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지율 70%, 이렇게 가능했다

[게릴라칼럼]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사건'으로 보면 안 돼

등록 2013.07.19 09:17수정 2013.08.0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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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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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촛불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 전역의 거리에 수만 개의 촛불이 켜지고 있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들었습니다. 촛불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분노한 시민들이 높이 치켜 든 항의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이 촛불은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촛불은 언제 밝아올지 알 수 없을만큼 어두운 한국사회를 밝히는 등불인 것이지요. 어둡지만 불빛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원 사건은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댓글사건'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다면 '국민의 선택'일 것입니다. 선거는 국민의 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실천할 대변자를 뽑는 과정인데, 국가기관이 이 선택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이지요. 이것은 '댓글사건'이 아니라, 국정원이 인터넷에서 벌인 '대선 여론조작사건'입니다.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두려워하나

"민주주의는 선거날 하루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갑자기 시장에서 오뎅을 베어물기 시작하고, 무쇠처럼 굳었던 목과 허리가 자꾸 땅으로 굽는 것만 봐도 선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임기 동안 국민 생각을 손끝 만큼이라도 하게 만드는 게 바로 선거라는 심판이고, 선거라는 선택이니까요.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사건에 침묵할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선거날 하루조차 작동하지 않게 될 것이고, 따라서 정치인들은 임기 내내 국민들을 손끝 만큼도 두려워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국정원이 벌인 일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한 범죄입니다. 이를 막아야 할 국가기관이 도리어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하는 데 앞장선 기막힌 사건이지요. 그것도 국민들이 낸 세금을 써 가면서 말입니다.

청와대는 국정원 사건을 계속 외면하고 있다가, 민주당 의원이 '귀태' 이야기를 꺼내자 "자유민주주의에 정면도전한 것"이라며 발끈했습니다. 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이미 태어나 숨진 대통령을 향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암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

민주당의 '막말' 논란으로 국정원 사건이 덮이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들도 있지만, 괘념치 마십시오. 선거권은 야당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권리를 특정 정당이 지켜줄 거라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제 역할 못하는 한심한 야당 의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야당 의원의 실언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는 청와대 발언은 신중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을 모욕하는 게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는 까닭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을 직접 모욕하고 국민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 행위는 무엇에 해당할까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후면, 양측면 동시 도전'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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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12일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홍익표 민주당 대변인의 귀태(鬼胎)발언에 대해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과할 것을 공식 요구하고 있다. 이 홍보수석은 "홍 대변인의 발언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그가 '법치주의'를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박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정원 덕본 것 없다'며 사태를 넘기려 하지만, 법치주의는 불법행위를 '덕을 봤는가'여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범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덕본 사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덕본 사람이 없다'고 강도를 그냥 풀어주지도 않고,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시험 부정행위를 눈감아 주지도 않습니다. 범죄는 그냥 범죄일 뿐이고,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은 아주 심각한 범죄행위입니다. 

선거가 싫은 국정원, 촛불이 싫은 공영방송

신기하게도, 미국에서도 보이는 촛불이 한국 텔레비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도 시민들이 내는 수신료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두 공영방송에서 말이지요. 국민을 주인으로 모셔야 할 공영방송마저 '어둠의 세력'에 포섭된 까닭이겠지요. 이러면서 수신료를 더 내라고 말하고 있으니, 참 뻔뻔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국정원 사건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은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집권한 후 주도면밀히 진행한 거대한 여론조작 시도의 일부라는 점입니다. 이들이 권력을 잡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2008년 공영방송 사장을 불법해임하고 자기들 입맛에 맛는 사람을 심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개각 후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임명하고, 방송법을 개정해 보수언론이 방송에 진출할 문을 열어줍니다. 집권 초부터 차기선거를 위한 '여론전'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지요.

민주주의는 '숙의민주주의'라고도 불립니다.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공적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간다는 것이지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객관적인 정보입니다. 이런 정보를 시민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언론이 정치세력과 각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언론이 정부와 한통속이 되고 나면, 사회문제를 드러내기보다 감추기 급급해지고, 정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 미화하기 바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선전매체로 전락한 공영방송과 보수언론을 등에 업고 부자감세, 공기업 민영화, 4대강 사업 등 일사천리로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국내 토목사업은 물론, 이라크 크루드 유전개발처럼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 사업조차 '치적'으로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언론은 현 정권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보면, 어떤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냉정히 분석하기보다, 어떤 옷을 입었네, 외국어 발음이 어땠네, 박수가 몇 번 터졌네 하는 이야기로 지면과 방송을 채웁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여론이 제대로 형성될 수 없습니다. 남북관계가 파탄나고, 가계부채는 1000조에 이르고, 새 정부에서 청년 고용률은 40%를 밑돌아 이명박 정부보다도 낮은 수준인데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70%에 이릅니다. '여론 주무르기'는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나서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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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시국선언 "박근혜 대통령 책임져" 중·고등학생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앞에서 '제헌절에 헌법정신 위배한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만일 야당 후보가 당선되고, 배후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선거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새누리당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마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을 겁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 지지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야당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고, 노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에 판단에 맡겨지게 됩니다. 이때 국민들이 촛불을 켜고 거리로, 광장으로, 헌법재판소 앞으로 달려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지금 그때와 같은, 아니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과 여론조작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국민이 뽑을 모든 대통령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국민들 편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를 했고, 여론조작 혐의가 드러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오히려 국정원 직원과 새누리당이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 등을 '불법감금' 혐의로 고소, 고발했고, 검찰은 민주당 전 조직국장을 체포했습니다. 지난 정부도 그랬지만, 이번 정부로부터도 얻을 것은 고혈압과 비뚤어진 유머감각밖에 없을 듯합니다.

국민이 침묵하면 결코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밤은 짧아지고, 새벽은 더 빨리 찾아올 것입니다. 저도 멀리서 응원의 촛불을 켜 듭니다.
#국정원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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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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