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눈을 뜬 일상 언어

[시처럼 리뷰처럼] ① 함민복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등록 2013.07.07 19:33수정 2013.07.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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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표지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표지창비
시에 대한 열등감 고백

시를 읽고 리뷰를 시처럼 쓰고 싶었다. 오랜 독서 여정 끝에 시를 읽고 싶은 욕구가 유독 강한 시기를 만났다. 대학 시절 한 선배가 "너는 운문 스타일이 아니라 산문 스타일인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뜻을 알아챘다. '산문 정신'이라는 말처럼 산문은 현실에 대해서 필요한 말은 반드시 한다는 정신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드는 자유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수영 시인이, 외국에서는 조지 오웰이 산문 정신을 대표한다. 이에 대비한 '운문 정신'이라는 게 있다면 '자유에 대한 자유'가 아닐까? 객관성, 자유 정신이라는 틀조차도 파괴하고 문법체계도 넘어서는 자유정신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사물을 틀 없이 바라보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나는 시에서 멀어졌다. 시를 쓸 생각도, 시를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를 '파괴의 학교' 삼아 듣고 배우지 않으면 내 주변에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내가 쓰는 언어들이 현실에 우뚝 서 있을 수 있을까?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시선 357)을 보면서 내가 시에 접근하지 못했던 또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명함의 명함은 존재의 어려움'(명함)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 같은 추상어와 관념의 언어를 시어에 포함시키지 않는 고정관념을 들켜 버렸다. 마음속에 시에 어울리는 단어를 솎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 동양의 오래된 시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조상들이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 취지는 지도자 된 자가 몸소 행하고 성찰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그 나머지를 학교 과목으로 여기며, 대중들이 저잣거리에서 쓰는 용어를 벗어나지 않는 것에 있다."(<대학> 서문)

한마디로 시에 쓰지 않을 말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그 모습과 현상에 대한 집중력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시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함민복의 시는 '참여시'인가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참여시 논쟁'이라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논쟁은 시인 김수영이 '사상계'에 발표한 '난해의 장막'이라는 제목의 1964년 시 연평에서 '시인의 양심을 저버린 채 기술만을 구사하는 시를 주지적이고 현대적인 시라고 하는 것은 사기'라 질타하면서 촉발됐지만, 박노해·백무산·김남주 등의 시인들이 작품의 세계를 '직접적인 현실'로 설정하면서 대학생이던 나는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에 순수시에 많이 길들여졌다. 그렇게 잠자던 '참여시'의 영혼이 함민복 시인을 통해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물이 법(法)이었는데
법이 물이라 하네


물을 보고 삶을 배워왔거늘
티끌 중생이 물을 가르치려 하네


흐르는 물의 힘을 빌리는 것과
물을 가둬 실용화하는 것은 사뭇 다르네


무용(無用)의 용(用)을 모르고
괴물강산 만든다 하니


물소리가 어찌 들을 건가
새봄의 피 흐려지겠네(<대운하 망상> 전문)


나는 최근의 한국문학이 격변기이면서 침체기이면서 동시에 전성기라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주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흐름이 보이는데, 함민복 시인의 '참여시'가 한 줄기,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과 <의자놀이>를 쓴 공지영의 '참여'가 한 줄기, 이도 저도 되지 않는 흐름이 또 한 줄기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2008년 촛불이 터졌을 때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시대정신을 이끌고 존경을 받는 작가보다는 '글 쓰는 샐러리맨'이라는 실망감이 커졌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함민복이라는 시인과 한국 작가들이 어떤 문학으로 현실과 대결하고 있는지 깊고 넓게 보지 않은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가지게 된 오해일 수도 있다. 함민복 시인을 만나서 특히 반가운 까닭은 '시와 현실을 둘 다 잃지 않은 시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함민복 지음,
창비, 2013


#함민복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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