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노랫말이 실린 부끄러운 찬송가

김활란이 지은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와 '어머니의 넓은 사랑' 빼야

등록 2013.05.31 15:41수정 2013.05.3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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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 김활란가 지은 찬송가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친일파 김활란가 지은 찬송가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김동수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중략)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잔잔한 바다 잔잔한 바다."

찬송가 345장이다. 이 찬송가는 우리나라 여성 박사 1호로 불리는 김활란 박사가 1921년 지은 노랫말이다. 찬송가 아래에는 작사자와 작곡자를 설명한 곳이 있는데 김활란을 이렇게 말한다.

"김활란(1899~1970)은 인천 태생의 여성 지도자·교육가·이화여전 재학시 그녀는 이화전도단을 구성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 경찰들은 전도 활동을 금지시키고 말았다. 여기에 울분을 느낀 그녀는 조국의 운명을 만경창파의 배 한척으로 비유하는 동시에 나라의 운명을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부탁하는 본 시를 작시하기에 이르렀다."

찬송가 노랫말을 지었고, 민족정신을 고취한 김활란! 일본 경찰이 전도활동을 금지할 정도로 조국을 위해 싸웠던 김활란!을 생각하면서 이 찬송을 부르는 기독인들은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1921년 이 노랫말을 지었을 때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김활란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친일부역자'다.

김활란은 1937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친일단체인 방송선전협의회·조선부인연구회·애국금차회 따위에 참여하고, 1941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및 참사로 활동하였다. 문인답게 <부인들끼리의 애정과 이해-내선(內鮮) 부인의 애국적 협력을 위하여>(1939.3),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1942.12), <남자에 지지 않게 황국 여성으로서 사명을 완수>를 발표하고, <여성의 무장>(1941.12), <대동아 건설과 우리 준비>(1942.2) 따위 강연을 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중략)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귀한 아들을 즐겁게 전장으로 내보내는 내지의 어머니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중략) 그러나 반도여성 자신들이 그 어머니, 그 아내가 된 것이다(중략) 이제 우리도 국민으로서의 최대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신시대>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 일부

김활란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지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친일행적에 문제를 제기하며 교내에 설치된 동상 철거를 요구하고 나선 이유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대생들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교내 본관 앞에 설치된 김활란 총장의 동상에 철거를 요구하는 쪽지(포스트잇)를 붙이는 플래시몹을 했다. 3m 높이의 동상에는 학생들이 붙인 쪽지가 얼굴 부분까지 빼곡하게 찼다.


학생들은 "당신이 이곳에 있음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김활란동상 철거를 요구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화에 부끄러운 딱 한 가지", "김활란 내려오고 유관순을 올리자", "잘못된 것은 자정하는 이화인이 됩시다"는 글귀를 적었다. 

 친일파 주요한 지은 찬송가 '어머니의 넓은 사랑'
친일파 주요한 지은 찬송가 '어머니의 넓은 사랑'김동수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부르십니다.(중략)온유하고 겸손하며 올바르고 굳세게/ 어머니의 뜻 받들어 보람있게 살리다/ 풍파많은 세상에서 선한싸움 싸우다/ 생명시내 흐르는 곳 길이 함께 살리라"(579장)


시 <불놀이>와 <빗소리>로 잘 알려진 주요한이 지은 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은 5월 어버이주일이 되면 자주 부른다. 우리교회 역시 부른다. 하지만 주요한 역시 김활란처럼 친일부역자다.

"오늘에서랴 우리를 / 부르시는 높으신 뜻을 / 서로 전하여 말하며 / 눈물 흘리는 것을"

1944년 4월 지은 '손에 손을'이다. 징병제를 찬양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조국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징병으로 끌려가 죽은 이인석을 위해 지은 '첫피'는 핏속에 친일이 흘러넘침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간다, 만세를 부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목껏 부르고 / 대륙의 풀밭에 피를 뿌리고 /너보다 앞서서 나는 간다/ 피는 뿜어서 누런 흙 우에 검게 엉기인다/  형아 아우야 이 피는 너들의 피다/ 2천 3백만 너들의 피가 내 몸을 통해서 흐르는 것이다/ 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뿌려지는 피다/ 반도의 무리가 님께 바친 처음 피다."

"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뿌려지는 피다"는 말은 우리 역사 자체를 부정한다. 주요한 의식 속에는 고조선-삼국-고려-조선이 없다. 오직 일본제국주의만 자신의 역사인 셈이다. 친일도 완벽한 친일인 셈이다. 그런데 그의 노랫말이 찬송가에 실려 지금도 한국교회가 부르고 있다. 찬송가에서는 주요한을 이렇게 설명한다.

"주요한(1900~1979)은 시인이며 언론인·정치인, 젊었을 때는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으며 후에는 시인으로 문예 동인지 <창조>에 '불놀이'란 시를 발표하였다. 본 찬송시는 1967년 한국찬송가위원회로부터 어머니날 찬송가를 의뢰받고 특별히 쓴 것으로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다."

참 흥미로운 설명이다. '젊었을 때는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뼛속까지 친일파'였다는 사실은 감췄다. 친일행적 부끄러움을 안다면 이제 김활란과 주요한이 지은 두 노래는 찬송가에서 빼야 한다. 사실 기회가 있었다. 지난 2006년 '새찬송가'가 나왔다. 1981년 통일찬송가 이후 35년만이었다. 1981년에는 김활란과 주요한의 친일행적이 도마위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갔지만, 2006년 새찬송가를 만들 때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쯤 찬송가가 새로 편집될지 모른다. 만약 찬송가가 새롭게 편집되면 반드시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때'와 '어머니의 넓은 사랑'은 빼야 한다.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했던, 죽음을 노래했던 친일부역자들이 지은 노래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며, 민족정신을 짓밟은 행위다. 지금까지 우리교회도 이들이 지은 찬송가를 불렀다. 이제부터 더 이상 부르지 않겠다. 신자들에게도 김활란과 주요한은 친일부역자임을 가르칠 것이다.
#찬송가 #김활란 #주요한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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