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행보, 동아시아엔 메가톤급 충격

[사극이 못다 한 역사 이야기 13] 180년 만에 위기 맞은 동아시아 해양세력

등록 2013.04.25 11:23수정 2013.04.2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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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편전쟁의 한 장면. 중국 광동성 동완시의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아편전쟁의 한 장면. 중국 광동성 동완시의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최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동아시아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의 구도로 관찰할 경우,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약 180년 만에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북한의 행보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형성된 해양세력의 동아시아 패권에 상처를 주고 있다는 의미다.

'아편전쟁 이후의 국제질서가 여태 안 끝났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 한국인들은 일제가 패망한 1945년을 기준으로 역사를 구획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선입견에 구애되지 않고 역사를 좀 더 넓게 조망한다면, 1840년 이후의 질서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동아시아 질서가 보통 200년 혹은 300년마다 교체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1840년 이후의 질서가 여태 계속되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기보다는 "1840년 이후의 질서가 벌써 끝났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서양 국가가 해양(동아시아 도서 지역)을 거점으로 여전히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1840년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는 아직 현재진형형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이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아편전쟁 이후의 동아시아 역사를 개관해보면, 이런 시각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서양열강의 등장으로 급변한 동아시아 질서

동아시아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결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해양세력인 일본이 1592년 임진왜란(임란)을 통해 대륙세력인 조선·명나라를 강타하면서부터였다. 이 때문에 명나라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으니, 해양세력 일본의 급부상이 당시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임란 이전에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은 있었다. 하지만, 임란 이전에는 양자의 대결구도가 명확히 정착되지 않았다. 서기 9세기까지는 '신장위구르·티베트·몽골초원 대 중국의 대결'이 최대 쟁점이었고, 서기 10세기부터 임란 이전까지는 '몽골초원·만주 대 중국의 대결'이 최대 쟁점이었다.


그런데 임란을 계기로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의 구도가 형성됐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자 조선·중국과 일본은 7년 전쟁의 충격을 수습하느라 상호 견제에 치중하면서 가급적 전면 충돌을 기피했다. 그래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어느 쪽도 절대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쪽이 세력균형을 이루게 됐다. 중국이 일본보다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륙세력이 해양세력을 압도했다고 하기엔 좀 뭣한 구조였다. 그래서 세력균형에 가까운 구도였다.

1840년 아편전쟁과 함께,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질서가 찾아왔다. 서양열강이 절대 우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지역 질서에 뛰어들면서부터 동아시아 질서가 급변한 것이다.


아편전쟁 이전에는 동아시아 국가들끼리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형성했다.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에는 외래 세력이 양대 세력에 각각 편입됐다. 조선·청나라 등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대륙세력에 러시아가 편입됐고, 일본·오키나와 등으로 형성된 해양세력에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이탈리아 등이 편입된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는 1860년 북경조약(베이징조약)을 통해 만주 동부인 연해주를 차지하면서 동아시아의 일원이 됐고, 영국·프랑스 등의 경우는 1840년 이후 동아시아 내에서 무역기지 및 군사기지를 확보하면서 일원이 됐다. 참고로, 아편전쟁 훨씬 전부터 서양 국가인 네덜란드·포르투갈이 동아시아에 무역기지를 두기는 했지만, 아편전쟁 이전에는 이들이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우위를 확보한 해양세력

 아편전쟁 이후 서양 출신 해양세력이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중국(가운데)을 착취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아편전쟁 이후 서양 출신 해양세력이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중국(가운데)을 착취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서양세력의 편입과 함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역학관계도 크게 바뀌었다. 1840년 이전에는 양대 세력이 세력균형을 이룬 데 반해, 1840년 이후에는 해양세력이 우위를 확보한 것이다. 그 이유 중에서 특히 중요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양세력에 편입된 서양열강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했다. 청나라는 16세기 중반부터 수백 년간 세계 무역흑자의 40% 이상을 흡수했지만, 과학·군사 기술의 혁신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군사력이 뒤처진 청나라는 아편전쟁 때 영국·프랑스 군함의 함포 사격에 놀라 백기를 들고 말았다.

또 전성기의 몽골제국에도 당당히 맞섰던 일본은 미국 군함의 함포 사격에 당황해서 서둘러 백기를 꺼내들었다. 이것은 당시 서양의 군사력이 동양인들에게는 핵무기 수준의 공포로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대륙세력에 편입된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극동 영토인 연해주가 러시아 수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탓에, 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서양 출신 해양세력(영국·프랑스 등)이 동아시아에서 훨씬 더 큰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 대륙세력의 분열이 심했다. 해양세력은 영국을 중심으로 비교적 일치단결하여 러시아를 견제한 데 비해, 대륙세력은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였다. 영국 등의 이간책에 의해 청나라와 러시아가 상호 견제하고, 일본의 이간책 등에 의해 조선과 청나라가 소원해진 것이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사상 최초로 해양세력이 지역 패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동아시아 출신 해양세력(일본·오키나와 등)이 아니라 서양 출신 해양세력이었다.

서양 해약세력과 공조속에 지역 패권 장악한 일본

그런데 이 시기에 서양 출신 해양세력의 기운에 편승해서 가장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동아시아 국가는 일본이었다. '중국을 빙 둘러싼 티베트-미얀마-베트남-대만-오키나와-조선을 압박해서 중국을 간접 공략한다'는 1860년대 이후 서양열강의 전략에 편승한 일본은 서양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들 지역을 압박했다.

