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여의도가 아니라 책상 위에 올라오다

[서평] <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

등록 2013.06.13 10:31수정 2013.06.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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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종종 "너희들이 무엇을 아느냐"라거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라며 10대들을 무시한다. 어른들은 10대들은 정치의식이 없다고 생각하고, 간혹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만 19세가 되어야 투표권이 있다. 만 19세는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 나이로 10대가 아니라 20대다. 아직도 10대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대한민국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10대들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아이일까? 우리 현대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독재정권은 보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일(3월 15일)을 앞두고 중고등학생들을 학교에 등교시켰다. 학생들이 선거유세장에 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놀라운 것은 대구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4월혁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 동네인 대구가 그때만 해도 진보 동네였다.


1960년 '4월혁명'과 2008년 '촛불집회' 불 붙인 10대들

2008년 5월부터 약 두 달 동안 대한민국은 촛불나라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의 촛불을 들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권을 미국에 팔아먹었다는 분노가 활활 타오른 것이다. 촛불을 처음 든 이들은 시민단체와 정치인이 아니라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촛불 소녀·소년들'이었다. 교복을 입고 한 손에 촛불을 든 채 "광우병 쇠고기 막아내자"고 외쳤고, 어른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저 많은 초를 누구 돈으로 샀느냐"며 '배후'를 의심했다가 촛불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당시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한 학생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학교만 다녔던 정형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쇠고기 문제 뿐 아니라 우리의 꿈을 우리 힘으로 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는 게 정말 소중해요. 지금 보면 교육이 다 기계로 찍어내는 식이잖아요"라고 했다. 그리고 "이게 정말 민주주의 공부인 것 같아요."와"사회시간에 배운 것을 직접 해본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2008.5.4 <오마이뉴스> "국민이 싫다는데... 대통령은 떼쟁이인가").

이처럼 10대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숙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다. 10대들도 충분히 자신들 정치의식을 발휘할 수 있고, 자신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란 '여의도'와 '청와대',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을 날치기 처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0대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일종의 정치다. 

여의도가 아닌 책상 위에 올라간 정치...'10대들 놀이터'


여러분은 종종 정치가 일상생활 속에 복병처럼 숨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외국인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것, 나아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훨씬 더 개인적인 선택 이면에도 숨어 있을 수 있다. 혹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더라도, 정치적 결정이 실제 생활에 미치는 중요성을 분간해 내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 <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4쪽)

 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
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우리교육
<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는 한 마디로 '진정한 정치를 유쾌하게 그린 10대들의 정치 놀이터!'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질문의 시간'에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14개를 싣고, 2부 '투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에는 민주주의 기능에 대해 설명한다(참고 이 책에 나오는 10대는 '세바스티앵-포르 고등학교 1학년 A5반' 학생들이다).

요즘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터졌다. NSA(미 국가안보국) 외주업체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국가안보국이 무차별적인 통화·인터넷 정보를 수집했다고 폭로했다.

국가공권력의 개인 정보 수집은 미국만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도 한다. 시민사회는 공권력의 정보수집을 강하게 비판한다. 어른들도 자신들 정보를 국가가 수집하는 데 별 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학생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책 속 한 학생은 교장 선생님이 학교 식당에 생체 인증 기계 도입 계획을 추진하려 하자 강하게 반대해 이 계획을 무산시켰다.

지은이가 프랑스 사람인데, 프랑스는 학교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학생들도 참석한단다. 회의에는 교장 선생님, 학부모, 재정 담당자, 장학사, 지방의회 관계자가 참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 회의 장면으로 들어가보자.

교장 선생님: "학생들이 학교 식당을 이용하는 여부를 관리하는 것이 점점 힘들다... 생체인증 기계를 이용한다면 관리는 더 빨라질 것이다. 다른 기계와 호환하여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입구에 지각 탐지기를 설치한다든가."
어머니 1: "저는 이 계획에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시대에 맞추어야 합니다."
어머니 2: "네 하지만 비용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군요."
재정 담당자: "광학 해독 장치가 3천 유로입니다."
지방의회 관계자: "지방의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같은 비용 지출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학사: "이 생체 인증 기계 도입 계획에서 핵심은 바로 안전 문제입니다."
아버지: "아무나 학교 급식실에 들어와서 식사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죠. 또한 급식비를 내지 않은 사람도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낸 비용으로 공짜로 먹일 수 없기 때문이죠."

