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엔 만난 장미

[사진] 올림픽공원 장미 광장에서 축제끝의 장미를 둘러보다

등록 2013.06.13 11:30수정 2013.06.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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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구경도 비 오는 날은 걸음을 주저하게 한다. 우산을 들어야 하는 성가심이 한몫할 것이고, 옷이나 신발도 젖으면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 오는 날 나서야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내리는 비가 강물에 수없이 그려대는 동그라미를 바라보며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는 자신의 심정을 대신하고 싶다면 비 오는 날이 아니곤 기회가 없다. 비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면서 아울러 독특한 풍경을 선물하곤 한다. 풀잎에 잡혀있는 빗방울도 눈여겨보면 상당한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는 대개의 경우 비에 젖은 모든 것들을 후줄근하게 만들어버린다. 비를 뒤집어쓴 민들레를 보고 있노라면 물에 젖은 생쥐꼴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렇지만 예외가 있다. 비가 오는 날, 더욱 빛나는 꽃들이 있다. 장미도 그 중의 하나이다.

6월 12일 수요일, 물의 요일답게 서울은 비가 훑고 지나갔다. 오전에 시작된 비는 그리 굵지는 않았으나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11일까지의 장미 축제를 하루 전에 막 끝낸 올림픽공원의 장미 광장엔 아직 장미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든 장미는 비를 쫄딱 맞았다. 하지만 빗속의 장미는 보통 때와 또다른 미모로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비에 젖어 더욱 빛나는 장미의 미모를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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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장미가 예쁜 꽃인 것은 분명한가 보다. 옛날 중국의 서시는 얼마나 예뻤는지 얼굴을 찡그려도 예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장미의 미모도 못지 않다. 비에 쫄딱 젖어도 여전히 예쁘다. 비에 젖었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비 그치고 나면 햇님과 바람이 다 닦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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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비 오는 날엔 장미의 얼굴이 보석이 된다. 세수를 하는 것만으로 장미처럼 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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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너무 예쁘니 약간 트집을 잡고 싶어진다. 짐짓 마누라라도 되는 양 장미에게 잔소리를 한다. "이 놈의 마누리가 미쳤나. 그냥도 예쁜데 무슨 보석이야. 도대체 보석구입비로 얼마를 쓴 거야?" 장미가 답했다. "바보 멍충아, 하늘이 준 공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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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몽우리 ⓒ 김동원


축제는 끝났지만 아직도 잡혀있는 몽우리들이 많다. 몽우리에도 빗방울은 예외가 아니다. 이슬 방울처럼 보인다. 장미가 어찌 그리 예쁜가 했더니 이슬만 먹고 자라서 그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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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장미 두 송이가 둘의 대화에 젖어 있었다. 노란 빛깔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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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장미에게도 왜 욕심이 없을까. "나 말야, 비그치고 나서도 이 물방울 보석들 그대로 걸치고 있으면 안될까?" 나는 단호하게 말을 자른다. "안돼! 너는 이미 너무 큰 아름다움을 갖고 태어났어. 여기서 더 가지려는 건 욕심이야." 장미가 내 말을 순순히 들어주었을까. "칫, 저도 내가 예쁜 것만 밝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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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사실 비오는 날 생각나는 것은 기름냄새 풍기는 전에 막걸리 한 잔일 때가 많다. 그 심정을 알았을까. 장미가 꽃을 잔처럼 기울여 빗물을 술처럼 따른다. 막걸리는 아니었고 와인 분위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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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꽃잎 ⓒ 김동원


어느 장미였을까. 꽃잎 두 장을 뽑아 그 두 장의 마음에 사랑을 담고 그것을 잎에 걸쳐놓았다. 떨어진 잎을 잘 모아 보시라. 꽃이 남기고 간 마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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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장미는 종종 그냥 꽃이라기 보다 붉은 유혹이다. 마치 심장을 들고 우리들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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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장미는 날 보고 '사랑해'하며 하트를 그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평상시 그렇게 예쁜 모습이었던 장미가 오늘따라 왜 돼지코를 그려가지고 나와서 난리냐는 생각을 했다. 가끔 장미와의 교신은 엇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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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나는 잎이 삐죽삐죽 뻗은 장미에게 물었다. "혹시 소라를 삼킨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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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김동원


장미가 몽우리 잡힌 장미를 내밀고 있다. "난 내게 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 그저 장미밖에는." 오늘의 장미가 내일의 장미를 우리들에게 내민다. 나는 말했다. "무슨 소리야. 장미밖에 없다니. 너는 그것으로 충분해."

비오는 날은 사실 구질구질하다. 하지만 장미에겐 구질구질한 날이 없다. 비오는 날엔 장미를 만나보시라. 빗속에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장미 #비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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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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