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고문과 자발적 죄의식 고취의 실험 현장

연극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등록 2013.07.10 13:16수정 2013.07.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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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페스티벌 개막작 <모의법정> 공연사진 ⓒ 혜화동1번지 5기동인


'아름다운 민주사회'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하는 다섯 편의 연극이 대학로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중이다. 올해로 활동 20년을 맞는 연출가그룹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은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하는 연극 페스티벌 개최를 통해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예술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러한 예술표현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 페스티벌의 네 번째 참여작인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제작 그린피그)는 이러한 의도의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박정근'이라는 2013년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상징적 사례를 활용한다. 결국 '모두가 박정근이 되는 상황'은 다양한 매체적 실험과 리트윗 형식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옥인 콜렉티브의 <서울 데카당스(Seoul Decadence)>(토탈미술관, 2013) 영상을 활용한 배우들의 리트윗 연기와, 타인을 외면하는 방식으로써 제작한 갱생핸드북의 연극적 활용이 주목된다.


침묵하는 무리들 속에서 시도하는 '박정근 되기'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차단하고,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거나, 찬양·고무·선전·선동하는 행위 등을 처벌해왔다. 이 과정에서 예술 창작자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발언은 자칫 종북 및 이적행위로 취급되어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금기시 해왔다. 연출을 맡은 윤한솔은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한 이번 공연은 역사를 요약하는 수준이 아니라, 역사와 견고한 관계맺음의 시도"이며, 이 관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 "사건을 은밀할 정도로 미시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공연 현장에 참여하는 모두의 사진을 활용해 사진이 갖는 정체성를 부각하여 '본다'는 것의 폭력적인 의미를 상기하고, 1511회의 실제 갱생 실험에 대한 관객 보고를 통해, 결국 모두를 박정근으로 만드는 '침묵하는 우리들의 문제'를 짚어보고 있다.

스스로의 고문을 통해 드러나는 '반성의 폭력성'

혹자는 지금은 더 이상 타인의 고문이 필요 없어진 시대라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누구든지 박정근을 두둔하거나 국가보안법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가 된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등의 행동을 더 이상 아무도 하지 않는다.


윤한솔 연출은 "이근안 같은 고문관이 하는 일은 고문을 통해 죄를 인정하게 하려는 조작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고문관이 필요 없다. 스스로 고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울 데카당스>에서 보여지는 자발적 고문과 자발적 죄의식의 고취는 비극이다"라며, 이어서 "리트윗으로 개인의 사상을 밝혀 낼 수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이 작품에 출연 중인 이정호 배우는 "사람을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대사가 있다. 박정근이 이 과정을 통해 변화하는지, 그런 척하는지, 둘 다 아닌지에 집중해서 보면, 비겁해지지 않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 대사를 통해 공감할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황미영 배우는 "이번 공연을 통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줄거리의 논리를 떠나, 무서워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잘난 체하는 행동이 되었다는 부분에 공감했다. 어쩌면 세련되어짐에 따라 덜 무자비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무자비해지는 게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공연 방식에서의 혁신과 양심을 추구하는 그린피그

예술작품이 동시대와 함께하기 위해서,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한 가지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 바로 표현의 자유이다. 김수영의 말을 빌면, '완벽한 창작자유'이다. 그린피그는 이 완벽한 창작자유를 위해 시대와 싸운다는 기치를 내걸고 활동해왔다.

외부에서는 내용의 전개보다 공연방식에서의 혁신을 추구하는 공연단체로 인식되어 왔다. 평단의 평가도 나뉘는데, '포스트모던키드', '강력한 풍자', '보편적 기억의 자극' 등 대중성과, '형식적 도발', '예술적 시어', '관객 소외'라는 예술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두 부문으로 평가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사건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형식적인 '거리두기'를 실험한다. 이 거리두기를 통해, 정의를 외치고 평가와 지식을 요구하는 양심의 상실과 이에 침묵하는 우리들의 비겁함이 어떤 시선으로 구현될지 관객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한동안 무대에서 잊혀졌던 두 주먹을 움켜쥔 결의에 찬 연설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하는 연극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는 7월 11일부터 7월 21일까지,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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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페스티벌 포스터 ⓒ 혜화동1번지 5기동인


#국가보안법 #연극 #혜화동1번지 5기동인 #그린피그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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