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딸린 집 임대료가 '월 13만 원'

[해외리포트] 베를린 '작은 정원'의 가능성... 정원1/3이상 밭작물 재배해야

등록 2013.07.24 16:45수정 2013.07.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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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교회친구들이자 신혼 1년차인 엘마(Elmar)와 안네(Anne)가 바비큐파티를 열었다.초대장을 살펴보니 장소는 이들이 새로 장만한 베를린 주변의 '작은 정원(Kleingarten)'.  에스반(S-Bahn, 서울지하철 국철구간과 유사)을 타고 가면서 아기자기한 정원을 계속 봤지만 처음 작은 정원을 접했을 때 빈민들이 거주하는 곳인줄 알았다.

집이 상당히 작은 형태라 '베를린시에서 빈민들을 위해 마련한 집이구나'라고 지레짐작 했었다. 게다가 난방시설은 잘 구비되어 있는지, 겨울에 저런 작은 집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궁금증만 잔뜩 안고 있다가 엘마와 안네의 집 방문을 통해 독일 '작은 정원'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가졌다. 이번 바비큐파티는 독일친구들 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인도, 남미 친구들도 있었기에 음식이 매우 다양했다. 물론 한국식 바비큐문화와 '쌈'문화를 자세히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달 임대비용 90유로의 조건

 엘마와 안나의 작은 정원. 이들의 뜰은 잔디밭과 꽃을 심은 구역으로 나눈다. 잔디밭 중앙에는 체리나무가 있고, 잔디밭 주변으로 작물들을 심었다.

엘마와 안나의 작은 정원. 이들의 뜰은 잔디밭과 꽃을 심은 구역으로 나눈다. 잔디밭 중앙에는 체리나무가 있고, 잔디밭 주변으로 작물들을 심었다. ⓒ 최서우


안네에게 작은 정원에 대해 궁금했던 내용도 확인했다. 한 달에 얼마정도 월세를 내냐고 물어보니 90유로(13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저렴해서 독일에서 직장을 잡게 되면 한 번 임차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안네 정원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정원이 있는데, 이 공동체 정원에서는 일반 농기구뿐만 아니라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농기구까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해준 이야기는 더 인상적이었다.

"월세가 싼 대신, 내가 지켜야 할 것도 있어. 이 정원의 1/3 이상을 원예작물 및 밭작물 재배로 활용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권리를 잃게 되거든. 사실 베를린의 '작은 정원'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식량공급의 기능도 했었어.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의 폭격으로 베를린의 상황은 참담했었지. 식량도 부족했는데, '작은 정원'들이 이를 해결해주는 기능을 했었어."

참고로 1949년 소련은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해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도로 및 수로들을 봉쇄하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연합국들은 자신들의 공군을 활용하여 서베를린 주민들에게 식량공수작전을 시작하게 된다. 이는 주민들의 식량문제를 덜어주는 역할을 했고, 후에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창설로 연결된다. 이것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도시정원들이 전후 베를린의 식량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수소문 끝에 '작은 정원'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메이어-렌시하우젠(Elizabeth Meyer-Renschhausen) 박사와 7월 초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작은 정원'은 모두를 위한 것"

 엘리자베스 메이어-렌시하우젠 박사

엘리자베스 메이어-렌시하우젠 박사 ⓒ 최서우


- 왜 '정원집(Gartenhaus)'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필자의 용어사용의 혼동을 지적하며) '정원집(Gartenhaus)'과 '작은 정원(Kleingarten)'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정원집'은 주로 영미의 시민농장(Allotment)에서 유래하는데, 시민농장의 경우에는 식물들만 재배되고, 독일처럼 작은 집이 딸려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작은 정원'은 다른 말로 '슈레버정원(Schrebergarten: 작은 정원의 조직화를 실천했던 라이프치히의사인 모리츠 슈레버에서 유래함)', '다체(Datsche, 동독에서 사용했던 러시아식 용어)' 등으로 불려요.


