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무렵의 똥순이. 이때부터 똥순이는 등 긁기를 저만의 '수면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은균
그런데 언젠가부터 똥순이가 달라졌다. 그토록 좋아한 시장 놀이를 마지막으로 한 지 거의 반년이 지난 것 같다. 잠들 때마다 요구하던 등 긁기도 갈수록 숙지막해지고 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나.
8월 첫째 주말, 처가 식구들과 함께 장모님 친정 동네가 있는 고흥에 가 여름 휴가를 보냈다. 여수에서 여름나기를 하던 똥순이도 고흥으로 왔다. 일주일만의 애틋한 만남이었다. 당연히 똥순이가 자기 옆에는 아빠가 자야 한다느니, 등을 긁어 주라느니 하며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 줄 알았다. 그리하여 둘째 똥준이와 한바탕 승강이를 벌이며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똥순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똥순이는 "오늘은 할머니 옆에서 잘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먼저 잠든 막둥이와 함께 다른 방에 누워 있었다. 그런 내게 와서 똥순이는 심드렁하게 "아빠, 오늘 똥이(막둥이의 별칭)랑 잘 거지"라고는 다시 냉큼 거실로 향했다.
서운했다. 찬바람이 나게 홱 뒤돌아서서 가는 똥순이가 왜 그리 야멸차 보이던지…. 그토록 자주 이런저런 놀이를 원하던 똥순이가 왜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까. 제 사촌들이랑 지낸 재미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 한창 커나가는 나이 탓일까. 올해 고3 담임을 맡으면서 야간 자습이나 주말 자습 감독 때문에 똥순이와 더 자주 놀지 못했던 환경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게 다일까. 몸이 피곤한 날 똥순이가 시장 놀이를 하자고 하면 "다음에 하자, 아빠 피곤해"라며 거절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크게 실망스러워하던 똥순이의 표정이 아프게 떠오른다. 레이저 눈빛을 쏘는 똥순이에게 밀려 마지 못해 시장 놀이를 하게 되면 똥순이로부터 "아빠, 놀이에 집중해야지!"라는 핀잔을 들은 기억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정말 피곤한 날, 등을 긁어달라는 똥순이에게 가끔 내뱉은 "너 때문에 아빠는 제때 잠도 못 자"라는 말이 똥순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까. 또한, 나도 모르게 똥순이 먼저 잠이 든 적도 많았다. 그러다 잠이 깨 똥순이 쪽을 보면 똥순이는 내가 누운 반대쪽을 향해 몸을 돌려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혼자 잠들면서 녀석은 속으로 내가 얼마나 야속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때마다 나는 애틋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부모는 아이들을 자주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안아주거나 입맞춤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정서적인 애착감을 가지고 안정적이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때가 되면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난다. 그때가 되면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애틋해하며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삶이 지치고 힘들더라도 아이와 더 자주, 더 오래 놀자. 사실 마음을 열고 마음껏 놀다 보면 피곤도 풀리고 찌들어 굳은 마음이 눅어지기도 한다. 내 큰딸 똥순이와 함께 한 시장 놀이와 등 긁기…, 있다 없으니까 정말 허허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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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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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안 자겠다는 큰딸... 이럴 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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