일본은 1870년대 이후로 오키나와·대만을 차지한 데 이어 조선을 자기 영향권 하에 두는 한편, 청나라는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격파했다. 19세기 초반부터 영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을 형성한 러시아마저 격파함에 따라, 일본은 일약 세계 정상급의 국가로 뛰어올랐다. 그래서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 이후에는 동아시아 출신 해양세력인 일본이 서양 출신 해양세력과의 공조 속에서 지역 패권을 장악하게 됐다.

 러일전쟁 위령비 옆에서 펄럭이는 욱일승천기(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국기)와 러시아 국기. 러시아 국기가 찢어져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일전쟁으로 뒤바뀐 양국의 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서 화면 속에 그림자가 비친다. 대마도에서 찍은 사진.
러일전쟁 위령비 옆에서 펄럭이는 욱일승천기(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국기)와 러시아 국기. 러시아 국기가 찢어져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일전쟁으로 뒤바뀐 양국의 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서 화면 속에 그림자가 비친다. 대마도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서양과의 공조 속에 급성장을 구가하던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이 관계를 스스로 손상시켰다.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서양과의 협조관계를 파기한 뒤,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세계질서를 추구했다.

일본이 서양과의 제휴를 끊고 만주국을 세운 것은, 1870년대 이래 일본의 발전을 가능케 했던 기초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급성장한 것은, 바다가 중심인 시대에 일본이 해양세력의 역할을 했기 때문인 동시에, 선진적 군사력을 보유한 서양열강과 제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을 적으로 돌리는 한편, 만주국 건국을 계기로 대륙세력으로의 전환을 꾀했으니, 일본의 급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주사변 14년 뒤인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한 데는 이런 요인도 작용했다.

1945년에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서양 출신 해양세력이 일본을 제치고 다시 지역 패권을 잡았다.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본토를 둔 나라이지만, 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 같은 도서 지역을 거점으로 동아시아 정책을 수행하므로 동아시아에서만큼은 해양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 장악은, 해양세력이 여전히 패권을 잡았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다를 게 없었지만, 일본을 제치고 서양 국가가 다시 패권을 잡았다는 점에서는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1945년 이후의 질서재편 과정에서 한반도에서도 중대 변화가 나타났다. 한반도 남부의 전체가 사상 최초로 해양세력에 편입된 것이다. 백제나 가야도 해양세력의 역할을 했지만, 한반도 남부 전체가 해양세력에 편입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세기에 동아시아 대륙세력이 해양세력에 밀린 것은 대륙세력이 내부적으로 분열됐기 때문이다. 대륙세력인 조선·청나라는 해양세력을 견제하기보다는, 서양 출신 대륙세력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더 치중했다. 조선은 일시적 혹은 간헐적으로, 청나라는 계속적으로 러시아를 견제했다. 이것은 동아시아 대륙세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19세기 때와 달리, 1945년 이후에는 대륙세력의 구성원들이 해양세력에 그다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륙세력이 여전히 분열적이라는 점만큼은 동일하다. 해양세력인 한국·일본·대만 등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서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대륙세력인 북한·중국·러시아는 각각의 핵을 보유하고 있는 데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때 북·중·러가 협력체제를 유지한 적이 있지만, 이런 관계는 적어도 1960년대 초반에는 와해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대륙세력은 저마다 핵을 갖고 제각각의 길을 걷는 데 반해 해양세력은 미국의 단일한 핵우산 하에 있기 때문에, 1945년 이후에도 해양세력이 여전히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대륙세력, 지역패권 되찾나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뒤의 미군. 사진은 한국전쟁 때 부산에 상륙한 미군의 모습.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뒤의 미군. 사진은 한국전쟁 때 부산에 상륙한 미군의 모습.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김종성

그런데 최근, 북한의 도전적 행보가 이런 구도에 상처를 주고 있다. 이 점은 6자회담이 사실상 물 건너간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6자회담에 대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지만, 북한이 억지로 끌려나오거나 미국이 항복하지 않는 한은 이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극히 미미하다.

북한은 2009년 3월 24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6자회담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며 회담의 파탄을 공식 선언했다. 그래서 특단의 사정변경이 없는 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북한이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6자회담의 파탄을 밝혔는데도, 한·미·일 3국이 아직도 미련을 두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때로는 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것이 적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이미 6자회담의 파탄을 보여주었다. 거듭되는 핵실험으로 그런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미국이 인정하든 않든 간에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게 되었다. 미국이 인정하는 공식적 핵보유국이든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든, 북한이 핵을 보유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이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는 한국·일본·대만 등에 미묘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자체적 핵무장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친미적인 한국 내 보수파 사이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자체 핵무장은 결과적으로 반미적인 일인데도, 친미파 내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국·일본·대만 등이 자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우산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일한 핵우산을 전제로 형성된 미국의 지역 패권과 해양세력의 지역 패권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동아시아 해양세력은 대륙세력에 밀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각국의 자체 핵무장은 미국 핵우산의 철거로 연결될 것이고,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퇴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세력에서 미국이란 나라가 빠지면, 상대적으로 볼 때 대륙세력이 우세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아편전쟁 이래 위축된 대륙세력이 지역 패권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북한의 행보는 단순히 남북관계나 북미관계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1840년 이래 형성된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주는 메가톤급 충격이 될 것이다. 북한은 단순히 미국과의 수교를 목표로 할 뿐만 아니라, 차기 국제질서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비한다는 자세로 북한의 행보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북미관계 #동아시아 #대륙세력 #해양세력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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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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