 담긴 의미, 불이(不二)가 확연하다.

파장(波長), 굴절, 가시광선이 갖는 물리적 의미를 전혀 모르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프리즘이라는 유리 덩어리를 통해 햇빛이 그 파장에 따라 일곱 빛깔 무지갯빛으로 나뉜다는 것을 단박에 보여주셨다. 

 금강산 건봉사 불이문
금강산 건봉사 불이문임윤수

생명과 형상을 초월하는 게 중국미학

중국문학에 진득하게 녹아들어 있는 도교, 선종, 유교 초사 및 기화철학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지 못할지라도 저자가 강의하고 있는 미학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중국 철학은 심오하지만 어렵지 않다.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중국문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걸림이 없다.   

남전이 말했다. "산림은 두렵고 아름답지만 아무리 둘레가 큰 나무라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온갖 구멍에서 나는 성난 소리, 격하게 내뱉고 들이쉬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나 바람 에는 소리, 바람이 잦아드는 소리는 그릴 수 없다.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려니, 오직 책상에 고요히 기대어 하늘의 피리 소리를 들을 뿐이다." 산수나 숲 등은 형태가 있는 것으로 직접 묘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광풍과 노호는 형태가 없는 것으로 그릴 수 없다. 화가는 이 그릴 수 없는 무형의 대상을 그려내려고 한다. 중국예술에서 볼 때, 무형의 세계는 유형의 세계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 -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574쪽

중국예술에는 두 세계가 있다. 하나는 '볼 수 있는' 세계로서 예술작품 중의 화면이나 선, 언어 등으로 표현된다.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세계이며, 작품의 예술 형상 속에 숨어 있는 세계다. 광의의 각도에서 볼 때 전자는 '상'이요, 후자는 '상 바깥의 상'이다. -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584쪽

혹자는 일부러 어렵게 설명한다. 상대방의 지식정도를 계량하려는 듯 일부러 어려운 용어를 쓰고, 전공자가 아니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전공용어를 촘촘하게 들먹이면서 설명한다. 설명을 어렵게 하는 사람 중에는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전을 읽을 기회가 별로 없고, 깊게 생각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철학서를 접할 여건이 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동양인문학은 지루하고 읽기 힘들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학문으로만 머물 수도 있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내용, 읽고 있어도 읽히지 않는 뜻이 장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용문을 봐서 알겠지만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는 보이지 않던 햇볕을 한눈에 보여주던 프리즘처럼 동양인문학을 단박에 꿰뚫어 설명하고 있다. 읽지 않음으로 모를 수는 있으나 읽어서 모를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동양인문학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를 읽고 난 느낌은 대충 차려진 밥상, 패스트푸드도 종종 올라오는 밥상만 매일 대하다 격식을 갖춰 잘 차려진 밥상을 받아 격식을 차려가며 식사를 한 그런 포만감이다.
덧붙이는 글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주량즈 씀, 신원봉 옮김, 알마 펴냄, 2013년 3월, 648쪽, 3만2000원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주량즈 지음, 신원봉 옮김,
알마, 2013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신원봉 #(주)알마 #동양철학 #청원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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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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