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이라는 거짓말> 겉그림
새로운현재
'그'를 회사의 아주 중요한 부서에 배치한다. 지금 그 팀은 아주 엉망진창이다. 애초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원석(原石)'이라고 판단되는 신입 사원들을 뽑아 대거 투입한 부서다. 하지만 이 팀은 여지껏 제대로 된 성과를 못 내놓고 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팀장이 이들 신입 사원과의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퇴사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짧은 고민 끝에 마침내 그를 이 부서의 제1 팀장에 임명한다. 상상할 수 없는 기대감을 안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반 년 만에 사표를 쓴다. 허탈하다. 이유가 뭘까. '나'는 일본에서 "직장인 1만 명의 행동 평가를 실시한 개념화능력개발연구소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이면서, 조직을 배치하고 지원하는 데에 탁월한 직관을 가진 컨설턴트이자 평가자"(앞쪽 책 날개의 저자 소개에서)인 오쿠야마 노리아키 선생을 찾아간다.
"유명 대학에 합격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은 학습 정보를 머리에 넣고 그것을 신속, 정확하게 이끌어내는 두뇌다. 결국 유명 대학이라는 타이틀은 머리에 넣은 정보의 양과 그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업무에서는 업무의 양과 기억력이 아니라 정보의 질과 사고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꺼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머리에 '넣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스펙이라는 거짓말> (29쪽) 요컨대 출신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인 당연한 '진리' 아닌가. 정녕 우리는 출신 대학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하니까 말이다. 너무나 당연하여 의심할 필요도 없는 이 말이, 그런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낭만적인 망상으로 치부된다. "그래도 대학은 서울에서 나와야지", "아무래도 2년제보다는 4년제가 낫지 않겠어?" 식의 말을 낯빛 하나 고치지 않고 말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이제 사람 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일본 내 인재 평가의 권위자들인 두 저자가 <스펙이라는 거짓말>에서 거듭 건드리는 문제 의식도 여기에 있다. 대개 구인자들은 화려한 스펙과 뛰어난 학벌을 가진 이를 선호한다.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매력적인 미소를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프레젠테이션까지 잘 한다면 완벽하다. 회의 진행이나 기획안 발표 등을 힘들어하고, 답답할 정도로 중언부언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모습이 뛰어난 요소로 보일 만하다.
그런데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이 책의 저자들의 주장이다. 자, 그렇다면 고스펙과 뛰어난 학벌이 다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차이를 가져오는가. 똑같은 연수를 받고 크게 다르지 않은 기획안을 갖고 일을 하는데도, 왜 갑은 지리멸렬한 결과물을 내놓고 을은 회사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계약을 따내는가. '인재'라고 생각해서 뽑은 이들이 왜 실제 현장에서는 별다른 힘이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저자들은 우리에게 사람을 보는 눈을 바꿀 것을 주문한다. 인재상에 대한 발상 자체를 바꾸라는 것이다. 가령 평소 인상이 평범하고, 황소 고집이어서 쉽게 물러서지 않으며, 회의를 할 때에는 주변 분위기를 깨는 싸늘한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도 꼬치꼬치 따져가며 끝장을 내고야 마는 직장인도 있다. 저자가 높이 보는 유능한 인재들의 모습의 일부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볼 때의 상식적인 시선이나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이유가 있다.
흔히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밝은 표정, 긍정적인 자세, 빠른 업무 처리 속도,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생활 태도, 뛰어난 화술과 사교성, 세련된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은 누구나 쉽게 보고 들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진정한 인재에게 숨어 있는 진짜 '원석(능력)'의 본질은 아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그 능력을 "사고하는 힘, 조직을 위해 움직이는 힘, 의욕을 높이는 힘, 많은 정보를 모으는 힘"(43쪽) 등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 네 가지는 깊이 생각하고, 조직에 헌신하며, 스스로의 열정에 빠져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재진술 할 수 있다. 이들 능력은 이 책 전체에서 핵심적인 열쇳말로 쓰이는데, '키 포텐셜(Key Potential; 핵심적인 잠재력) 다이아몬드'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불리기도 한다.
'속도'와 '기술'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