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향교 장인어른이 전교를 지내신 곳이다
김수종
길을 한참 올라가니 향교가 보인다. 향교 앞에 주차장이 있고, 바로 앞에 두 채의 농가 주택이 있다. 너무 향교와 가깝게 있어 신경을 쓰이기는 했지만, 나름 향교는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향교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들어가려고 하니 방법이 없어 월장을 하게 된다. 문경향교는 조선 태조 1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역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전사청·내삼문·명륜당·동재·서재·외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뒤로 높아지는 지형에 대지를 3단으로 마련하고 앞쪽에는 교육 공간을, 뒤쪽에는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다. 정문격인 외삼문을 통과하여 교육 장소인 명륜당을 지나면 앞면 3칸·옆면 2칸의 대성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소박한데 전체적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간결한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대성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물로는 조선 숙종 어필병풍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예전, 문경향교의 교장격인 전교를 지내신 장인어른 덕에 한번 방문을 한 적이 있는데, 오랜 만에 다시 오니 무척 좋다. 잠시 쉬면서 명륜당, 대성전, 동재, 서재를 살펴보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이런 곳에서 며칠 쉬면서 나도 공부를 하고 싶어진다.
무척 더운 날씨라 난 천천히 걷는다. 그래도 걷는 좋을 좋아해 즐기면서 길을 걸으니 언제나처럼 행복하다. 또 기쁘다. 많이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서. 천천히 다시 읍내 방향으로 나오는데 우측에 작지만 아름다운 문경성당(聞慶聖堂)이 보인다.
이곳은 지난 1958년 가은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경기도와 충청도 신자들이 경상도로 이주할 때 관문역할을 하였던 문경은 신유박해(1801년)를 전후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을해박해(1815년)와 정해박해(1827년) 때에는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던 문경의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 때 30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였으며 103위의 성인 가운데 한 명인 여우목 출신의 이유일 요한도 이때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