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우리 아내, 그래도 사랑합니다

등록 2013.05.07 15:46수정 2013.05.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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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넉자 성어가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닮은 것을 늘어놓으려고 하는데, 부전녀전(父傳女傳)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아들(子)'는 자식을 대표하는 의미도 있으니까 그냥 '부전자전'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전해 준 것을 일컬을 때 쓰는 말입니다.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당사자들이 들으면 몹시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밟혀 둘 것은 누굴 흉 볼 의도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겐 친정 아버지가 되고 제겐 장인어른이 되시는 영천 박영재 시인께서 우리와 함께 지낸지 한 달 가까이 되어 갑니다. 처남 집에서 오래 생활하시다가 딸도 자식이란 생각에 저희 집에 오셔서 같이 생활하자고 제안한 것은 사위 되는 저였습니다. 아내도 좋아하고 아내 형제들도 모두 고마워했습니다. 노인 분들을 즐겨 섬기는 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읜 보상이라도 되는 듯이 그 일에 열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매주 두 번씩 마을 노인 분들을 모시고 교회에서 식사 대접을 하는 것도 노인 섬김의 일환입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시는 장인어른도 부담없이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나름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시상(詩想)을 정리하기도 하고, 또 관심 있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보관하기도 합니다. 장인어른은 얼마 전부터 당신의 자서전 초록 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 스스로 이야기하셨듯이 범부의 삶을 살아왔지만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해방 정국을 거치고 한국전쟁을 겪는 등 어렵고 힘겨운 삶을 헤쳐 나오셨습니다. 그런 인생 역정을 자서전 형식으로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연세가 80 중반에 접어든 만큼 구시대의 생활 방식을 고집하며 살아가십니다. 모두가 향유하는 디지털 시대의 풍성함을 애써 외면하고 아날로그의 낭만에 자족하며 살아가는 그분의 모습에서 행복은 꼭 고도로 발달한 문화 가운데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저와 아내도 그런 아버지의 취향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불협화음은 없습니다. 오히려 미발달된 과학의 시대, 자연스러움이 힘을 발휘하던 시대를 그리며 살아가는 것에서 영천 선생과 우리는 의기투합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작은 갈등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생활 상 오는 차이는 일회성으로 그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반복될 때 작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장인 어른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이런 것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내 대장부이자 사위로서 좀 대범하게 임할 필요성을 느끼가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가 범부의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것 같아 위축될 때가 있습니다. 필부필부(匹夫匹婦) 옹호론자인 제가 그 축에도 끼이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 이것은 간단히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게 아니에요. 그냥 일상생활에서 오는, 어떻게 보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문제가 제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거예요. 더욱이 이 중 몇몇은 25년을 아내와 살아오면서 느끼던 것의 확장이어서 더 그렇습니다. 가령 이런 거예요. 저는 전등불 켜고 끄는 데 비교적 철저한 편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렇지 않아요. 화장실 불을 켜고 일을 본 뒤 끄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을 지적할 때마다 아내는 "전기료 조금 더 나오는 것이 나보다 더 중요해!"라며 오히려 공세를 폅니다. 그런데 장인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될지 모르지만 전등을 켜고 끄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해 주는 것이거든요.


집에서 아내와 식사를 함께 할 때, 받는 스트레스를 장인어른에게서 그대로 받습니다. 저는 식사를 좀 깔끔하게 하는 편입니다. 사물과 현상엔 질서가 필요하듯 식사에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밥 먹고 한두 개의 반찬을 입에 넣은 뒤 국을 떠먹는 식입니다. 하지만 아내와 장인어른은 국에 상위의 반찬을 잔뜩 풀어 짬뽕을 해서 먹습니다. 이것도 식사 방법의 하나가 된다고 얘기할 것입니다만 저는 식사 질서를 흐트러 놓는 것 같아 마음이 늘 쓰입니다. 이것은 상 위에 올라온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습관은 무섭습니다. 생활은 습관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 듯합니다.

이런 것도 있습니다. 양치질을 할 때 저는 치약 아랫부분부터 짜서 칫솔에 묻혀 이빨을 닦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치약 중간을 꾹 눌러 칫솔에 묻힙니다. 저는 이빨을 닦는 것이 목적이라 해도 그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아내는 그것이 아닙니다. 가끔 힘 조절을 못해 치약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과외의 낭비라고 주의를 줘도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아내와 동일한 휴대용 치약을 사용할 때면 제가 하나 쓸 때 아내는 두 개의 치약을 소진(消盡)해 버립니다. 제 두 배의 치약을 쓰는 셈입니다.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인어른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이런 점에서 아내와 똑같더라고요.

