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다는데 구질구질한 이유같은 걸 주렁주렁 달고 떠날 필요는 없다. '응당 그래야 했기에 떠났어요'라는 대답을 누군가에게 물을 것도 아니고 들려 줄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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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미국의 작은 도시 파고에서 만난 더스틴은 나와 달랐다. 영화학과 학생이었던 더스틴은 고등학교 때 영화 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에 대해 장황히 늘어놓았다. 나도 고등학교 때 그런 결심을 했었는데. 이 친구는 여기까지 끌고 왔구나…. 시샘이났다.
"만약에 말야, 영화 감독이 안 되면 뭐가 되고 싶어?""아무것도." 나 같이 잔머리 굴리는 놈이 아니었다.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뒤로 내 머릿속에 가득 찬 것들은 만약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이었는데. 결국 그 무게가 더 커져버렸고 생각도 쉽게 접게 되어버린 건데.
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하던 더스틴은 아직 내가 파고에 머물러 있을 때 LA로 이사를 갔다. 마침 엄마가 거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영화계에 아는 사람이야 아무도 없지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48시간 동안 그레이 하운드 버스를 타고 LA에 있는 더스틴을 보러갔다. 6개월 후, 더스틴은 영화 감독도 좋지만 삶의 경험이 더 중요한 것이라며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4년 후 나와 결혼했다.
문득, 걱정만 하는 내 자신이 지긋지긋해졌다어렸을 때, 인생은 간단명료했다. 무거운 돌을 하나씩 쌓아 내가 바라는 그곳까지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하나, 대학교 하나, 취업 하나. 하지만 28살이 되어버린 나는 무겁지 않았다. 계단 어느 곳에도 올라와 있지 않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더스틴은 여행을 가자고 했다.
"여행? 나도 가고 싶어." "그럼 가자.""회사 계약은 끝내고 가야하지 않을까? 마무리 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있고…."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언제나 그랬듯 습관처럼 그 뒷감당에 대한 걱정거리가 내 머릿속을 간질였다. 그렇게 싫어하던 회사에도 갑자기 애착이 갔다. 나이가 들고 마음이 약해진 엄마도 걱정이었다. 여행을 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내 자신이 지긋지긋해졌다. 여행을 간다고 뭐가 달라져야 하는 건 아니다. 달콤한 열매와 결실을 따기 위해 여행을 가는 건 아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면 그만이다. 잡소리와 변명은 이제 그만!
떠나고 싶다는데 구질구질한 이유같은 걸 주렁주렁 달고 떠날 필요는 없다. '응당 그래야 했기에 떠났어요'라는 대답을 누군가에게 물을 것도 아니고 들려줄 필요도 없다. 나는 더 이상 뮤지션이 되기 위해 음대를 준비하는 짓 같은 건 하기 싫었다.
뮤지션이 되고 싶으면 음악을 시작하면 된다. 무엇을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떠나기로 했다. 이렇게 결심을 하자 떠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볍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두 존재. 축적하고 이뤄놓은 게 없는 우리를 붙잡는 짐은 없었다. 언젠가는 떠나고 싶었던 이 여행 때문에 가볍게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 가진 게 많아 무거우면, 버리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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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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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병' 달고 살던 나, 이번엔 쿨하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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