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찰의 강제진압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여성노동자들은 8월 10일 밤 10시 40분 긴급 결사총회를 열고 경찰이 진입하면 모두 투신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흥분한 여성들은 창틀에 매달려 투신하겠다고 울부짖기도 했다. 모두 8명이 실신해서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결의문을 낭독했던 노조 조직부 차장 김경숙은 금방 깨어나 농성장에 남았다. 현장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보고를 받은 김영삼은 급히 4층으로 올라와 "너희는 결코 두려워 말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희를 붙들리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이들을 달랬다. 김영삼은 여태껏 경찰이 야당 당사를 습격한 적은 없다면서 자신과 30여 명의 의원이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라며 흥분한 농성자들을 진정시켰다. 여성노동자들이 잠자리에 들자 김영삼은 당사 정문으로 내려가 "여공들이 흥분하니 모두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경찰들이 이에 응하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던 김영삼은 "너희들이 정말 저 여공들을 뛰어내리도록 할 참이냐"며 마포서 정보과장의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4월 12일 <한겨레> 이철승의 신민당사? 농성하러 가지도 않았으리 중)그리고 한홍구는 "'신민당은 유신체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신체제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체제라고 보는 견해는 크게 잘못'이라며 중도통합론을 강조해온 이철승이 신민당을 이끌고 있었더라면 와이에이치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신민당사로 농성장소를 옮기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YH사건 두 달 만에 김재규가 쏜 총에 생을 마감했다. 1971년 부정선거로 당선된지 8년 만이었다.
김영삼은 1983년 5월 목숨을 건 23일 간의 단식투쟁을 벌인다. 당시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6월 9일 <뉴욕타임즈>에 "김영삼씨의 단식과 그에 따른 충격은 미국 정부가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심각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는 글로 적극 지지했다. 그리고 재미 교포들과 "김영삼을 구하라"는 가두시위도 벌였다(<김대중자서전> 1권, 464쪽 참고).
이처럼 김영삼은 승부사였다. 고은 선생은 <만인보>에서 김영삼을 "직감 이상의 결단으로 와이에이치 노동자들 신민당 강당 농성을 허용"해줬다고 평한 적이 이다. 물론 김영삼은 1990년 3당 야합을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배반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독재자에 결정타를 날리는 승부를 읽는 눈은 탁월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2013년판 3·15 부정선거? 3·15 부정선거와 4월 혁명, 박정희와 김대중 대결 그리고 YH여성노동자와 승부사 김영삼을 생각한 이유는 2013년 6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상황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경남 지역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사건은 국정원과 경찰이라는 국가권력기관이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헌법과 민주주의 근간을 유린한 '2013년판 3·15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대학가와 시민단체 그리고 종교인들도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국정원 정치개입도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건인데, 국가기밀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대통령 재가도 받지 않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결정해 공개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대화록이 공개되자 그런 말은 한적도 없다. 더 큰 문제는 26일 나왔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선대대책위원회총괄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26일 "자신이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 발언했다"고 말했가 파문이 일자 정면 부인했다.
뿐만 아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26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지난해 대선을 앞둔 12월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주중대사가 지인들과 나눈 대화라며 녹취파일 내용을 공개했다.
"NLL 관련 얘기를 해야 하는데, NLL 대화록 있잖아요. 자료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거는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거는 컨틴전시 플랜이고, 도 아니면 모고, 할 때 아니면 못까지. 근데 지금 소스가 청와대 아니면 국정원이니까 대화록 작성하는데서 거기서 들여서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오마이뉴스> 박범계 "권영세 '우리가 집권하면 NLL 까고...'")만약 이 발언이 진짜 권영세 당시 상황실장이 한 말이라면, 김무성 의원은 부인했지만 당시 새누리당이 이미 대화록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나는 1960년 3·15 부정선거가 무더기 투표용지로 부정선거를 치렀다면 지난 대선은 '2013년판 부정선거'를 치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교묘하고, 더 치밀하고, 더 교활한 반민주주의를 저지른 셈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이젠 결단할 때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은 결단할 때가 됐다. 성명과 논평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국정원 부정선거를 비판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지난 대선때 새누리당이 범한 행위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유린했는지 알 수 있다.
민주주의가 유린 당할 때 우리보다 앞서간 이들은 행동했다.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했다. 김영삼처럼 23일 단식을 못해도 민주당 의원 127명이 릴레이 단식을 통해 국정원 개혁과 대화록 유출 의혹에 대해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해야 한다. 입으로만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촉구할 것이 아니라 단식을 통해 해임을 촉구하시라. 문재인 의원도 마찬가지다. 트위터를 통한 비판이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
결단할 때 결단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결단과 저항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배반하는 이들에게 대한민국 미래를 맞길 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물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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