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공교롭게도 3.1절날 항일의병의 역사적 고장 충남 홍성 홍동마을에 일본인 소네하라 대표를 모시고, 마을의 큰어른인 홍순명 선생을 뵈었다. (오른쪽 홍순명 선생)
오승주
- 대치동에서 논술강사 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책을 썼습니다. 제 꿈이 어린이도서관 만드는 것인데 제 나이(36)로 따지면 앞으로 50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풀무학교에서 50년 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젊다는 것은 아주 큰 재산인데, 몇 십 년 동안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동이라고 한 빛깔이 아니라 여러 빛깔이 있다. 대치동 부모들도 어린애들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은 있거든. 이왕이면 대치동처럼 경쟁이 심각한 한복판에서 일을 추진해도 좋을 것 같아. 이를테면 대포에 물 묻히는 셈이다."
- 선생님이 생각하는 도서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결론적으로 말하면 책만 하는 것보다는 꽃으로 상징되는 자연, 빵으로 상징되는 먹을거리, 내 아이만 아니라 모든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나서 책. 이런 게 어우러진 도서관을 만들면 이것도 하나의 사회가 되기 때문에 어린애들이 사회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기본 그림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운데 자연과 먹을거리, 동물권을 생각하는 종합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경쟁을 부추기지만 도서관에서는 그러지 말자. 학교는 벌써 하나의 제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너무 딱딱하면 벌써 도서관이 아닌 거지. 그리고 참여형 도서관이어야 한다. 내가 아는 성공한 도서관들을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들이 관심을 갖고 에너지를 끌어내면 도서관은 물론 동네가 아주 밝아진다."
- 200여 가족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적에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사람도 없었고, 감정표현할 길도 없고, 마음이 억눌리는 일은 많아서, 그렇게 자라난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른의 틀에 맞추지 말고 어린이의 세계에 풍덩 빠진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이들의 세계를 잘 자라나도록 도와주면 아이들이 10년 뒤에 좋은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때 균형이 참 중요한데 뭔가 억압을 받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고, 너무 공주나 왕자를 만들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린이가 너무 억압을 당하면 왜곡이 되어 버리고, 그렇다고 오냐 오냐 키우면 안하무인이 되어 버린다.
사랑도 받고 사랑도 줄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 나는 이것을 '중산층적 감각'이라고 한다. 중산층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어린애들 사이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동물들과도 친하고, 외국에도 우리와 같은 아이들이 있고, 달나라에는 국경이 없고, 심지어 똥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네, 유년 시절의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우리 동네에서 오리 농법을 하는데, 오리가 나면 각인을 시킨다. 오리가 처음 깨어났을 때 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거든. 처음 눈뜬 세상이 전부니까. 대학교까지 나와도 제일 그립게 떠오르는 건 어릴 적 시절인 까닭은, 그 때가 세상에 처음 눈을 뜰 때거든."
- 그런데 부모님과 아이들 세대차이가 심해서 걱정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종이밥>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아이는 공감을 못하고 슬프다고 팽개쳤는데, 엄마가 어린 시절 추억이 갑자기 떠올라서 아이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동문학이 충격적인 게, 쉬운 줄 알고 접근했다가 한 방 제대로 맞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똥>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무명저고리와 엄마> 같은 작품 보면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이랄까요?"왜냐하면 가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 사이에서 연결된 세계를 작가들이 살아가면서 발견해서 그렇다. 그런 글이라야 아이들 마음도 움직인다. 권정생 씨도 자기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똥은 다 싫어하는 것인데도 도시 애들은 똥을 좋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똥을 애교스럽게 부른다. 얼마나 훌륭한 거요."
"지역문화가 국가·기업이 결탁한 문화를 이겨야 해"- 제가 제주 출신인데, 벌써 외지 생활을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토박이를 군대에서 보았는데 상당히 성격이 부드러운 것 같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거칠지가 않아."
- 제주도가 대표적인 유배지여서 양반들이 서당을 열고 제주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친 게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주 사투리에 한자어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그렇지. 제주에 유배 많이 갔어요. 이승훈, 추사 등.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문학 기행으로 평사리, 벌교 등을 다녀왔는데, 거기도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더라고. 제주 4.3사건은 한국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어서 안타까운 데 시간이 많이 지나도 알게 모르게 상처가 많다. 재일교포와도 관련이 있고, 크게 보면 한국전쟁도 트라우마고, 우리는 참전은 안 했어도 생각하면 자꾸 떠오르고 그래. 지난 번에 제주 사투리 소개해 준 게 뭐였더라?"
- '기꽈'라는 말입니다. '그래요?'라는 말이고, '친척'을 의미하는 '궨당'이라는 말도 '권당'(眷黨)이라는 한자어에서 왔습니다. "'기(其)냐?'는 한자어인데, 충청도에서는 '기유' 라고 한다. 충청도 대표 사투리는 '거시기'라고 한다. 분명히 얘기하면 어떤 피해가 올 지 모르니까 '거시기'라는 말을 보따리로 싸 놓은 것이다. 간단한 말인데, 속에 보면 하도 극단적인 경험을 해서 얼른 표현이 안 돼 거시기라고 했다. 정확하게 자기 주장을 얘기했다가 큰일날지 모르니까.
나는 사투리를 국어책에도 집어넣으면 좋겠다. 북한에서 만든 말 중에서도 예쁜 게 많은데, 예컨대 볼펜을 '돌돌붓'이라고 한다. 이건 억지로 의역을 한 게 아니라 참 예쁘게 잘 만들었다. 어쨌든 국가가 재단하는 것보다는 지역과 향토성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 제주에서 요새 '제주 올레길'이나 '지슬' 같은 지역 특성을 살린 문화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지슬>을 우리 동네에서도 한다길래 기다렸는데 공주에서 한 번 상영하고는 닫아버리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뜻을 모아 2회 분을 몽땅 사서 보니 극장이 아주 꽉 찼다. 그 때 영화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순식간에 반가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모습을 본 극장에서도 놀라서 이틀인가 사흘 연장상영을 했다. <지슬> 같은 향토성 있고 문화의식 있는 사람이 만든 것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상연되는 곳이 의식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면 지역에 대해서 실망했을 텐데, YMCA, 전교조 등의 단체들과 지역민들이 합심해서 사람을 모으고 함께 보니까 참 좋더라. 영화에서 나는 할머니가 죽어가면서 자신을 죽인 군인에게 '당신에게도 부모가 있나요?'라고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죽이면서도 경어를 쓰고 죽으면서도 경어를 썼는데 강렬해서 잊히지 않는다. 군인들을 무조건 다 나쁘게 보는 게 아니고, 뭔가 알 수 없는 권력의 힘에 의해서 비참하게 되는 모습을 잘 그렸다."
- 지슬은 제주 사람들이 밥 대신 자주 먹는 서민 음식인데 제주 문화에는 '먹는다'는 게 특색이 있습니다. 심지어 '제나 지내러 간다'는 말 대신 '제사를 먹으러 간다'고도 합니다. '제사 지낸다'는 돌아가신 분이 주인공이 되는데, '제사 먹는다'는 말은 후손들이 주인공인 셈입니다. 현기영 소설가의 작품 <지상의 숟가락 하나>에서도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간다"가 비중 있게 나오듯, '먹는다'에는 제주의 묘한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그걸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거기 느껴지는 깊은 뭔가가 있다. 그걸 잊지 말고 살려서 승화되는 쪽으로 하면 민족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거다. 바스크 지역 등에서 고난을 당했지만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새롭게 다가가거든. 문화적 재산을 잘 살려야 한다. '육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 제주는 유난히 애착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