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살던 옛집을 그대로 개조해 만든 식당 '소격동 37번지'
소격동 37번지
작년까지만 해도 이서영(43) 사장의 방이었던 2층은 이제 세련미가 돋보이는 멋진 식당이 되었다. 음식에 대한 소문만 듣고 찾아갔는데, 공간의 아름다움에 한 번 더 놀랐다. 화분 몇 개와 벽에 걸린 그림이 장식의 전부인 절제된 공간. 그 아래 단정하게 놓인 정사각형 식탁들. 방마다 그곳에 꼭 어울릴 만한 그림들이 걸려있어, 마치 어느 화랑에 미술 감상을 하러 온 기분이 들었다.
"혼자 오셨을 때는 여기가 제일 좋다"며 이 사장이 안내해준 자리. 까만 격자창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과 한옥 마을 풍경이 꼭 한 폭의 그림이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방방마다 활짝 열린 창으로 산들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된 그림은 아는 화가에게서 대여 받은 것과 이 사장이 직접 그린 작품이 섞여 있다. 그녀는 영국 UAL(University of Arts, London 런던예술대학교) 출신의 화가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식당 인테리어를 화랑처럼 꾸민 까닭을 이해했다. 필자를 일반 손님으로 알았던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가 하면, 앉은 자리가 괜찮은지, 반찬은 넉넉한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다.
음식이 나왔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시래기 비빔밥과 만두 지짐이. 서너 가지 밑반찬이 담긴 하얀 사기 접시들이 아름답고 정갈하다. 시래기와 표고버섯을 잘게 썰어 넣고 달걀지단을 올린 소박한 간장 비빔밥을 김에 싸서 김치와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매콤 달콤한 황태포 무침은 결이 촉촉했고, 윤기가 흐르는 무말랭이 무침은 생것처럼 아삭했다.
모두 이 사장의 어머니가 아래층 부엌에서 직접 만드신 것이다. 부드러운 두부살과 어우러진 명태 만두의 맛은 단연 최고. 어머니가 느끼한 것을 싫어하셔서 명태 만두라는 독특한 레시피가 탄생했다고 한다. 직접 빚은 쫀득한 피와 함께 씹히는 명태살은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었다. 음식은 하나같이 짜지 않고 맵지 않다. 대신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이 풍부하게 살아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