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 30여만원,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내에게 옷선물 장담했건만... 매정한 자동 출금의 세계

등록 2013.05.31 15:40수정 2013.05.3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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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건 제가 의도한 게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약속이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가타부타 말이 없는 아내이니 제 마음의 짐이 더 무거워집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저는 <오마이뉴스>에 간간이 글을 올려 왔습니다. 꼭 원고료를 생각하고 글을 보낸 것은 아닌데, 시일이 지나고 글 올리는 횟수가 쌓이니 원고료도 비례해서 올라가더군요.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원고료를 제가 받아썼습니다.

이번에 신청한 원고료는 33만6000원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찾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좀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이 아내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5일은 저희 부부가 만나 새 가정을 꾸린 지 24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결혼 24주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날, 아내에게 필요한 옷을 한 벌 사기로 내심 작정했습니다. 뜸을 한창 드리다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살며시 귀띔해줬습니다.

아내가 깜짝 놀라더군요. 결혼하고 옷다운 옷을 선물 받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30여만 원이면 좋은 메이커 옷은 아니더라도 맘에 드는 옷을 살 수 있겠다며 좋아했습니다.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보다 큰 꿈을 갖고 만난 '우리'지만 가끔 세속적 욕구 충족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내에게 옷을 선물해서 남편 구실을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글로 쌓아 놓은 원고료, 이게 행복이다 싶었다

<오마이뉴스> 원고료 이용안내. ⓒ 인터넷 갈무리


저는 <오마이뉴스>에 정식으로 원고료를 청구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인터넷신문인만큼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잉걸에서 버금·으뜸·오름 등 다양한 등급으로 인해 매겨진 원고료입니다. 33만6000원에서 세금(소득세·주민세) 4.4%를 제하고 지급받을 액수는 32만1220원이었습니다. 여기서 2만1220원을 빼고 30만 원을 현금으로 찾아 아내에게 전하게 될 일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런 게 남편이 갖게 되는 행복감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원고료를 신청해 놓고 긴장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왜냐하면 <오마이뉴스> 원고료는 신청 즉시 바로 입금되는 게 아니라 시일이 조금 걸리기 때문입니다(원고료 신청 마감은 매달 15일, 말일. 지급은 매달 17일, 익월 2일). 저의 빈한 형편으로 인해 돈이 송금되자마자 인출하지 않으면 다른 용도로 빠지기 쉽기 때문에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원고료를 신청해 놓고 한 사흘은 수시로 통장을 찍어봤습니다. 하지만 통장을 확인할 때마다 '정리할 내용이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떴습니다.

혹시 다른 통장으로 신청하지 않았나 싶어 번호를 두들겨 봐도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교육이다 결혼식이다 해서 며칠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인 5월 25일 닷새 전, 그러니까 지난 20일 아내와의 약속이 불현듯 생각 나 근처 은행에 가 통장을 찍어 보니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자주 이용하는 통장을 조회해 보니….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이틀 전에 그 통장으로 원고료가 입금이 됐고, 입금된 돈은 고스란히 같은 날 카드 대금으로 출금되고 말았습니다. 남은 금액란에는 0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남편으로서 머리를 들 수 없게 됐습니다. 아내에게 바로 말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봤습니다.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다음에 사정이 허락할 때 선물을 하겠다고 할까 아니면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고 했으니 어디서 급전을 내서라도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침묵으로 일관해서 유야무야(有耶無耶) 만들어 버릴까. 어느 것 하나 가능한 것도 그렇다고 당당한 것도 못됐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왔습니다. 없는 자의 옹졸함으로 몰려오는 초라함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던 아내,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텅 비어버린 통장,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제 잘못이었습니다. ⓒ sxc


하지만 일은 엉뚱한 데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22일, 손님맞이 대청소를 하다가 담당 영역 문제로 아내와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인데도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드디어 마음에 숨겨 놓았던 불만을 털어놓기까지 했습니다. 잊고 있나 싶었던 결혼 24주년 기념 '옷 선물'은 어떻게 되었냐며 그럴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결혼하고 변변한 선물 하나 받아보지 못했는데, 옷을 사 준다기에 내심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비례해서 커지는 법인데,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지금 자신이 그런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럴 때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밖에 없습니다. 변명해 봤자 더 구차하게 보이기 쉬울 테니까요. 청소할 때마다 내 담당이었는데, 군말 않고 걸레를 빨아줄 걸,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충정(衷情)만은 아내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통장을 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보여줬습니다. 통장에는 입출금 내역이 빠짐없이 찍혀 있었습니다. 작은 시골 교회 목사의 통장이라 내역의 일자가 듬성듬성 찍혀 있었습니다. 사업 등을 하는 사람의 통장은 같은 날에도 여러 건의 거래가 찍힐 테지만 한 달 해 봐야 네다섯 건의 거래 내역이 제 통장의 전부입니다.

통장에는 분명 이렇게 기록돼 있었습니다.

'5월 18일 맡기신 금액 321,220원, '오마이뉴스'. 같은 날 찾으신 금액 321,220원, KB카드 출금, 남은 금액 0 원'

다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글을 쓰기로

아내는 제가 글 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깁니다. 일상적인 삶에서의 일탈(逸脫)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글쓰기로 정말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도 바꿔줄 생각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고료로 아내에게 옷을 선물하려는 꿈이 이렇게 해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못난 사람이 일이 틀어질 때 쉽게 숙명 운운하듯이, 저도 옷 얻어 입을 복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라며 일의 추이를 합리화했습니다.

아내는 전 근대 여성과도 같습니다. 생활도 생각도 또 생각에서 오는 차림도 그렇습니다. 언젠가 저는 이런 아내를 소재로 '전 근대 여성 찬가'라는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늘 낮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아내이기 때문에 이런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일단,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우리는 형식이 내용보다 더 중요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득한 사랑보다는 표현하는 사랑을 더 선호하는 세태입니다. 선물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아내 사랑하는 마음은 더 짙어졌다고 강변해도 별 설득력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아내를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음이 물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작정입니다. 더 많이 이해하고 양보하며 아내를 더욱 위하려 합니다.

'남아일언 중천금'을 다른 의미로 보여 줄 작정입니다. <오마이뉴스> 등 신문 잡지에 글을 더 많이 기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고료로 아내 옷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작은 것에서부터 진솔한 마음을 갖고 나누면서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나 혼자만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해야겠지요? 좋은 글감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결혼기념일 #옷선물 #오마이뉴스원고료 #자동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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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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