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최고의 관광지는 온천? 아니 기차!

[규슈여행기①] 규슈를 다시 찾는다면 그건 기차의 추억 때문

등록 2013.08.03 22:25수정 2013.08.0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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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미도리 열차 규슈의 중심도시인 하카타(후쿠오카)와 군항도시 사세보를 왕복하는 기차다. ⓒ 서부원


지난 달 27일부터 닷새 간 휴가차 일본 규슈에 다녀왔다. 수도인 도쿄 인근과 오사카, 교토, 나라 주변 지역은 수차례 다녀왔지만, 정작 '엎어지면 코 닿는' 규슈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지하다시피 규슈는 일본의 큰 4개의 섬 중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맨 서쪽에 위치하며, 온천 여행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모르긴 해도 규슈는 우리나라 사람의 맨 처음 가는 해외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가까운 거리인데다, 모든 게 비싸다는 일본 내에서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곳이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라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유명 관광지나 쇼핑센터는 말할 것도 없고, 버스나 지하철 등의 교통수단과 식당, 심지어 화장실의 변기에조차 한글을 비롯한 외국어가 병기돼 있다. 굳이 여행 중 궁금한 것을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챙겨간 기본적인 회화가 적힌 여행자 수첩이나 번역기 앱이 깔린 스마트폰도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본 여행은 그야말로 지루할 틈이 없다. 모든 게 볼거리고 즐길 거리이며, 어디서든 여행자에게 늘 하나쯤 생각해볼 만한 거리를 던져준다. 목적지와 숙소, 식사 메뉴까지 여행사에게 모든 걸 일임한 채 '깃발'만 따라다니는 단체 관광객들이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일본엔 무척 많다. 하긴 이번 여행 중에 이른바 '패키지' 관광객은 몇몇 중국인들을 제외하곤 거의 보질 못했다.

기차마다 이름과 디자인이 다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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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카모메 열차 하카타와 원폭의 도시로 유명한 나가사키를 왕복하는 기차편으로, 흡사 갈매기의 대가리 모습 같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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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내부의 모습 기차마다 객실 내부는 조금씩 다른데, 흡사 항공기 내부와 같은 것도 있다. 청결한 것은 기본. ⓒ 서부원


규슈 여행은 가까운 역에 가서 '패스'라 불리는 정기 승차권을 구입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인데,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일본 내 교통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필수적인 여행 준비다. 일자별로 지하철과 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패스의 '압권'은 기차 정기권인 '레일 패스'다.

규슈에서 기차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교통수단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자체만으로 비할 바 없는 관광 상품이다. 규슈에 열 번도 넘게 왔다는 한 여행자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바로 규슈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모든 기차를 타보는 것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규슈에는 시속 300km로 달리는 최신형 신칸센부터 1930년대에 제작된 영화 소품 같은 증기기관차까지 운행되고 있다.


속도를 기준으로 고속열차, 특급열차, 쾌속열차, 보통열차 등으로 나뉘는 건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오가는 행선지에 따라 기차마다 고유의 이름과 디자인, 차별화된 서비스가 제공된다. 일본 기차의 정시성과 안전성은 이미 세계 최고로 공인된 바인데다, 관광 상품으로서의 편의성과 내러티브까지 동시에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컨대, 규슈의 대표적인 두 항구도시인 하카타(후쿠오카)와 나가사키를 잇는 열차의 이름은 갈매기라는 뜻의 '카모메'다. 하얀색 외장에다 신칸센을 닮은 날렵한 디자인이 흡사 갈매기를 닮았다. 또, 규슈의 살아있는 심장으로 불리는 아소산을 연결하는 특별 열차편인 '아소 보이'의 외벽에는 만화 캐릭터인 '쿠로'가 그려져 있어 친근함을 더한다.


그런가 하면, 비록 하루에 딱 한 번, 그것도 부정기적으로 왕복 운행하는 탓에 쉽사리 경험할 수 없지만, 흔히 '은하철도 999'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증기기관차 '에스엘(SL) 히토요시'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거의 한 세기 전에 제작돼 수차례의 수리 과정을 거쳐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세계적인 명물 기차다.

