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수영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이유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37] <광야>

등록 2013.06.20 09:07수정 2013.06.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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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였다
                  시대의 지혜
너무나 많은 나침반이여
밤이 산등성이를 넘어내리는 새벽이면
모기의 피처럼
시인이 쏟고 죽을 오욕의 역사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隆起)

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
공동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
                  피로와 피로의 발언
시인이 황홀하는 시간보다도 더 맥없는 시간이 어디 있느냐
도피하는 친구들
양심도 가지고 가라 휴식도―
우리들은 다같이 산등성이를 내려가는 사람들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


광야에 와서 어떻게 드러누울 줄을 알고 있는
나는 너무나도 악착스러운 몽상가
                  조잡한 천지여
깐디의 모방자여
여치의 나래 밑의 고단한 밤잠이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어떻게 뒤떨어지느냐가 무서운 것"이라는 죽음의 잠꼬대여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
(1957)

시인 이육사(1904~1944)는 그의 대표작 <광야>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이육사의 <광야> 중 일부)

탁 트인 광야는 목 놓아 소리치기에 좋습니다. 펑펑 울음을 쏟아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요. 광야의 막힘 없는 텅 빈 광경은, 역설적으로 가슴에 무언가가 가득 들어차게 만듭니다. 육사가 <광야>에서 미래의 '슈퍼맨'을 꿈꾸며 조국 독립의 의지를 결연하게 다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겠지요.

1920~30년대의 육사에게 '광야'는 태곳적부터의 역사가 꿈틀거리던 조국이었거나, 그가 총을 쥔 채 말을 달리던 만주 벌판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일제 식민 지배를 받던 엄혹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사의 <광야>에서는 멋진 포즈로 '백마'에 올라탄 채 광야를 바라보는 선구자의 멋진 모습과 함께, 피눈물을 흘리며 살던 우리 민족의 비장한 이미지가 어른거립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1957년의 수영에게 '광야'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요. 이 시에서 '광야'는 화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는 듯합니다. '시대'를 생각하고(1연 3행), '역사'를 떠올리는(1연 7행)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화자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1연 2행)하는 동시에, "공동의 운명을 들을 수 있"(2연 2행)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화자는 "죽음의 잠꼬대"(3연 7행)를 내뱉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 어떻게 뒤떨어지느냐가 무서운 것"(3연 6, 7행)


이것이 "죽음의 잠꼬대"로 빗대어진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화자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떤 다짐입니다.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시대와 역사를 향한 시인으로서의 선구자적인 사명감과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화자의 가슴은 말로 형언하지 못할 어떤 충만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각 연 끄트머리에서 되풀이되는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隆起)"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실상 이 구절에서 부풀어오르는(융기하는) 것은 화자의 '육체' 자체가 아니라 그 '육체' 속에 담긴 '정신'이 아닐런지요.

하지만 다만 '육체'여도 상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체'든 '정신'이든 지금 화자가, "도피하는 친구들"(2연 5행), 곧 그 자신이 "양심도 가지고 가라 / 휴식도"라고 일갈하는 그 비겁한 친구들을 향해 자신의 우뚝 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모습에서 육사가 <광야>에서 부르짖은 "백마 탄 초인"을 그리는 것은 저의 지나친 억측일까요.

195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은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것이 지리멸렬하기만 했습니다. 이승만은 1955년에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하여 장기 독재의 기반을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의 <서시>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이승만 독재 정권은 야당 지도자 조봉암을 제거하기 위해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야만의 시절이었습니다. "여치의 나래 밑의 고단한 밤잠"(3연 5행)과 같은 시구도 그런 시대 현실에 대한 상징적 묘사일 겁니다.

수영이 머릿속으로 그려 본 '광야'는, 그로부터 20여 년 전에 육사가 묘사한 그 '광야'와는 전혀 딴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모두 '초인'을 갈망했습니다. 육사가 그린 '초인'은 흰 말을 탄 신성한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심지어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이 세상을 압도하는 신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반면에 수영은 그 자신에게서 '초인'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을 뛰어넘는 신과도 같은 초인이 아니라, "산등성이를 내려가"(2연 7행)면서 "모기의 피처럼···쏟고 죽을 오욕"을 가슴 한가득 안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초인을 말입니다. 그러니 굳이 '초인'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육사가 그린 "백마 탄 초인"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초인'입니다. 아니, '초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기의 나래 밑"과 같은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지키지 못할 양심을, 그는 끝까지 지키고자 몸부림쳤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울부짖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초라하지만 의연하기 그지없는 '초인'이야말로 옹졸함 속에서도 늘 자신을 돌아보려고 했던 수영의 진정한 자아가 아니었을런지요. 비록 현실 속에서는 번번이 좌절하고 실패했을지라도 말입니다. <광야>에서 1950년대 중반을 지나던 수영의 몸부림과 울부짖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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