어머니 3: "학생들을 어려서부터 자료화 하고자 하는 초대형 데이터를 구축하려는 목적이지요. 생체인증 방식은...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의 손, 눈의 동공, 얼굴 형태까지 바코드화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입니다!"
선생님 : "이 기계는 청소년들에게 책임감을 잃게 합니다. 이후로는 학생으로서 가져야 할 정체성은 더 이상 자기 이름이 아니라 자기 신체 중 일부가 가지게됩니다."

교장 선생님이 생체 인식기를 도입하는 이유는 "학생들 관리"가 목적이다. 한 어머니는 시대에 맞추어야 한다며 동의했다. 다른 어머니는 '돈' 걱정을 했고, 지방의회 관계자도 마찬가지다. 장학사와 아버지는 아무나 급식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도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3과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보수집 대상으로 삼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이런 모습은 특정 사안에 대한 어른들의 전형적인 논쟁이다.

회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생체인식기 도입은 부결됐다. 바코드화를 반대한 어머니 때문에? 재정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지방의회 관계자 때문에? 아니다. 같는 자리에 있었던 학생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반대 논리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반대 논리를 들어보자.

"위생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급식실에 들어갈 때마다 알아서 손을 기계 유리 부분에 갖다 대야 합니다. 식사 바로 전, 손이 입 근처로 가기 바로 전 말이죠. 친구들 중 대부분이 급식실에 오기 전 손을 씻지 않습니다(중략). 기계 유리 부분은 금방 세균이 자라나는 온상이 될 것이고 세균 배양액을 키울 수 있는 장소로 최적이 될 것입니다. 생명과학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에 따르면 이는 확실히 전염이 될 것이고요."

"정치만세!"

이 학생 논리는 간단하다. 안 씻은 손을 생체인식 기계에 갖다 대면 세균이 번식하게 될 것이라는 것. 이런 것을 어른들이 어떻게 설치할 수 있느냐는 논리다.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먹혔다. 여의도와 청와대 그리고 경남도의회 정치와는 전혀 다른 10대들만의 생기 발랄한 생각에서 나온 멋진 정치다. 이쯤 되면 "정치 만세!"를 외쳐도 다 찬성할 것이다.

책 속 학생들은 '말하는 자유', '신앙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두고 물음과 답을 찾아가기 위해 논쟁하고 논쟁한다. 불법체류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묻고 답한다.

"혁명가나 도주자 같은 사람이 오늘 밤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모르겠어.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불법 체류자라면?"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이 이야기를 나한테 해 준 건 잘한 일이야."

"왜?'
"간단히 말하면 이제는 우리 엄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거든."
"???"

"엄마는 살인자를 집에 머물게 하진 않으실 거야. 하지만 불법 체류자니까 들이시는 것이겠지. 똑 같은 상황은 아니잖아."
"그럼 넌 네 엄마가 옳다는 말이야?"
"그건 엄마가 한 선택이고 난 그 선택을 존중할래."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토론이 이렇게 끝나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은 아버지가 읽어라고 준 책 <반항적 인간>(까뮈)에 나오는 "나는 반항한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존재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살고 또 살도록해야만 한다"는 내용을 친구에게 전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불법체류자와 혁명가와 도주자를 어떻게 받아들이지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자신들 기득권을 먼저 생각하는 기성 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10대들 정치'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하지만 정치는 엄연한 현실이다. 열네 개 질문에 답을 찾았다면 이를 삶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동과 제도가 필요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그 방법이 '투표'다. 하지만 투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지은이는 말한다.

투표가 곧 정의는 아니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국민투표로 결정할 때 80%가 동의하면 과연 그것은 정의인가? 다수결로 뽑힌 국가지도자가 세습으로 권좌에 오른 지도자보다 민주의식이 반드시 앞섰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지은이는 "민주주의는 매우 훌륭한 사상이다. 이는 국민이 가진 권력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힘을 가진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정치제도로서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파도 한 번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다. 끊임없이 다시 세우고,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 정치는 영원히 변한다. 그 변화를 이끌어 가는 중심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덧붙이는 글 <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 파트리스 파바로·필리프 고다르 글 | 김혜영 옮김 | 조선진 그림 | 우리교육 펴냄 10,000원

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 - 10대가 말하는 유쾌한 정치

파트리스 파바로, 필리프 고다르 지음, 김혜영 옮김, 조선진 그림,
우리교육, 2013


#정치 #십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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