어느 기차역이든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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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의 숲' 열차 초록색 외부도 그렇지만, 객실 내부가 목조로 되어 있는 것이 이채롭다. 넓고 청결한 공간은 물론, 장애인이나 노약자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돼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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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의 필수품, 에키밴또 일본은 객실 내에서 도시락을 먹는 풍경이 흔한데, 그건 바로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데다 값까지 저렴한 철도 전용 도시락인 '에키밴또' 때문이다. 웬만한 역마다 판매점을 볼 수 있다. ⓒ 서부원


남부 규슈 내륙의 오지인 히토요시와 요시마츠를 오가는 '이사부로-신페이'는 기차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열차다. 얼마 전까지 운행됐던 우리나라 태백선의 통리 나한정 구간과 유사한 '스위치백'과 '루프' 방식의 노선이다. 독특한 운행 방식에다 주변 풍광이 빼어나 하루에 단 2회만 왕복하는데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후인노모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카타와 규슈 최고의 온천 휴양도시인 유후인을 연결하는 기차인데, 그 이름의 뜻부터가 낭만적이다. 유후인의 숲. 무슨 소설의 제목 같은 이 기차는 정글 같은 울창한 숲속을 마치 잠수해 물살 가르듯 미끄러져간다. 차창 밖으로는 온통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삼나무 숲이 터널처럼 이어지는데, 숫제 하늘을 가릴 참이다.

분명 철로 위를 달리는 '쇠붙이' 기차인데, 객실 안은 되레 숲 내음으로 가득하다. 그저 차창 밖 풍경 때문이려니 했는데, 객실 내 인테리어가 모두 나무로 꾸며져 있다. 왜 기차 이름이 그렇듯 낭만적으로 지어졌는지 알 만하다. 노선별로 수십 종이나 되는 규슈의 기차는 'JR규슈'라는 한 회사가 운영하지만 객실과 외관의 모습, 서비스 등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어느 기차역을 가든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고, 기차를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목적지에 편안하고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것 외에, 기차에서 내릴 때 묘한 만족감 같은 게 느껴졌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자리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느낌이랄까.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수도 없이 기차를 탔으면서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체험이었다.

규슈까지 와서 우리나라에서 운행되고 있는 기차들을 떠올렸다. KTX든 새마을호든 무궁화호든 서울과 부산, 광주와 대구가 똑같다. 같은 요금이면 기차의 외관도 서비스도 심지어는 승무원의 복장조차도 모두 동일하다. 좋은 말로 '표준화된 서비스'다. 가는 곳이 달라도 가격에 따른 '등급'만 있을 뿐, 지역별로 독특하거나 차별화된 서비스가 없다.

규슈에서는 어디를 가느냐보다 무슨 기차를 탔느냐를 먼저 묻곤 한다. 탄 기차의 이름만 대면 지역과 여행 목적을 대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노선이 특화되다보니 기차별 담당자의 자부심도 대단한 듯하다. 각 역의 대합실마다 역장의 사진과 이름이 우리네 관공서의 대통령 사진 마냥 내걸려 있다.

다시 규슈를 찾는다면, 아마 기차 때문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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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도시 유후인의 역사 목조로 된 유후인의 역사는 그 자체로 관광상품이다.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역 광장 앞 교통이 막힐 지경이다. ⓒ 서부원


우리는 입만 열면 경쟁과 효율을 외치지만, 손님으로서 누리고 있는 서비스와 만족도를 따져볼 대상도 없이 오로지 '비싸면 좋고, 싸면 나쁘다'는 정도의 인식이 고작이다. 어느 지역의 어떤 기차를 탔더니 나름의 지방색이 느껴지더라는 얘기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기차는, 말 그대로 목적지에 가기 위한 여러 교통수단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제작된 지 수십 년이 지난 낡은 기차도 개조하고 수리해 쓰는 그들의 기술력과 정신이 대단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그저 '남의 떡이 커 보인' 탓일까. 집도, 자동차도, 손 안 휴대전화조차도 낡고 오래된 걸 못 참고 버리기 바쁜 우리네 세태 속에서, 새 것엔 추억을 담을 수 없다는 그들의 '고지식한' 사고방식이 자못 큰 울림을 준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일 테지만, 최고의 관광 상품은 여행자로 하여금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온천과 화산도 좋고, 쇼핑이나 놀이공원도 좋지만, 내가 만약 규슈를 다시 찾게 된다면 바로 '감동적으로'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기차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규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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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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