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어머니와 찍은 사진 한장50년대 중반, 어느 봄날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 , 아들인 동네 형과 함께 찍은 사진 한장. 어머니는 이제는 60이 다된 동생을 막 낳아 안고 있다. 어머니는 80대 중번으로 치매를 앓고 계신다.
조갑환
'봄날은 간다' 이 노래는 또한 나를 어린 시절로 이끌어간다. 사진 속의 그 시절, 우리는 시골의 외가 옆의 마을에 살았었다. 마을에 몇 호 살지 않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었다. 3살 터울의 내 밑에 동생이 막 태어나서 어머니가 안고 있을 때이니 내 나이가 4~5살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마을에는 내 또래의 친구도 없었다. 나또한 그때는 자연과 친구였다. 들길이나 냇가에서 나 혼자 물고기, 개구리를 벗 삼아 놀았던 기억 밖에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유일한 일은 어머니를 따라 그 당시의 면소재지의 장날에 가는 것이었다. 장에 가면 약을 파는 약장수 공연이 있었다. 약장수들은 판소리, 마당놀이를 하며 중간 중간에 약을 선전하며 팔았었다. 그 사람들은 공연이 한 참 재밌을 대목에 가서 꼭 멈추고 약을 팔았었다. 시골 사람들은 그 재밌는 대목을 볼 요량으로 가지 않고 약을 사 주었다. 그리고 닭 전에 가면 개, 닭, 토끼들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의 뒤에 달린 우리에 갇힌 짐승들은 이장 저장 끌려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나는 짐승들을 깨우려고 돌을 우리에 던져 넣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다. 약장수공연과 닭 전이 당시 내가 장날이면 어머니를 따라가서 보는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들이었다.
어느 봄날, 장이 끝나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산에는 진달래, 철쭉이 붉게 물들었었다. 오솔길을 걸어오다 동네 어귀의 어느 집에 들렀었다. 그 집에는 서울에서 놀러 왔다는 친척 아저씨의 축음기가 있었다. 검은 기계 위에 검은 판을 올려놓으면 판이 빙글빙글 천천히 돌고 그 판 위에 바늘이 있는 막대를 올려놓으니 여자 목소리의 가늘고 떨리는 노래가 나왔었다.
아마 55년이 흘렀지만, 그때 나온 노래 중에 하나가 백설희씨의 '봄날은 간다'였다. 나는 그렇게 '봄날은 간다'와 만났었다. 자연만을 보고 자랐던 촌놈이 맨 처음 축음기를 보고 신기해하던 일이라서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제 사진첩의 젊은 어머니도 80이 훌쩍 넘어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계신다. 나 또한 60의 노인 대열에 들어섰다. 내 인생의 봄날은 이미 가버렸는지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19살 처녀가 봄이 가버림이 슬퍼지듯이 인생의 봄날이 가고 있음이 슬플 뿐이다. '모란이 지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라고 노래한 김영랑은 오직 봄만을 사랑한 시인 인 듯싶다. 꽃이 지는 5월의 봄이 모란이 져버림과 함께 다른 계절은 기대할 것도 없다는 듯이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고 노래했다.
봄날은 간다. 그러나 다른 계절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을, 겨울이면 어떠랴. 황혼녘이라 해도 이제는 슬퍼하지 않으리다. 그 계절 나름대로 즐기며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듯이 유유히 세월 따라 나이 들어가며 다가오는 황혼의 삶을 즐겁게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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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봄날은 가지만 다른 계절도 열심히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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