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느티나무 아래 방문객들이 앉아있다.
신원경
4명의 농민 모두 땅만 사놓고 아무런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임인환(49)씨는 "1년 동안 일을 못하고 있으니 마음만 조급해진다"고 말했다. 서규섭씨는 "정부지원이 잘 마무리 돼서 빠른 시간 안에 농사에 전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요왕씨는 인터뷰 도중 "자꾸 앓는 소리를 하게 되는 게 싫다"며 몇 번이고 막걸리를 가져다 마셨다. 1년간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소득 없이 빚으로 살아가는 상황이 힘들다"며 "돈 없이 몸부림친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농사 일에 전념하지 못한 시간을 따져보면 벌써 4년이 넘어간다. 정부의 두물머리 사업을 반대할 때도 두물머리를 지키느라 농사일에 주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느냐는 말에 임인환씨는 "이제 와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고 되물었다. 이어 "유기농 하려고 농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3년 거치 17년 상환. 정부가 지원한 융자 방식이다. 서규섭씨는 "융자금액이 크다보니 연간 수백만 원의 이자를 내야한다"며 "3년 후부터는 원금분할도 함께 내는데 1년에 3000~4000만 원씩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인환씨 역시 "미쳐블것제잉… 그 돈을 갚을 수 있을지, 무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면서 "우리 엄마가 알면 '미친놈'이라고 욕을 한바가지 할 일"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 농사를 시작하더라도 소득이 발생되기까지는 반년이상이 걸릴 일이다. 정부의 시설지원 약속도 지켜지지 않아 언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농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최요왕씨는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라며 말끝을 흐리고 또다시 막걸리를 마셨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후로 다들 말수가 줄었다. 김병인씨는 "어제도 이 일로 아내와 다퉜다"고 입을 땠다.
"이러려고 그렇게 오랜 시간 싸웠냐고 하더라고요."최요왕씨는 "그런 이야기는 넘어가죠"라며 말을 줄였다. 서규섭씨는 귀농 후에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하고 함께 농사일을 했지만, 나머지 농민들의 부인은 각자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서규섭씨는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긴 싸움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형들이 많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소득 없이 1년을 넘기고 있으니 모두 가장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들의 저항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봤던 방춘배 팔당생명살림 사무국장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 이웃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형들은 많이 지쳐있다"며 "싸워온 시간만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과 가족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 보여요." "4년 가까이 건달이 된 기분... 빨리 밭일하고 싶다"4대강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농지를 뺏긴 사람이 전국에 2만6000여명이다. 심지어 보상도 받지 못하고 나간 농민이 대부분이다.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이름으로 싸웠던 남양주, 양평처럼 대체 토지를 받거나 장기저리자금을 지원받은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말하기 부끄럽다"고 했다. 이보다 더 어려운 농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서규섭씨는 "싸우면서 4대강의 실체를 더 잘 알게 됐다"며 "정부의 사업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최요왕씨는 "4대강만 생각하면 울화가 터진다"며 "도시민들을 위한 위락시설을 만들겠다고 강변을 다 망쳐놨으면서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열을 올렸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두물머리 사람들을 영상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감독 서동일씨는 이 상황을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국가 권력과 그것을 막고자 한 지역 세력의 한판 싸움"이라고 말했다.
"유기농이 수질오염의 주범이라고 매도하는 상황에서 유기농의 자존심을 지키고 결국 정부와의 합의까지 도출해 낸 일은 전국적으로 유일한 사례에요. 땅이 훼손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강변이 공원보다 농지로 활용되는 게 더 가치 있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켜낸 거죠." 하지만 저항 이후의 삶이 녹록치만은 않다. 정부의 무관심, 약속불이행이라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서 감독은 "대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정부가 나몰라라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다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하루빨리 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규섭씨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회, 군청·도청·국회 면담요청, 항의, 유기농 학술 세미나…. 이런 것들이 농부의 일은 아니잖아요? 4년 가까이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건달이 된 기분이에요(웃음). 땀 흘리며 일하고 싶습니다. 그게 나와 가장 잘 어울려요. 왜 농사를 짓는지에 대한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밭일을 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들에게 밭과 땀이라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얼마만큼 다가온 미래일까.