작은 집이 딸린 정원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와 같은 중부 및 동유럽의 특수한 모습입니다. 보통 중부유럽의 '작은 정원'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실제 거주지에서 떨어져서 작물을 지배했기에 작물재배지에 조그마한 집을 지어서 운영했지요. 이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1932년 영화 <시원한 뱃살(Kuhle Wampe)>에서는 노동자들의 휴식처로서의 '작은 정원'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현재 실업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베를린의 경우는 60%가 실업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공식통계상으로는 20%로 언급하지요. 나머지 40%는 누구냐? 빈곤계층, 자유예술가, 관광객을 위한 릭샤 기사 및 자전거 기사로 이루어집니다. 10%의 경우 터키 여성인데 이들은 집안일을 강요받지요. 또한 자신의 능력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일을 하는 노동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청소부로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록 삶이 고단하긴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작은 정원'은 중요한 기능을 하지요. 이유는 일자리를 찾기 힘들 때 대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도시에서 '작은 정원'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 이유는 도시가 신자유주의 시스템으로 인해 지속적인 실업자를 양산하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경우에는 '흑인 시민운동' 및 '이민자 시민운동'을 통해 정원들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고요. 독일의 경우는 노령이민자, 여성 특히 이민자 여성, 청년들 특히 아이를 돌봐야 하는 청년들이 정원을 원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컴퓨터에만 앉아만 있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정원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또한 탄야 부세(Tanja Busse)라는 기자는 몬산토와 같은 소수 기업들로 장악된 '식량독재자'에 대항하기 위해, '작은 정원'을 상징적인 해결방안으로 언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저는 '작은 정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에서 '작은 정원'은 어떤 기여를 했습니까?
"전쟁 이후에도 베를린의 4%는 '작은 정원'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현재에도 약 7만 6천호의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1500개의 정원공동체를 통해 운영되지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식량안보였습니다. '작은 정원'들을 통해, 굶주린 사람들에게 야채 등을 공급해주기도 했지요. 또한 시민들이 스스로 야채재배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어떻게 정원을 운영하시나요?
"여러 정원공동체를 조직했습니다. 우선 글라이스드라이에크 지역에는 로센두프트(Rosenduft: 장미의 향기)라는 국제공동체정원이 있습니다. 니더작센 지역의 올덴부르크지역에도 설립했습니다. 베를린 옛 템펠호프 공항 근처에는 알멘데-콘토어(Allmende-Kontor: 공동체의 집을 의미) 국제공동체가 있습니다. 저는 베를린 미테의 '가족 정원 내의 국제정원도시'이라는 국제공동체에서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과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주로 터키이민자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 외국의 유학생이 정원을 운영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혹시 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습니까?
"'작은 정원'에 대한 서적은 상당히 많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베를린의 <가르텐프로인데(Gartenfreunde: 정원친구)>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도서관이 슈판다우어담에 있지요. 아 학교 도서관 제 서가에 정원관련서적들이 많은데요, 그걸 참조하시면 어떨까요? 또한 마리아-루이제 크로이터(Marie-Luise Kreuter)기자 및 안드레아 하이스팅어(Andrea Heistinger)가 기록한 유기농정원에 대한 입문서도 있어요.

초보자들이 주로 심는 작물은 애호박, 늙은 호박, 감자, 토마토, 샐러드 작물입니다. 또한 국가 및 문화에 따라 작물이 다른 분포를 보이기도 하지요. 터키인과 이라크인들은 심는 것은 시금치, 흑배추, 아프리카인이나 보스니아 사람들은 오크라(Okra)와 같은 특수 작물도 심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작물도 있는데요. 주로 빨리 성장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대표적으로 무, 콩 등인데 2개월 정도가 걸립니다. 다른 작물의 경우 3개월이 소요되지요."

- 그렇다면 저는 배추 및 깻잎을 심어도 되겠군요.  
"글라이스드라이에크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정원도 있습니다. 이들은 깻잎 및 한국의 작물을 재배하지요. 매주 토요일 2시에 개방하는데 한 번 가보시는게 어떻겠어요? 다른 작물이라면, '갓'인가요? 이것도 재배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 정원의 1/3 이상을 작물로 재배해야 한다는 법 조항은 언제 생겨났습니까?
"이는 1918년 11월 혁명 전후로 이루어진 제안입니다. 독일은 전쟁 패전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했지요. 황제의 망명이후 바이마르 정부는 일반 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작은 정원'들을 임대하게 됩니다. 식량안보적 차원에서 저렴하게 임대하는 대신 작은 정원의 일부에서 의무적으로 작물을 재배하게 한 것이 바로 이 법안의 기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990년대에 토지개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후에는 사회적 의미의 '작은 정원'조항이 강화되지요. 또한 정원 내에는 체리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는 나무는 심을 수 있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도시 가로수 및 침엽수를 심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주말 농장에 거는 기대

 '작은 정원'의 잔디밭 모습.

'작은 정원'의 잔디밭 모습. ⓒ 최서우


한국에서 독일의 '작은 정원'과 비슷한 형태가 바로 주말농장이다. 실제 서울, 부산, 경기도 등 대도시에서 주말농장 프로그램을 기획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주말농장이나 도시농업을 통해 먹거리 자급자족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도시의 경우 베를린처럼 도시 내에 정원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폐선로 및 전철 주변지역 혹은 도시 내 유휴지를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 물론 주말농장 지역에 대한 투기금지 및 방지법안, 주말농장을 활성화시키는 법률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실제로 한국의 도시 텃밭의 면적은 2011년 485ha에서 2012년에는 558ha로 늘었고, 2012년 기준으로 참여인원은 76만 9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시농업은 농산물 생산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 뿐 아니라 공동체 복원과 함께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소요 거리인 푸드 마일리지 절감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노인일자리와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도 고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가꾼 농산물을 전통시장에서 판매할 수도 있고, 주말농장에서 재배된 신선한 야채들을 학교급식에 활용할 수도 있다.

안네와 메이어-랜시하우젠 박사가 언급한 정원의 유용성은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 및 실질적인 경제민주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주말농장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한국에서의 도시농업도 베를린의 '작은 정원'처럼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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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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