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폐쇄하자는 민주당, 정말 실망스럽다

[게릴라칼럼] 일베 논란, 입막음 아니라 표현자유 확대로 풀어야

등록 2013.06.03 16:35수정 2013.06.0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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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말썽이다. 이 익명게시판을 들여다 보면 단순한 우스개나 순박한 질문에서 시작해, 여성에 대한 멸시, 노골적 지역 혐오, 군사독재 찬양,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하다. 무지, 오해, 편견이 담긴 글이야 인터넷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게시판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일베' 는 민주화를 거부감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일베 사이트 캡처 화면
'일베' 는 민주화를 거부감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일베 사이트 캡처 화면 일베

회원들이 쓴 글들은 추천 순위에 따라 '베스트' 게시판에 배열되는데, 추천 방식이 흥미롭다. 대개의 게시판은 찬반을 표하는 데 '올려-내려', '공감-비공감,' '추천-비추천'을 쓰는 반면, 일베는 '일베로-민주화'를 쓴다. 글이 마음에 안 들면 '민주화' 버튼을 눌러 반대를 표하고 점수를 깎는 것이다.

거부감을 표현하기 위해 '민주화'라는 말을 쓴다는 점만 봐도 운영자와 회원들의 의식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올리고 추천하는 것은 회원들만 할 수 있지만, 게시된 글은 방문객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그로 인해 '베스트' 게시판은 회원들이 선호하는 '화끈한' 글들로 채워지지만, 사이트의 영향력은 가입자들의 영역을 넘어선다.

'민주화' 조롱하며 '표현의 자유' 내세우는 아이러니

최근 이 사이트가 논란에 휩싸였다. 사망한 대통령을 모욕하고, 학살된 광주 시민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홍어 말리는 중'이라 조롱하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유족과 관련 단체가 소송을 제기할 뜻을 비쳤고, 광고주는 기업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광고를 취소했으며, 일부 법학자들과 언론학자들이 규제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아예 사이트 문을 닫기 위해 운영금지가처분 신청까지 검토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듯, 일베 회원들은 한 목소리로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이 사이트를 지키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모습은 꽤나 희극적인데, '표현의 자유'는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민주화'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베 회원들이 흠모해 마지 않는 '전땅크(전두환)'가 불법집권한 뒤 가장 먼저 '땅크'로 밀어버린 게 표현의 자유였다.

일베 회원들이 '널어 놓은 홍어'라며 조롱한 시신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쓰려져간 우리의 형제 자매였다. 물론, 일베 회원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광장에서 서슬 퍼런 권력과 맞서 싸우는 용기 같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기껏 익명 게시판에 모여 한다는 짓이, 힘 있는 편에 빌붙어 약자나 조롱하는 일이다.


사실 이들은 '우익'도 아니다. 일베를 유럽 극우세력이나 신파시스트 집단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교의 근거가 명확치 않다. 흔한 오해와 달리, 일베는 '세력화'하지 않았다. 가수 전효성이 '민주화'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 뒤 비난을 받고 사과한 사건을 보자. 일베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효성 돕기'를 제안하고 앨범과 음원 구매 운동을 벌였지만, 매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일베는 특정한 이념이나 철학을 지닌 집단도 아니다. 집권 정치세력과 기득권을 옹호할 뿐, 일관된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좌절한 개인들이 모여 엉뚱한 대상에 분풀이를 하는 '해우소'에 가깝다. 회원들 대다수는 다른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 겁많은 기회주의자다. '소송'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부랴부랴 글을 지우는 모습을 보라.


강자에 붙어 약자 조롱하기, 왜?

일베가 약자를 조롱거리로 삼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망을 표출하고 싶으나, 권력에 맞설 용기는 없다. 절망의 원인을 분석할 지식은 결여되어 있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에는 너무 무기력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분노해야 할 대상'에게 분노하기보다 '분노할 수 있는 대상'에게 분노하는 것이다. 일베는 변화의 희망을 잃은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될 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일베는 진보정권이 안긴 '헛된 희망'을 저주하고, 불의가 승승장구하는 한국사회에서 정의를 말하는 '위선'을 역겨워 한다. 일베는 표현의 자유가 지나쳐서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왜곡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간이다. 이 사실을 무시한 채 '규제'나 '폐쇄'를 말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간과하는 것이다.

