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의 한 장면. 중국 광동성 동완시의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최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동아시아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의 구도로 관찰할 경우,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약 180년 만에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북한의 행보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형성된 해양세력의 동아시아 패권에 상처를 주고 있다는 의미다.
'아편전쟁 이후의 국제질서가 여태 안 끝났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 한국인들은 일제가 패망한 1945년을 기준으로 역사를 구획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선입견에 구애되지 않고 역사를 좀 더 넓게 조망한다면, 1840년 이후의 질서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동아시아 질서가 보통 200년 혹은 300년마다 교체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1840년 이후의 질서가 여태 계속되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기보다는 "1840년 이후의 질서가 벌써 끝났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서양 국가가 해양(동아시아 도서 지역)을 거점으로 여전히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1840년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는 아직 현재진형형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이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아편전쟁 이후의 동아시아 역사를 개관해보면, 이런 시각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서양열강의 등장으로 급변한 동아시아 질서동아시아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결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해양세력인 일본이 1592년 임진왜란(임란)을 통해 대륙세력인 조선·명나라를 강타하면서부터였다. 이 때문에 명나라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으니, 해양세력 일본의 급부상이 당시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임란 이전에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은 있었다. 하지만, 임란 이전에는 양자의 대결구도가 명확히 정착되지 않았다. 서기 9세기까지는 '신장위구르·티베트·몽골초원 대 중국의 대결'이 최대 쟁점이었고, 서기 10세기부터 임란 이전까지는 '몽골초원·만주 대 중국의 대결'이 최대 쟁점이었다.
그런데 임란을 계기로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의 구도가 형성됐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자 조선·중국과 일본은 7년 전쟁의 충격을 수습하느라 상호 견제에 치중하면서 가급적 전면 충돌을 기피했다. 그래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어느 쪽도 절대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쪽이 세력균형을 이루게 됐다. 중국이 일본보다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륙세력이 해양세력을 압도했다고 하기엔 좀 뭣한 구조였다. 그래서 세력균형에 가까운 구도였다.
1840년 아편전쟁과 함께,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질서가 찾아왔다. 서양열강이 절대 우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지역 질서에 뛰어들면서부터 동아시아 질서가 급변한 것이다.
아편전쟁 이전에는 동아시아 국가들끼리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형성했다.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에는 외래 세력이 양대 세력에 각각 편입됐다. 조선·청나라 등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대륙세력에 러시아가 편입됐고, 일본·오키나와 등으로 형성된 해양세력에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이탈리아 등이 편입된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는 1860년 북경조약(베이징조약)을 통해 만주 동부인 연해주를 차지하면서 동아시아의 일원이 됐고, 영국·프랑스 등의 경우는 1840년 이후 동아시아 내에서 무역기지 및 군사기지를 확보하면서 일원이 됐다. 참고로, 아편전쟁 훨씬 전부터 서양 국가인 네덜란드·포르투갈이 동아시아에 무역기지를 두기는 했지만, 아편전쟁 이전에는 이들이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우위를 확보한 해양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