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 최초로 공공데이터 분석해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정책지도를 만들고 있는 최용선 광주 광산구 정책팀장.
이주빈
지난 2012년 미국 대선. 오바마는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재선 핵심 전략엔 '마이크로 타게팅(micro targeting)'이 있었다. 빅 데이터(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얻은 유권자별 정보에 맞춰 '맞춤형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유권자의 성별과 나이, 거주 지역과 직업, 소비행태 등을 고려해 진행된 선거 캠페인. 유혹되지 않았다면 되레 이상할 일이다.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이크로 타게팅은 민간사업 영역에선 안착화 단계를 지났다. 정치 영역에서도 지난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캠프가 적극 차용한 이래로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맞춤형 비즈니스'에 이어 '맞춤형 선거운동'이 대세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2012년부터 한국 최초로 공공데이터 분석... 정책지도와 마을지도 만들어 외신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마이크로 타게팅을 준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광주 광산구(청장 민형배)는 이미 2012년부터 한국 최초로 공공데이터를 분석해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리정보시스템)를 활용한 정책지도와 마을지도를 만들고 있다. 최용선 광산구 정책팀장은 이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어떤 사회적 현상이 벌어지면 원인 분석이 중요합니다. 단적인 예가 2011년 8월에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영국 토트넘 방화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지방정부가 확보하고 있던 데이터를 기초로 폭동이 일어났던 지역에 맵핑(mapping)을 했더니 20~30대의 청년실업률 증가와 빈곤의 악순환이 폭동과 상관관계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책은 근본적으로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연쇄 방화사건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데이터와 지리정보시스템을 활용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적 대책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최 팀장은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던 278종의 공공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광산지역의 사회복지와 대중교통, 보건의료, 문화, 안전 등 지역의 각종 통계를 지도에 입혀 정책에 활용하는 GIS 행정지도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2년 8월 'GIS로 그리는 광산구 행정지도'를 발간했다. 광산구의 도시현황과 사회복지, 보건의료, 대중교통, 교육, 문화여가 등 7개 분야, 52개 소주제가 간추려진 'GIS 행정지도'가 지자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동안 공공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은 중앙정부 역할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공공데이터에 기초 즉 우리 정보를 분석해서 정책 수요를 발굴하는데 서툴거나 혹은 방기했던 것이죠. 도시의 문제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의 안전문제는 그동안 치안 영역으로만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치안은 경찰이 하더라도 지자체와 시민사회 역시 안전을 위해 공동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공공데이터를 통해 범죄발생지역과 CCTV 미설치 지역과 가로등 미설치 지역의 상관관계를 분석합니다. 공공데이터는 지리정보를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 CCTV와 가로등을 설치해야 할 곳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정책지도 만들기가 가능한 것이죠."광산구 최 팀장은 신가동을 시작으로 정책지도를 마을단위로 제작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맞춤형 행정서비스와 맞춤형 행정정책을 이제 마을 단위에서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광산구 21개동마다 맞춤형 행정지도, 정책지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대 세대주가 광산구 신가동에 전입했다고 가정하자. 그는 동 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는 순간 마을지도를 건네받는다. 지도엔 아이가 다녀야할 보육시설이 어디 있는지, 아동병원은 어디 있는지, 놀이터는 어디 있는지 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60대 노인이 신가동에 전입신고를 할 땐 다른 지도가 건네진다. 이 지도엔 노인복지시설이 어디 있고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지, 노인 전문 의료시설은 어디에 있으며 대중교통은 어디서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가 그려져 있다. 사실상 행정의 마이크로 타게팅인 셈이다.
"공공데이터를 분석하고 지리정보시스템을 활용해 정책지도를 그리는 이유는 주민들 요구를 구체화해 정책 시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힘 있는 유지들에 의해 원칙과 기준 없이 시행되는 행정정책이 아니라 사실 중심의 의사결정과 예산배분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행정의 효율성과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행정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하자는 것입니다."최 팀장과 광산구는 오는 7월까지 최근 3년간의 사건사고를 비롯한 범죄통계 GIS를 이용해 '광산구 생활안전지도'를 만들 예정이다. 범죄 예방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서 안전 도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또 GIS를 통해 지역의 대중교통 수요를 분석해 광주시의 시내버스 노선이 광산구 주민들의 출퇴근 동선과 맞지 않다며 광주시에 시내버스 노선조정을 건의했다. 단순한 지도가 아닌 실질적인 정책지도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힘든 점은 데이터 공유가 잘 안 된다는 것"이런 광산구와 최 팀장의 도전은 큰 반향과 성과를 얻고 있다. 통계청에서 주관한 '2012년 통계작성기관 워크숍'에서 광산구는 통계자료 및 공공 데이터를 GIS와 접목시켜 정책을 수립한 사례를 발표해 호응을 얻었다. 사례 발표 이후 경기도와 경상남도 등 지자체는 물론 기상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벤치마킹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최 팀장의 특강을 요청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주최한 '제1회 지역통계발전협의회(17개 광역시도 통계담당관 회의) 지역통계 활용분야'에서 주제발표를 한 최 팀장은 인천 부평구, 서울 관악구, 은평구, 금천구, 도봉구 등 지자체는 물론 희망제작소의 '목민관 학교' 수강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관심과 호응은 높아지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최 팀장은 "가장 힘든 점은 데이터 공유가 잘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행정 조직은 다른 부서 일에 대해서 내 부서 숨기려는 문화가 강합니다. 특히 통계청과는 잘 되고 있지만 다른 중앙정부 부처와 지방정부의 데이터 공유는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례로 안전행정부가 광산구 전출입자 데이터를 주지 않아 3년 치, 2만3000개 데이터를, 네 명이서 하루 8시간씩 한 달 동안 8시간 씩 수작업으로 정리해야 했을 정돕니다. 중앙정부는 아직까지 '기획'은 자기들 몫이고 지방정부는 시키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 문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죠."최 팀장과 광산구의 도전은 지자체 혁신 성공 사례에 안팎의 이론이 없다. 최 팀장에게 지자체에서의 혁신, 행정정책에서의 혁신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 즉 새로운 방법을 써서 새로운 결과물 만들어내는 것이 공공부문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방법론과 인식론에 관한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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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 데이터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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