일베가 독립된 사이트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다. 이 시기는 이명박 정부의 여론탄압과 언론장악 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때였다. 2009년에 검찰은 경제정책에 비판적 글을 쓰던 블로거 '미네르바'를 긴급체포했고, 국정원은 불법사찰 문제를 제기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며, 검찰은 광우병 보도를 이유로 피디수첩 제작진에게 2~3년 징역을 구형했다.

당시 국내외의 인권단체는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심각히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터넷의 자기검열 심화, 공권력을 통한 물리적 탄압,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 등 법을 통한 재갈물리기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2009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75개국 가운데 69위를 차지해, 한해 전보다 무려 22계단이 추락한 참담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9년 말에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던 김인규를 KBS 사장에 앉혔고, 2010년에는 MBC 사장으로 김재철 '낙하산'을 투하했으며, 같은 해에 시민사회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보수언론 '조중동매'를 종합편성 사업자로 선정했다. 이명박 집권 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국가보안법 입건자도 2008년 40명, 2009년 70명, 2010년 151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처럼 일베는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위축된 환경에서 탄생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이 봉쇄되고 보수적 발언만 허용되는 시기에 안전한 분노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공영방송에서 인터넷 게시판까지 '꼼꼼하게' 손본 언론통제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무지로 이어졌다.

일베를 만든 것 : 언론탄압, 보수언론, 우익교과서

이명박 정부가 면밀히 진행한 교과서 개정 작업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교실에서는 군사독재를 합리화하고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도록 가르치고, 신문과 방송은 FTA한미협정부터 4대강 사업까지 정부정책을 옹호하기 바빴으며, 인터넷의 발언은 검열과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비판적 발언은 억누르고 객관적 정보는 가로막는 상황에서 합리적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일베 폐쇄가 "표현의 자유와 관계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최소한의 악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일베 폐쇄는 표현의 자유와 아무 관련이 없을까? 무지와 욕설이 넘쳐나는 이 사이트는 용인해서는 안 될 '악'일까?

언론학자로서 볼 때, 신경민 의원의 발언은 무척이나 실망스럽다. 한국사회에서 주관적 잣대로 '악'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경우를 흔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신 의원 자신부터 신념이 담긴 발언으로 인해 언론직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나 자신도 보수정권의 냉전적 사고를 지적하면서 '빨갱이'라는 소리를 귀따갑게 들었고, 한국 기독교의 탐욕을 비판하면서 '악마'라는 비난을 이마에 달고 다녔다.

일베에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만일 그 발언 때문에 일베를 없애야 한다면,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신문 댓글란도 없애야 마땅하다. 일베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의 글은 인터넷 공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규제는 이익과 손해의 두 측면을 면밀히 저울질해야 한다. 일베가 좋아서가 아니라, 일베를 규제함으로써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

일베보다 두려운 것

한국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출간 기자회견 교과서포럼공동대표 이영훈(오른쪽 두번째) 서울대교수가  2008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최근 '대안교과서'로 완성한 '한국 근ㆍ현대사' 공식 출간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출간 기자회견교과서포럼공동대표 이영훈(오른쪽 두번째) 서울대교수가 2008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최근 '대안교과서'로 완성한 '한국 근ㆍ현대사' 공식 출간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베 폐쇄는 안 그래도 열악한 표현의 자유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후퇴시킬 것이다. 일베가 마음에 안 들면 반론, 광고주 불매운동, 민사소송 등으로 대처하면 된다. 일베가 표현 자유의 위축으로 탄생한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문제는 규제의 강화가 아니라 표현의 확대로 풀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정당한 비판을 허용해야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이 비판 받게 되고, 사회발전이 가능해 진다. 명색이 민주국가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보도나 교과서 내용이 춤을 추는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비민주적 정보 통제의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유엔이 오래 전부터 폐지를 권고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종북'이라는 낙인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현실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남북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도 불가능하게 한다.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말이 '전쟁불사' 아닌가. 국가보안법이 도리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야당, 특히 민주당은 두 번이나 집권하고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보수 기독교 세력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역시 유엔이 권고한) 차별금지법 발의를 철회한 것 역시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일베라는 일개 사이트보다 일베를 탄생시킨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예컨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의 교과서 왜곡처럼 말이다.

궁극적으로 좌절한 국민들을 보듬고, 추락하는 표현의 자유를 되살리고,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부터 안겨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일베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일베는 클릭 하나로 빠져나올 수 있지만, 일베를 탄생시킨 현실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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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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