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문재인과 민주당, 이제 결단할 때다

등록 2013.06.27 09:32수정 2013.06.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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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3월 15일자 동아일보. '일찌기 없던 공포분위기'와 '3인조 공개투표 감행?', '사복경찰이 공개투표지휘'하는 기사제목이 선명하다. 동아일보는 3.15선거를 부정선거로 정의한 것이다.
1960년 3월 15일자 동아일보. '일찌기 없던 공포분위기'와 '3인조 공개투표 감행?', '사복경찰이 공개투표지휘'하는 기사제목이 선명하다. 동아일보는 3.15선거를 부정선거로 정의한 것이다. 동아일보

'일찌기 없던 공포분위기'

지난 1960년 3월 15일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그리고 '3인조투표감행? 공명선거는 기대 곤란'이란 부제목을 달았다. 같은 면 다른 기사제목은 '사복경찰이 공개투표지휘'였다. 이날은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일었다. <동아일보>는 선거날 정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임을 보도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개표가 시작됐는 데 부통령 후보 이기붕 득표율이 거의 100%였다. 놀란 최인규·이강학 등은 경비전화를 통해 "이승만은 80%로, 이기붕은 70~75% 선으로 조정하라"고 지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하긴 이미 앞날부터 투표가 한 사람이 투표지 20장을 가진 자가 있었으니 득표율을 줄여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이를 '3·15 부정선거'라 부른다.

이미 예견된 3·15 부정선거

민주시민은 일어났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독재자 이승만을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부정선거 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행방불명된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 시신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 18일 고려대생들이 총궐기했다. 다음 날인 19일 고등학생들을 비롯한 시민들까지 합세했다. 우리는 이를 4·19혁명이라 부른다. 대학생과 교수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결의도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하겠지만 한 여중생이 어머니께 부친 마지막 편지는 현재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가 이 여학생의 숭고한 희생때문임을 알 것이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읍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4·19 혁명에 참여, 희생된 당시 한성여자중학교 진영숙 학생의 마지막 편지, 서중석 <한국현대사> 179쪽)

이기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승만은 하야했다. 독재자들은 결코 민주시민에게 민주주의를 공짜로 주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피의 역사'다.시간은 강산이 한 번 변하는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독재자 이승만을 끌어내렸는 데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독재자가 군림하고 있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박정희였다.


"선거는 이기고 투개표는 졌다"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4월 18일 서울장충단공원에는 100만 명이 모였다. 김대중 후보 연설을 듣기 위해서다. 김대중 "박정희씨가 승리하면 앞으로 선거도 없는 영구 집권의 총통 시대가 온다"고 역설했다. 100만이라는 숫자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신라 천 년 만에 나타난 박정희 후보를 다시 뽑아서 경상도 정권을 세우자"며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결과는 박정희 634만2828표, 김대중 539만5900표였다.


"대구 공무원들은 자유 투표를 하지 못하고, 사전에 박 대통령에 기표가된 투표용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 서전 투표용지를 넣고, 자기 투표용지는 여당 선거대책본부에 제출했다. 야당 지지자들에게는 이장과 반장이 아예 투표용지를 주지 않아 기권시켜 버렸다. 그 기권표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 나는 선거에서 이기고 투개표에서 졌다. 전문가들은 공정하게 선거를 치렀으면 내가 약 100만 표 정도는 앞섰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의 선거 부정 공작과 지역감정 조장에 졌다."(<김대중자서전> 1권, 250쪽)

김대중 예언대로 '총통 시대'가 도래했다. 박정희는 1년 후인 1972년 10월유신쿠데타를 일으켜 영구집권을 획책했다. 유신도 모자라 긴급조치를 9호까지 발표했다. 독재자 박정희가 발표한 긴급조치 중 1·2·4·9호가 위헌 판결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은 또 김대중을 납치했다. 제2인혁당 관련자들을 사법살인했다. 박정희 정권 말기는 '공포정치'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박정희도 무너졌다. 여기서 우리가 깊게 새겨할 것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은 의외에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학생들 시위와 민주인사들의 저항 그리고 야당 정치인들이 아니었다. 1979년 8월 9일 신민당사에 여성 노동자 187명이 들어왔다. 가발수출업체인 YH무역회사가 다니는 여성노동자였다. 이들은 회사폐업조치에 항의 농성을 하기 위해 신민당사에 들어온 것이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이들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같은 달 11일 오전 2시, 정사복 경찰 등 1200여 명이 신민당사에 들이닥쳐 곤봉·벽돌·쇠파이프 따위로 무자비한 진압을 했다. 여성 노동자만 아니라 신민당 의원·취재기자도 곤봉 세례를 받았다. 23분간 이어진 폭압진압에 스무한 살 먹은 한 여공이 떨어져 숨졌다. 그 이름은 김경숙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YH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 종말을 불러온다. 야당 당사에 공권력을 투입한 정권이 그 생명이 길리가 없다.

