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임시포로수용소의 여자 포로(1951. 1. 12.)
NARA
이날 오전에 본 사진은 RG(Record Group·문서군) 186·192·195 문서상자로 거의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사진이었다.
이곳 자료실에 소장된 한국전쟁 사진들은 대부분 흑백으로 현상한 지 50년이 넘어 빛깔이 바랬고, 동그랗게 오그라져 있었다. 이들 사진은 검색자들이 반드시 흰 장갑을 낀 뒤에야 만질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일일이 들추며 쓸 만한 사진을 골랐다.
오전에 살펴본 수천 장 사진 가운데 내가 골라 스캔한 것은 모두 22장이었다. 이 가운데는 미군이 총을 겨누자 인민군 셋이 손을 번쩍 들고 투항하는 장면(12. Aug. 1950.), 옥수수 밭 길옆 빈터에서 아홉 명의 인민군들이 일렬로 벌거벗긴 채 검색당하고 있는 장면(20. Sep. 1950.),
팬티만 입은 인민군이 서너 명씩 열을 지어 임시포로수용소로 끌려가는 장면(22. Sep. 1950.), 부산 임시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여자포로(12. Jan. 1951) 등이 있었다. 이런 사진에는 대부분 사진모서리에 'CONFIDENTIAL' 또는 'SECRET'라는 미국정부의 기밀문서 분류 등급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우리는 아카이브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정원을 산책한 다음 곧장 오후 작업에 들어갔다. 그날 오후에 스캔한 사진은 모두 21장이었다. 이 가운데는 부산 포로수용소 사진(18. Aug. 1950.)과 거제포로수용소 천막막사 사진(7. May. 1951.)도 볼 수 있었다.
거제포로수용소 사진 위에는 보도제한이라는 'RESTRICTED'라는 미국정부의 기밀문서 분류 등급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고동우 선배가 이곳 아키비스트에게 물어본 바, 미 정부의 기밀문서 등급은 Top Secret(1급), Secret(2급), Confidential(3급)으로 분류하는데, 이밖에도 대외비 정도의 'Restricted', 또는 기밀로 분류되지 않는 'Unclassified' 등으로도 분류한다고 했다.
이날 본 수천 장의 사진들은 날짜나 장소가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여러 상자의 사진을 종합해 보니까 한국전쟁 당시 포로들의 수용소생활 전모가 거의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들 사진은 포로의 투항에서 검문 검색·인솔·포로수용소 입소·증명사진 촬영·포로수용소 내무반·포로들이 'PW(Prisoner of War·포로)'라고 페인트로 쓴 옷을 입고 배식 받는 장면, 심지어 유엔군 포로감시병이 대형 분무기로 포로들의 온 몸에 디디티(DDT)를 뿌리는 장면 등이었다.
이날 작업량은 모두 43장으로 사진의 해상도도 1·2차 검색 때보다 훨씬 더 좋아 나는 사진파일을 노트북에 저장할 때마다 마치 월척을 낚은 낚시꾼처럼 짜릿한 기쁨을 맛봤다.
고동우 선배는 내 숙소를 이전 방미 때처럼 내셔널아카이브에서 가까운 곳에다 구해놨다.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 볼티모어 가(街) '데이즈인(Days Inn)'이라는 이 대학촌 모텔은 비교적 값이 싼 모텔로 바로 옆에 '이조'라는 한국식당이 있기에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퇴근길에 숙소까지 데려다 주고 당신 집으로 떠나려는 고동우를 붙잡았다. 우리는 밥집 '이조'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18개월 만에 다시 만난 회포를 풀었다.
'릿츠'와 '허쉬' 나는 그가 떠난 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음날을 위하여 곧장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몸은 몹시 피로했지만 시차 부적응으로 눈은 말똥말똥한 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서울과 메릴랜드 주는 14시간 시차 탓으로 밤낮이 정반대였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그날 입력한 사진 설명글을 가다듬었다. 그 일을 다 마무리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메일함에 도착한 사연들을 읽고 답장을 한 뒤 이런저런 뉴스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국내뉴스는 해외에 나가면 시들했다. 여야 정객들이 여태껏 서로 친일파 후손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데 제3자가 보면 둘 다 친일파 자손끼리 서로 상대를 손가락질을 했고, 29만 원밖에 없다는 전직 한 대통령은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며 똘마니들을 데리고 전국 골프장을 누비며 잘 살고 있다는 보도들이었다.
나는 그런 뉴스에 식상하여 노트북을 끈 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내 눈은 여전히 말똥말똥한 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술기운을 빌려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