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12일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홍익표 민주당 대변인의 귀태(鬼胎)발언에 대해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과할 것을 공식 요구하고 있다. 이 홍보수석은 "홍 대변인의 발언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사실 '귀태' 발언에 대한 새누리당의 첫 반응은 단호했지만 차분한 편이었다.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지난 11일 오전 10시 20분 현안 브리핑을 통해 정상회담 회의록에 대한 국정원의 자의적 해석을 비판하며 '귀태'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식 반응은 그로부터 5시간 가까이 지난 뒤에 나왔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여야가 정치적 공방을 하더라도 금도가 있다"면서 "민주당과 홍 의원이 스스로 '귀태'를 자처하지 않는다면 당장 국민과 대통령께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양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홍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 이후 만나 7월 국회 관련 논의를 했다. 새누리당 최경환·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당시 회동에서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위원직 제척 문제와 7월 국회 개회 문제에 대해선 합의하지 못했지만, 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위원 선정과 감사원의 4대강사업 감사결과 보고를 위한 상임위 가동을 합의했다. 즉, 새누리당은 국회 일정을 모두 보이콧할 만한 민주당 측의 발언이 나온 직후인데도 민주당을 만나 7월 국회 일정을 협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처럼 '귀태' 발언에 대한 당의 대응 강도가 현저히 높아진 까닭에 대해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부실 사과'를 꼽고 있다.
그는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강하게 항의하면서 '이런 언사를 해서는 어떻게 같이 정치를 할 수 있는냐, 금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내용 아니냐'고 했고 전 원내대표는 홍 원내대변인에게 사과를 권유했다"면서 "그런데 홍 원내대변인은 '인격적 모욕감을 느꼈다면 유감이다'이라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내용의, 정식 논평도 아니라 밤 늦게 문자로 (입장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결자해지'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이 기대에 못 미치는 답변을 내놨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입장 변화에는 청와대의 강한 반발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오후 6시께 "금도가 없는 민주당 의원의 막말에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며 "이는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밝혔다. '귀태' 발언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식 반응이 나온지 2시간 가까이 지나서였다.
홍 원내대변인은 청와대의 입장 발표 1시간 뒤인 오후 7시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발언에 유감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 8시 25분께 기자회견을 열어 '귀태' 발언을 강도 높게 성토했다. 새누리당은 그로부터 30분 뒤인 이날 오전 9시 6분께 회의록 '예비열람' 일정 취소 사실을 알렸다.
노무현 '막말' 쏟아낸 '환생경제' 기억 잃고 초강경 태세?민주당 등 야당 측은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실언'을 인정하더라도 합의했던 국회 일정 모두를 '정지' 시킨 것은 과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쏟아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때의 일을 거론하며 "자신들이 야당일 땐 더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세균 민주당 상임고문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자기 당 출신 대통령이 귀하면 남의 당 출신 대통령도 귀한 법"이라며 "얼마 전 '환생경제'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새누리당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네티즌들은 지금부터 주변에 퍼뜨리라"고 말했다. 또 "홍 의원의 발언이 적절치 않다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새누리당이 자유민주주에 대한 도전 운운하며 국정파행의 빌미로 삼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큰 웃음거리"라고 꼬집었다.
정 고문이 거론한 '환생경제'는 지난 2004년 한나라당 의원 24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해 '육XX놈', 'X잡놈', 'X알 달 자격도 없는 놈' 등 막말을 쏟아낸 연극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이 연극을 관람한 뒤 "프로를 방불케하는 연기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그 놈은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한나라 의원연극, 노 대통령 욕설 파문)
유은혜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감정적으로 따지면 참여정부 시절에는 굉장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우리가 많이 들었고 그걸로 공방을 벌이고 했지만 그 때문에 모든 일정을 중단하지 않았다"며 "새누리당이 과거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다.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노무현 정부 당시 거의 대통령의 면전에서까지 막말을 퍼붓고 (특히 당시 한나라당의 전아무개 전 의원), 사후에까지 고인을 모독하는 언사를 서슴치 않았던 새누리당에 비한다면 큰 일도 아니다"며 "괜한 빌미를 줬다는 점에서 이번 민주당 대변인 논평은 과유불급인 측면이 있지만 이렇게 유난떨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그럴 여력 있으면 새누리당은 차라리 세간의 민심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쥐나 닭 취급 받는데 더 신경쓰시라"고 주문했다.
피해자-가해자 구도 뒤바꾸고 정통성 논란 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