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사'들은 모두 야스쿠니 신사 같다고?

[규슈여행기②] 우리 관광객들에게 '일본은 없다'

등록 2013.08.05 08:57수정 2013.08.0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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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규슈엔, 조금 과장하자면, 한국인 반, 현지인 반이다. 어느 곳엘 가든 한국인 관광객들 천지다. 일본 땅인데도 곳곳에서 우리말이 들린다. 규슈 여행이 시작되는 하카타역에는 아예 한국어 통역사가 상주하고 있을 정도다. 관광지 기념품 가게 상인들이 말하는 '영어는 몰라도 한국어는 안다'는 얘기가 괜한 우스갯소리는 아닌 듯하다.

수요가 많은 만큼 여행사들의 유치 경쟁도 뜨겁다. 일본 전문 여행사라고 홍보하는 곳만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들마다 발간한 여행안내 책자는 웬만한 단행본 책보다 더 두껍다. 일본의 경우 국토가 그다지 넓지 않은데도 여느 나라와는 달리 지역별로 세분화해 자세히 안내하고 있어, 업체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 모으면 족히 십여권은 된다.

그런데 일본을 속속들이 소개하는 여행안내 책자가 무색하게도, 정작 관광객들이 가는 곳은 천편일률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한정돼 있다. 예컨대, 벳푸나 유후인에서 온천을 즐기고 하우스텐보스에 가서 종일 놀이기구를 타며 스트레스를 푼 다음 후쿠오카에서 쇼핑을 한 후 돌아오는 게, 전형적인 규슈 여행의 '공식'이다.


a 유후인의 신사 온천도시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는 최고의 관광지이지만, 바로 곁의 신사는 아무도 찾지 않아 을씨년스럽다.

유후인의 신사 온천도시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는 최고의 관광지이지만, 바로 곁의 신사는 아무도 찾지 않아 을씨년스럽다. ⓒ 서부원


아니면 '원조' 짬뽕과 카스테라를 맛보기 위해 나가사키에 가서 평화공원 등 시내 구경을 하고, 가까운 운젠이나 우레시노 등지에서 온천을 즐긴 다음 후쿠오카에 돌아와 하카타 라면을 먹고 쇼핑을 한 후 귀국하는 일정이다. 구마모토 성이나 활화산인 아소산과 가고시마의 사쿠라지마를 견학하는 경우에도 나머지 일정은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규슈엔 온천과 화산, 놀이공원과 쇼핑센터 말고는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다며 시큰둥해하는 관광객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면서 '역사가 일천하니 일본엔 볼 게 없다'며 엉뚱한 우월감을 은연중에 뽐내곤 한다. '패키지'가 아닌 개인 자유여행자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몇 곳을 선택하게 되는데도 한결같은 이유는 뭘까.

a 가장 흔한 문화재(?) 도리이 우리네 홍살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리이는 신사의 정문 격인데, 도시 곳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문화재(?) 도리이 우리네 홍살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리이는 신사의 정문 격인데, 도시 곳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 서부원


여행사는 관광객, 곧 소비자가 원하는 곳이니 그렇게 코스를 짰다고 하고, 관광객은 여행사가 꼭 가볼 만하다며 추천한 곳이니 따르게 된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다. 자유여행자들도 여행을 떠나기 전 주로 경험자들의 블로그나 여행사에서 발간한 안내책자를 참고하게 되니 '거기가 거기'인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일본에 왔으면서도 정작 '일본다운' 곳은 잘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 가면 맨 먼저 성 베드로 성당을 찾고, 프랑스에서는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궁을, 영국에 가면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버킹엄궁을 찾는다. 가장 이탈리아답고, 프랑스답고, 영국다운 곳이기에 관광객으로서 그걸 느끼고 싶어서다.

그곳들이 관광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본에도 일본다운 역사문화유적들이 적잖이 산재해 있지만, 일본을 찾은 우리 관광객들은 그곳을 애써 찾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일본다운 곳일수록 외려 더 가지 않으려는 듯하다. 일본에 대한 '국민 정서' 때문일까.


대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엘 가든 맨 먼저 찾게 되는 곳은 으레 박물관이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 개괄적인 내용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섭렵할 수 있는 공인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의 '예습'은 여행을 훨씬 더 효율적이며 풍요롭게 한다. 이러저러한 걸 다 접고라도, 박물관에 찾아가는 건 적어도 여행자로서 그곳에 왔다는 '문안인사'다.

그런데, 한국인 반, 현지인 반인 규슈라지만 그 많은 박물관 어디를 가도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보기란 어렵다. 전시물의 수준과 양이 빈약해서라기보다는, 여행사든 개인인든 애초 여행 일정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 여행 중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쇼핑을 한두 시간 더하지, 굳이 박물관을 찾아가려 들지는 않는다.


후쿠오카의 유명 관광지인 모모치 해변과 후쿠오카 타워 전망대는 한국인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북적이는데, 거기에서 불과 2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후쿠오카 박물관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후쿠오카 최대 쇼핑몰이자 교통 중심지인 뎬진에는 수도 없이 드나들지만, 바로 코앞 후쿠오카 문화관은 존재조차 모른 채 지나친다.

a 다자이후 뎬만구 입구 흡사 우리네 인사동 거리를 연상시키는데, 200미터쯤 되는 길 양 옆으로 우메가에모치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다자이후 뎬만구 입구 흡사 우리네 인사동 거리를 연상시키는데, 200미터쯤 되는 길 양 옆으로 우메가에모치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 서부원


과거 규슈의 행정 중심지였던 다자이후는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도시이다. 7세기 나당연합군의 삼국통일 전쟁 과정에서 멸망당한 백제의 부흥군을 돕기 위해 3만 명 가까운 지원군을 파병한 곳이자, 패퇴한 직후 있을지 모를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독특한 공법으로 수성(水城)을 축조한 유서 깊은 곳이다.