여성노동자와 승부사 김영삼, 박정희 독재정권 종말 앞당겨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당시 신민당 대표가 김영삼이었다는 점이다. 김영삼은 석 달 전인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 총재로 선출됐다. 그때 남긴 말이 "아무리 새벽을 알리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민주주의의 새벽은 오고 있다"였다. 당시 김대중은 연금상태였다. 그러므로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김영삼은 '승부사'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당시 김영삼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찰의 강제진압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여성노동자들은 8월 10일 밤 10시 40분 긴급 결사총회를 열고 경찰이 진입하면 모두 투신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흥분한 여성들은 창틀에 매달려 투신하겠다고 울부짖기도 했다. 모두 8명이 실신해서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결의문을 낭독했던 노조 조직부 차장 김경숙은 금방 깨어나 농성장에 남았다.

현장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보고를 받은 김영삼은 급히 4층으로 올라와 "너희는 결코 두려워 말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희를 붙들리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이들을 달랬다. 김영삼은 여태껏 경찰이 야당 당사를 습격한 적은 없다면서 자신과 30여 명의 의원이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라며 흥분한 농성자들을 진정시켰다. 여성노동자들이 잠자리에 들자 김영삼은 당사 정문으로 내려가 "여공들이 흥분하니 모두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경찰들이 이에 응하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던 김영삼은 "너희들이 정말 저 여공들을 뛰어내리도록 할 참이냐"며 마포서 정보과장의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4월 12일 <한겨레> 이철승의 신민당사? 농성하러 가지도 않았으리 중)

그리고 한홍구는 "'신민당은 유신체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신체제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체제라고 보는 견해는 크게 잘못'이라며 중도통합론을 강조해온 이철승이 신민당을 이끌고 있었더라면 와이에이치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신민당사로 농성장소를 옮기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YH사건 두 달 만에 김재규가 쏜 총에 생을 마감했다. 1971년 부정선거로 당선된지 8년 만이었다.

김영삼은 1983년 5월 목숨을 건 23일 간의 단식투쟁을 벌인다. 당시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6월 9일 <뉴욕타임즈>에 "김영삼씨의 단식과 그에 따른 충격은 미국 정부가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심각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는 글로 적극 지지했다. 그리고 재미 교포들과 "김영삼을 구하라"는 가두시위도 벌였다(<김대중자서전> 1권, 464쪽 참고).

이처럼 김영삼은 승부사였다. 고은 선생은 <만인보>에서 김영삼을 "직감 이상의 결단으로 와이에이치 노동자들 신민당 강당 농성을 허용"해줬다고 평한 적이 이다. 물론 김영삼은 1990년 3당 야합을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배반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독재자에 결정타를 날리는 승부를 읽는 눈은 탁월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2013년판 3·15 부정선거?

3·15 부정선거와 4월 혁명, 박정희와 김대중 대결 그리고 YH여성노동자와 승부사 김영삼을 생각한 이유는 2013년 6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상황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경남 지역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사건은 국정원과 경찰이라는 국가권력기관이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헌법과 민주주의 근간을 유린한 '2013년판 3·15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대학가와 시민단체 그리고 종교인들도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국정원 정치개입도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건인데, 국가기밀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대통령 재가도 받지 않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결정해 공개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대화록이 공개되자 그런 말은 한적도 없다. 더 큰 문제는 26일 나왔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선대대책위원회총괄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26일 "자신이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 발언했다"고 말했가 파문이 일자 정면 부인했다.

뿐만 아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26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지난해 대선을 앞둔 12월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주중대사가 지인들과 나눈 대화라며 녹취파일 내용을 공개했다.

"NLL 관련 얘기를 해야 하는데, NLL 대화록 있잖아요. 자료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거는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거는 컨틴전시 플랜이고, 도 아니면 모고, 할 때 아니면 못까지. 근데 지금 소스가 청와대 아니면 국정원이니까 대화록 작성하는데서 거기서 들여서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오마이뉴스> 박범계 "권영세 '우리가 집권하면 NLL 까고...'")

만약 이 발언이 진짜 권영세 당시 상황실장이 한 말이라면, 김무성 의원은 부인했지만 당시 새누리당이 이미 대화록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나는 1960년 3·15 부정선거가 무더기 투표용지로 부정선거를 치렀다면 지난 대선은 '2013년판 부정선거'를 치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교묘하고, 더 치밀하고, 더 교활한 반민주주의를 저지른 셈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이젠 결단할 때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은 결단할 때가 됐다. 성명과 논평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국정원 부정선거를 비판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지난 대선때 새누리당이 범한 행위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유린했는지 알 수 있다.

민주주의가 유린 당할 때 우리보다 앞서간 이들은 행동했다.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했다. 김영삼처럼 23일 단식을 못해도 민주당 의원 127명이 릴레이 단식을 통해 국정원 개혁과 대화록 유출 의혹에 대해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해야 한다. 입으로만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촉구할 것이 아니라 단식을 통해 해임을 촉구하시라. 문재인 의원도 마찬가지다. 트위터를 통한 비판이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

결단할 때 결단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결단과 저항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배반하는 이들에게 대한민국 미래를 맞길 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물려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3.15부정선거 #국정원부정선거 #김무성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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