별 것이 다 반추되는군요. 독자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말을 벗을 때 말입니다. 비교적 성격이 꼼꼼한 편인 저는 양말을 벗을 때면 신은 그대로 꼭 펴서 벗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조금이라도 뒤집어져 있으면 바로 펴서 빨래통에 넣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 반대입니다. 이것도 습관 탓일 텐데 아내는 반드시 뒤집어서 벗어 던집니다. 바로 벗어 놓는 일이 없습니다. 장인 어른도 그러시더군요. 뒤집어 벗어 놓은 양말은 그대로 세탁기에 들어갑니다. 뒤집힌 상태로 빨래걸이에 널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르게 되겠지요. 다 마른 양말을 정리할 때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처음엔 다시 뒤집어 바르게 편 뒤 양말통에 넣었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 꽤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뒤집힌 상태 그대로 말아 통에 넣었습니다. 저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을 때의 통쾌함이란! 뒤집은 양말을 아내는 그대로 신고 신은 양말을 뒤집어 세탁기에 넣으면 양말이 원래의 바른 상태로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내의 양말은 그대로 두면 한 번은 뒤집힌 상태로, 또 한 번은 바른 상태로 신게 되는 것입니다. 습관이 참으로 무섭다는 것을 이런 아내를 통해 경험합니다.  

온수를 쓸 때도 아내와 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온수를 먼저 받고 다음 냉수를 적당하게 섞어 쓰고 있는데, 아니는 그 반대입니다. 이건 누가 더 옳으냐의 문제라기보다 습관의 차이인데, 저는 제가 물 쓰는 방법이 절약의 측면에서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소한 생활상의 차이만 존재한다면 우리 부부는 서로 많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서 오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아내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먼저 아내는 베풀기를 좋아합니다. 누구는 그런 아내를 보고 손이 크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천성이라고 얘기합니다만 저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잘 압니다. 아내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아내에게서 넉넉한 사랑을 발견하고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아내에 비하면 저는 '좀생이'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장인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꺼이 내어놓을 줄 아시는 분입니다. 농촌에서는 나름대로 유지로 생활하실 때, 얻어먹는 거지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는데, 늘 그들을 같은 상에서 식사하게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그 지역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아내의 장점입니다. 소위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소외되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 제 길을 찾아가게 만들어주는 일 말입니다. 앞길이 창창한 어린 학생들이 순간의 실수로 미래를 포기하려고 할 때, 아내에게 붙들리면 십에 팔구 명은 제 길을 찾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주위에는 늘 문제아들이 많이 몰려듭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새 삶을 찾은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때 곁에서 보는 저도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아내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교육관으로 이끌어 모두 가기 쉽지 않다는 대학을 진학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약자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장애인들, 노숙인들, 노인분들, 다문화 가정의 사람들, 이주 노동자들 등 우리 사회의 약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지극 정성입니다. 아내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엔 일찍부터 노년부를 따고 만들어 그분들에게 일 주일에 두 번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 교회엔 장애인들이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그들이 편안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있습니다.

시 외곽에 위치한 저희 교회에 종종 노숙자들이 찾아와 교통비를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싫은 내색하지 않고 사택 욕실로 데리고 와 냄새나는 몸을 깨끗이 씻게 합니다. 그 뒤 식사를 정성껏 차려 먹이고 필요한 옷가지며 교통비를 손에 쥐어 보냅니다. 제가 보기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아내는 즐겁게 감내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접을 받은 나그네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지난해에는 한 번 다녀갔던 사람이 다시 와서 선행을 입고 깜짝 놀라 돌아갔던 적도 있습니다. 미처 그가 다시 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주머니를 털어 교통비에 더해 목욕비를 쥐어 보냈습니다.

아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저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가문의 전승에서 기인한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함께 생활하고 있는 장인어른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장인어른이 이런 큰 유전을 딸인 아내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 장인 어른 되시는 영천 박영재 선생과 그분에겐 딸이 되고 저에겐 아내가 되는 여인이 몇 가지 생활상의 습관이 저와 차이가 난다고 해서 '스트레스' 운운했습니다만 그것은 그들이 제게 준 선한 영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저를 감사하게 만듭니다. 앞으로 얼마를 더 같이 생활할지 모르겠지만 동숙(同宿)하는 동안 더 많이 이해하면서 잘 대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부전자전 #생활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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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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