당시 한반도 삼국과 대륙의 당나라, 일본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인만큼, 다자이후에는 도쿄, 교토, 나라에 이어 일본에서 네 번째의 국립 규슈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에 걸맞게, 박물관에서는 일본과 동아시아 각 나라와의 문화교류사에 초점을 맞춘 상설 전시회가 열린다. 이름 하여, '아시아 문화교류 테마 박물관'이다.

그런데, 그곳에도 한국인들의 모습은 드물다. 다자이후를 찾는 이들은 물론 적지 않다. 다만,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뎬만구'만 잠깐 들렀다 돌아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뎬만구의 역사와 의미 등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입구에 세워진 소의 뿔과 코를 만져보는 것이 목적이다.

a 뎬만구의 '진짜' 주인, 소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뎬만구에는 그의 시신을 싣고 온 소가 동상으로 세워져 있는데, 이 소의 코와 뿔을 만지면 대학에 합격한다는 얘기가 전해져 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뎬만구의 '진짜' 주인, 소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뎬만구에는 그의 시신을 싣고 온 소가 동상으로 세워져 있는데, 이 소의 코와 뿔을 만지면 대학에 합격한다는 얘기가 전해져 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 서부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시신을 운구하던 소를 상징하는 기념물인데, 이것의 뿔과 코를 만지면 대학 시험에 합격한다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전해지고 있는 탓에 관광객들의 손때로 어느새 색까지 바래버렸다. 사진을 찍으려면 줄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다. 뎬만구의 주인은 이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아니라, 소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즐겨 먹었다는 찹쌀떡인 우메가에모치를 사먹고, 뎬만구 입구 소의 뿔과 코를 비비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자이후를 찾아온다. 거기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국립 박물관은 그 역사적 가치가 뭐든 아예 관광객들의 관심 밖이다. 하물며 뎬만구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관청터와 수성 유적임에랴.

a 쿠시다 신사의 전경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신사로, 시내 한복판에 자리해 있다.

쿠시다 신사의 전경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신사로, 시내 한복판에 자리해 있다. ⓒ 서부원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파리만 날리는' 곳은 박물관 외에 또 있다. 바로 '신사'다. 일본인의 정신문화를 이해해볼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곳인데다, 낯선 볼거리도 많고 입장료도 받지 않으니 외국인 입장에서는 최고의 관광 명소다. 게다가 그 수조차 많다. 거칠게 말해서, 일본에선 '발에 치이는' 게 신사다. 몇몇 자료에 의하면 대략 8만500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a 쿠시다 신사의 내부 모습 쿠시다 신사는 후쿠오카의 수호신을 모신 곳으로, 대표적인 지역 행사인 야마카사 축제로 유명하다.

쿠시다 신사의 내부 모습 쿠시다 신사는 후쿠오카의 수호신을 모신 곳으로, 대표적인 지역 행사인 야마카사 축제로 유명하다. ⓒ 서부원


그런데, 의외로 한국인들은 신사 찾아가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 일부 개신교를 맹신하는 이들이 절에 잘 가지 않는 것처럼, 신사에서 종교적인 거부감을 느낀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일본에 대한 반감이 신사를 통해 표출되고 있는 듯하다. 규슈 내 신사를 여러 곳 다녔지만, 후쿠오카 시내 한복판의 쿠시다 신사에서 만난 한 중년 부부가 신사에서 만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한국인들에게 신사는 태평양전쟁 시기 전범들을 합사해 기리는 공간으로 인식된 탓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야스쿠니'는 수많은 신사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신사와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을 여행할 때 '로마에 가선 로마법을 따르라'며 그들의 문화와 습속을 별 거부감 없이 따르면서, 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그게 안 될까.

이태 전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한 제자의 말이 떠올랐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은 게 두 가지 있다며, 그대로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 편견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일본에 와보니 비로소 보이더라는 것이다.

"명색이 역사를 전공했고 동아시아 전문가가 되겠다며 일본에 건너왔는데도, 와서 보니 정작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같은 이웃나라인데도 중국에 견줘 일본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 수준인데다 그나마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긴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은커녕 대학생 아무나 붙잡고 일본 역사에 대해 아는 걸 대 보라면, 아마 임진왜란과 메이지유신 정도 들먹이는 게 전부일 걸요. 저 역시 그랬으면서도 은연중에 일본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본인과 일본 사람들이 떠올리는 한국인들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 열에 아홉은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일본을 손꼽지만, 일본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을 그냥 가까운 이웃나라로 여길 뿐 업신여기거나 미워하지 않아요. 제국주의 시대 침략을 통해 고통을 준 나라라는 인식 정도는 대개 갖고 있고요.

일본인들 대부분은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행위를 반성하며 평화를 꿈꿔요. 우리도 다르지 않겠지만, 일부 극우 정치인들의 인식이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아니거든요. 저도 한땐 시도 때도 없이 신사 참배를 하는 일본인들은 모두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그저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소박한 기도일 뿐이더라고요."

어느 곳을 찾아 여행한다는 건, 그곳에 대한 편견과 환상을 깨고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여정이다. 일본을 경험하며 견문을 넓히겠다고 시간과 돈을 들여 해외여행에 나섰으면서도 정작 일본다운 것을 알려고도 찾지도 않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태도를 비굴하다며 마뜩치 않아 하고, 매사 조심하고 신중한 태도를 소심하고 좀스럽다며 비아냥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규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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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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